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와의 비교와 공유를 통한 내 모습의 발견
-한국과 일본의 사상을 중심으로(서평)-
Ⅰ. 마루야마 마사오의
basso ostinato에 대한 일고찰 (일본사상 제6호 야규마코토)
1. 들어가며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인의 문화 근저에 외래사상을 변용시키는 ‘무언가’가 있다고 하였다.(27p) 그는 그것을 ‘집요저음’이라 명명하였다.(27p) 그는 그의 후기 일본사상 연구의 주제로서 ‘집요저음’의 연구와 극복을 설정했다.(28p) 이러한 설정에 있어 마루야마 마사오는 역사의식ㆍ정치의식ㆍ윤리의식의 세 가지 집요저음론을 구상하였다.(29p)
2. 사상변용의 계기로서의 ‘집요저음’
마루야마가 제기한 문제는 다음 3가지로 요약된다. 일본의 외래문화 접촉에 관한 문제, 일본이데올로기 정립 시도는 외국사상의 자위적인 원용에 그쳤다는 문제,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과정을 거쳐 ‘일본식’으로 변용ㆍ수용되었다는 문제가 그것이다.(30p) 마루야마는 이러한 문제인식으로써 일본의 문화접촉 역사과정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는 ‘집요저음’을 규명하고자 한다. (외래사상의 수용과정이 같은 절차에 기인한다는 점에 착안한 그는 외래사상의 변용을 일으키는 ‘집요저음’을 찾고자 하였던 것이다.)(31p)
3. 집요저음 청취의 방법
일본 내 사상적 주류가 아니었던 ‘집요저음’을 파악하는 어려움을 풀기위해 마루야마는 신화 속에서 일본인의 사상적 주류를 찾으려고 했다.(31p) 그러나 고대부터 외래사상을 받아들인 일본의 사상사적 측면을 감안한다면, 8C 초 일본 지식인들의 일시적인 생각이나 의식적 작위로 완전히 환원시킬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32p) 이에 마루야마는 ‘소거법’을 제시한다.(32p) 소거의 방법론을 활용함으로써 마지막에 남는 ‘무언가’를 찾는다는 의도인 것이다.(33p) 이러한 마루야마의 소거법은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고도론’을 비판ㆍ계승한 것이다.(33p) ‘고도론’은 주자학→고학→국학으로 진행되는 일본사상을 통한 카라고코로의 배척과 신화에의 회귀를 주장한 노라나가의 사상이다.(34p) 여기서 마루야마는 노라나가의 배척의 방법을 통해 소거법을, 신화에의 회귀를 통해 신화 속에 암시되어 있다는 집요저음론의 기초적 착상을 얻었다.(34p) 더욱이 주자학→고학→국학으로 진행되는 일본 사상의 흐름을 마루야마는 집요저음이 발전하는 과정적 의미로 해석하였다.(34p)
4. 집요저음의 구조
1) 역사의식의 집요저음
마루야마는「고사기」의 본문 첫 구절인 ‘천지초발’이 중국식의 ‘천지개벽’과 비교해 볼 때 많은 차이를 지닌다고 생각하였다.(36p) 그는 일본의 창성신화를 특징짓는 것으로서 ‘되다’의 논리를 주장하였다.(37p) 그는 천조대신이 여신이자 태양신인 점을 들고, 천지초발의 에너지인 ‘이키오이’에 의해 만물이 생겨나는 이미지(쯔기쯔기니)를 통해 중국사상에서 벗어난 일본사상의 독자성을 강조한다.(37p) 여기에서 역사의식의 집요저음을 이루는 원형이 발견된다.(37p) 마루야마는 ‘쯔기쯔기니, 나리유쿠, 이키오이’라는 구절로 이러한 집요저음의 원형을 묘사한다.(38p)
①‘추세’, ‘세’의 중요시와 역사적 낙관주의
일본의 역사문학 및 사론을 바라볼 때 알 수 있는 사실은 역사관에 있어 사실과 가치의 구분을 추구하였다는 점이다.(39p) 이에 마루야마는 ‘추세’ 안에 내재된 가치 속에 낙관주의가 숨어들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고 하였다.(39p)
②영원자, 절대자 관념의 결여
마루야마는 일본신화에 나타난 영원자, 절대자 관념의 결여를 지적한다.(39p) 그에 따라 일본에서는 강한 복고주의 및 유토피아 사상이 뿌리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39p) 이러한 공백을 대치하는 것이 ‘쯔기쯔기’라는 무구한 연속선의 개념이다.(40p) 이러한 연속성은 일왕통의 연면함으로 이어져(40p) 왕통이 끊이지 않는 일본 국체의 특색과 우월성을 함의하게 되었다.(41p)
