2. 仁
『論語』에 보면 孔子의 제자들이 孔子에게 仁을 묻는 장면이 여러 번 있다. 종합해서 仁의 뜻을 요약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樊遲가 물었을 때 한 대답인 ‘사람을 사랑하는 것’( 樊遲問仁 子曰愛人『論語』「안연」) 그것이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仁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즉, 널리 사랑하는 것, 그리고 어려운 일을 내가 남보다 먼저 하고 남에게 희생과 봉사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孔子의 仁이라고 할 수 있다. 孔子의 仁이 불교, 기독교, 등의 많은 종교에서 모두 가르치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과 다른 점은 인간관계(五倫)를 통한 수평적인 사랑이라는 점이다. 孔子는 철저히 현생주의자였다.
子曰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論語』「술이」
敬畏神而遠之『論語』「옹야」
季路問事鬼 未能事人 焉能事鬼?『論語』「선진」
그렇다면 사람만으로 온전한 仁을 펼칠 수 있겠는가. 儒家에서는 얼마든지 그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사람은 천부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소지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보는 것이 儒家의 인간관 (孟子曰 人皆有不忍人之心 先王有不忍人之心 斯有不忍人之政矣 以不忍人之心 行不忍人之政 治天下 可運之掌上 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 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 皆有怵惕惻隱之心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 非惡其聲而然也 由是觀之 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人之有是四端也 猶其有四體也 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 自賊者也 謂其君不能者 賊其君者也 凡有四端於我者 知皆擴而充之矣 若火之始然 泉之始達 苟能充之 足以保四海 苟不充之 不足以事父母 『孟子』「공손추 상」)
이다. 사람은 누구든 참되고 성실한 품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곧 사람이 仁을 생래적으로 갖고 태어났다는 것(性善)을 의미한다. 사람은 자기 마음 안에 그것을 품고 태어났으니 그것이 실현되도록 노력하면(선한 본성의 擴充 및 求放心) 仁人心也 義人路也 舍其路而不由 放其心而不知求 哀哉 人有鷄犬放則知求之 有放心而不知求 學問之道 無他 求其放心而已矣『孟子』「고자 상」
) 곧 仁하게 된다는 것이다.
孔子와 孟子는 사람들의 혼란된 마음을 바로잡아 각자의 훌륭한 삶을 이루게 될 때 사회의 正義가 실현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먼저 개개인의 인격을 높은 수준에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데 관심을 갖게 된다. (設爲庠序學校 以敎之 庠者養也 校者 敎也 序者 射也 夏曰敎 殷曰序 周曰庠 學則三代共之皆所以明人倫也 人倫 明於上 小民 親於下『孟子』「등문공 상」)
그런 수준에 도달한 사람이 政治를 하게 될 때 사회의 질서가 바로 잡히게 되고 참다운 政治가 실현되리라고 생각하였다.(內聖外王) 따라서 儒家的 이상의 실현은 결국 政治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子貢曰 如有博施於民 而能濟衆 何如 何謂仁乎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基猶病諸『論語』「헌문」)
孔孟의 이상은 사람들이 仁의 태도를 가지고 자기만을 위해서 소극적으로 살아가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여러 사람들을 고통과 환난으로부터 구해내야 한다는데 있다. (五十非帛不煖 七十非肉不飽 不煖不飽 謂之凍餒『孟子』「진심 상」
老而無妻曰鰥 老而無夫曰寡 老而無子曰獨 幼而無父曰孤 此四者 天下之窮民而無告者 文王發政施仁 必先斯四者 詩云 哿矣富人 哀此煢獨 王曰 善哉言乎 曰王如善之則何爲不行『孟子』「양혜왕 하」
道千乘之國 數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論語』「학이」
之以莊則數 孝慈則忠 擧善而敎不能則勸『論語』「위정」)
이와 같이 孔孟은 백성을 사랑하고 그들의 복지를 위하는 것이 政治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볼 때 孔孟의 政治思想은 곧 爲民, 愛民, 民本의 政治라고 할 수 있다. 이런 政治란 바로 仁의 태도를 가진 사람이 政治에 종사했을 때 가능하다. 『중국철학사』풍우란 저. 박성규 역. 까치. 2002. p.192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통치자의 솔선수범이 당연히 선행되어야 한다. 통치자 자신의 솔선수범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백성들을 위한 政治란 실현되기 어려우며, 또 통치자로서도 효과적이고 능률적인 政治를 펴 나갈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孔子는 통치자 자신이 올바르다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그가 의도한대로 政治가 잘 행해질 것이고 그 자신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비록 명령을 내린다 해도 백성들이 그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離令不從『論語』「자로」
국가와 사회에서 仁을 이룩해 가는 과정은 목표와 과정이 하나이고 목적과 실현수단이 하나가 된다. 이와 같이 개인 목적과 가족의 목적이 다를 수 없고 가족의 목적과 국가사회의 목적이 다를 수가 없다. 나와 가족과 국가사회는 목표도 같고 행위동기도 같은 하나의 장이다. 따라서 자기 가족 내에서 효도하고 우애하는 사람은 국가사회의 장에서도 자동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시민이 된다. 반대로 가족 내에서 불성실한 사람은 이웃 동료 관계에서도 성실하지 못하고, 국가 사회적으로도 세상을 혼탁하게 만드는 사람이 된다. 仁은 孝, 忠, 恕, 中庸, 義, 智, 禮, 信, 恭, 寬, 惠, 敏, 愛, 生, 공동창조성(「맹자와 인간본성의 과정적 개념」R.T.Ames. 성균관대학교동아시아학술원 외국인초청강좌. 2004)
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장이다. 즉 나와 가족, 나아가 국가와 우주는 仁을 통하여 하나의 장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반면 현대 정치사회는 이익추구를 위한 원자화된 개인들의 고독한 집합체이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시각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제기된 공적영역(vita activa)과 사적영역(vita contemplativa)의 구분에서부터 시작하여 사적 자아가 眞我라는 생각을 자리 잡게 한다. 그에 따라 정치적 존재(political animal)로서 폴리스(Polis)의 문제에 참여함으로써, 자아실현(self-development)하는 공화주의(republicanism)적 시민의 가치는, 공적인 참여를 부담(burden)으로 느끼고 오로지 개인적 삶에만 몰입하는 것을 행복(private happiness)으로 아는 개인주의적 개체의 가치로 변화하였다. 더욱이 자유(Liberty)의 개념 역시 '견제나 방해가 없는 상태(absence of restraints)'인 소극적 자유개념으로 변하여 개인주의와의 만남을 하게 된다. 17세기의 자유주의 문화 성립에 있어 유념할 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권위주의적 절대주의체 제여서 개인의 자유가 없었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개인의 자유는 필요악적인 국가 권력(authority)과의 사이에서 갈등을 유발한다. 의무와 책임, 참여보다는 권리와 자유가 강조됨.
-이후의 정치논의는 국가권력의 제한방법에 관한 것이다. 무관계적(irreconcilable) 實在인식에 기인한 고전적 자유주의 전통은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 더욱이 권리(right)와 자유가 절대화되어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ㆍ의무ㆍ유대도 거절하는 ‘나만의 울타리(privacy)’ 신성화는 가공할 정도이다. 그에 따른 고독하고 소외되고 분리ㆍ고립된 인간은 공적영역에 관한 무관심으로 인하여 공적영역의 타락에 아무런 노력 오히려 부담이 된 자유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가 행해진다.
(에리히프롬(E. Fromm)「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한나아렌트(H. Arendt)는 나찌시기의 독일국민을 예로 들면서 ‘자유로부터의 자살적 도피(suicide escape from freedom)'라 하였다.)
을 할 수 없다.
이러한 현대의 정치적 상황에 있어 仁은 관계적 패러다임에 입각한 인간의 주체성과 자발성을 강조함으로써 단절된 ‘나’와 대상 간의 접근을 시도할 수 있는 중요한 미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時中적인 태도를 강조하는 유가적 사유를 감안 하여 유학의 仁을 재해석할 수 있다면 현대 인류가 처한 自由主義(Liberalism) 및 個人主義(Individualism)의 해악을 충분히 완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나’라는 개인적 차원에서도 仁은 보다 윤택한 정치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인간을 보다 잘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孔子의 知新적 태도를 비추어 볼 때, 제악의 근원을 제도의 탓으로만 돌리고 인간과 인간관계를 이해하려고 노력 않는 현대 인류는 반성해야 마땅하다. 몸과 마음, 인간과 물질, 개인과 공동체라는 거대한 논의 담론의 양 갈래 속에서 마음과 인간과 공동체간의 조화를 중시하는 仁의 사상이야말로 인간의 문제를 보다 근원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현대 인류의 숙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답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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