③‘영원의 지금’ 또는 ‘지금의 영원’
역사적 낙관주의와「고층」의 역사상은 ‘지금’과 연관된다.(41p) 즉 집요저음의 역사이미지는 순간순간에 에너지를 솟아내는 ‘초발’과 그 초발의 에너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지금’으로 연결되는 것이다.(41p)
2) 정치의식의 집요저음
마루야마는 정치의식의 집요저음을 ‘마쯔리고토’라 하였다.(42p) 이러한 상위자에 대한 봉사구조는, 실권은 하위자의 유력자로 옮겨감에도 불구하고 명목상의 주권자는 여전히 존재하는 기묘한 현상을 낳게 된다.(43p) 봉건시대 및 제국주의시대 일왕의 정치권력의 변화양상은 이러한 마쯔리고토 구조를 잘 나타내주는 한 예라 할 수 있겠다.(44p)
5. '집요저음론‘의 문제점
마루야마의 집요저음론은 일본인의 ‘민족성’, ‘국민성’이 전제하는 숙명론의 극복을 시도한 사상이다.(44p) 더욱이 그가 ‘집요저음’이란 용어를 선택하게 된 과정을 돌이켜보면 이러한 그의 문제의식의 절실함을 느낄 수 있다.(44p) 그럼에도 집요저음론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45p)
1) '집요저음‘의 성립 및 유지ㆍ조건에 관한 문제
마루야마가 주장한 등질성에 관한 허구성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45p) 일본역사를 돌이켜볼 때 등질성은 성립되기 어려운 요소로 작용한다.(45p) 등질성 개념은 마루야마가 주장하듯 전제적 개념이 아닌 정치적ㆍ문화적 통합의 결과물로 이해할 수 있다.(46p) 더욱이 마루야마가 등질성의 근거로 제시한 지정학적 조건은 등질성과의 일정한 상관성을 발견하기 어렵다.(46p)
2)「고사기」위조설
「고사기」가 위조임이 밝혀지면 마루야마의 집요저음론은 그 근거부터 무너져 내리고 말 것이다.(48p)
3) '소거법‘에 관한 문제
소거의 대상인 외래사상 규명의 문제점, ‘쯔기’의 원인은 집요저음이 아닌 씨족중심사회일 수 있다는 점, 낙관주의사상은 중국사상의 특징일 수도 있다는 점, ‘나루’와 ‘우무’의 논리구조가 근본적으로 대립적이지 않다는 점.(49p) ‘이키오이’개념이 제자백가 사상에 흔히 보이는 관념이란 점, ‘마쯔리고토’와 중국 무위사상의 유사성.(50p) 결국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해 볼 때 ‘집요저음’을 일본 고유의 것으로 볼만한 유력한 근거는 없게 된다.(51p)
6. 마치며
마루야마의 집요저음론은 고대로부터 일본의 역사, 정치, 윤리의식의 근저에 흐르는 어떤 일정한 틀을 밝혀내려는 시도였다.(51p) 그러나 집요저음론은 ‘고도론’에서 착상을 얻은 관계로(52p) 일본인의 사고범주가 신화시대에 결정되었다는 순환론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지닌다.(51p) 그러나 ‘신화의 사상’에 주목함으로써 ‘집요저음’이 일본인의 사유방식에 암암리에 작용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마루야마의 생각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54p)
Ⅱ. 고대의 논리에 갇혀 있는 일본 사상사(일본사상 제3호 최문정)
1. 서 론
일본의 지배자 신격화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불교와 유교이다. 더욱이 신격화에 이용된 신불습합, 신유습합사상, 유교이론은 일본의 역사ㆍ문학ㆍ민중들을 계속적으로 고대의 논리에 가두어 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
2. 일본사상사의 흐름
1) 신불습합사상과 신유습합사상의 흐름
일본의 고대불교는 전래 즉시 정치적으로 이용된다. 이를 뒷받침 해 준 이론은 신불습합의 본지수적설이다. 이것은 일왕실 등의 권력자가 현인신이라는 이론이다. 신불습합의 진행과정은 다음과 같다. 씨족의 수호신→인격신적 이행→신도와 불교의 습합→본지수적설 탄생→천태종, 진언종→천태신도, 진언신도→신불일체
이에 남북조시대에 본지수적을 부정하고 신주불종을 주장한 이세신도는 신도를 독자적인 종교이데올로기로 체계화하였다. 이세신도를 계승한 무로마치 시대의 요시다신도는 유ㆍ불교의 근본은 곧 신도라 주장하였다. 이후 근세 막번제의 신도는 정치권력의 통제에 들어갔다. 막부는 일왕의 종교적 권위와 민중에게 밀착된 신사의 기능을 정치적으로 중시해, 봉건지배의 틀 안에서 이를 보호하는 방침을 취했다. 이후 에도막부가 주자학을 정치지도원리로 삼음으로써 유교는 신분질서와 충성ㆍ가부장제적 가족관을 떠받치는 이데올로기로서 보급되었다. 근세에 이르러 국학의 연구기운이 증대되고 막부지배체제가 동요되면서 국교로서의 불교권위는 추락하고 신도가 흥하게 되었다. 신도 신앙의 흥륭은 유학과 그 유학을 부정하는 학설과 국학의 흥륭이라는 전제조건하에서 가능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2) 일본 유학이론의 흐름
에도막부는 정권유지를 위해 주자학을 수용하지만 에도막부의 정책실패로 경제적 혼란이 거듭되면서 점차 유학에 대한 회의와 비관론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배경 하에 신도와 일왕제 이데올로기가 급속히 전파되면서 일왕을 중심으로 한 국력의 총화를 바탕으로 외국침략의 발판을 삼게 된다. 주자학 수용→유교ㆍ신도의 습합(그럼에도 주자학적 요소 다분)→양명학, 고학 등으로 분화→정치화로 변질(ex. 소라이학)
이러한 학문의 흐름을 볼 때, 토속적 본능세계와 지배자의 이기심에만 길들여져 온 역사ㆍ문화 전통으로 인해 일본은 자연과 Ю�운운하며 전쟁방지를 위한 평화주의 노선을 지향하는 동아시아 세계의 학문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이를 결국 거부했다고 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3) 국학 사상과 명치유신
소라이학에 의해 근세 유교의 사상적 전개는 마침표를 찍고 그 틈에 국학이 등장하게 된다. 국학은 일본 고대 시가와 '기기'에 대한 주석적 연구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인간 심정의 적나라한 모습을 찾아내고, 인간적인 ‘작위’에 대항하는 ‘자연’을 주장한다. 더욱이 소라이학과의 구조적 연관성은 국학으로 하여금 신 중심의 예속된 신민사상을 발전하게 한다. 이러한 일본의 근세 유학과 국학의 사상적 흐름은 신화시대 때부터 산출된 문학과 문헌에 근거한 학문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수주의적 학문으로 말미암아 일본은 근대화(명치유신)를 하게 되고 제국주의의 흐름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일본 제국주의를 부정적으로 보는 학자들도 명치유신만큼은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근대적 자아와는 다른 국민을 신의 노예로 인식한 명치정부의 헌법을 감안한다면 ‘명치유신=개화’는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명치유신의 비판 대상이 정치적 응집력과 부국강병을 방해하는 요소들이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배경 하에 태어난 일본의 근대문학은 근대성의 특징이 결여된 전통적 유제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특징을 지니게 된다.
3. 결 론
고대 논리 중 하나인 지배자의 신격화는 후세에도 계속 진행되었다. 불교의 유입과 더불어 신불습합의 형성, 임진왜란 이후 주자학의 도입과 왜곡된 이해 및 그에 따른 국학사상의 발전, 이후 일왕신앙을 이용한 명치유신 및 제국주의로의 발로는 현재까지도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망언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Ⅲ. 서 평
1. 고대로의 회귀?
먼저 최문정 선생이 쓴 글을 보도록 하겠다. 저자는「고대에 갇혀있는 일본 사상사」서론에서 첫째, 신격화에 유불이 기여함을 보도록 하겠다고 밝혔으며 둘째로는 일본 사상사가 고대에 갇혀있음을 살펴볼 것이라 하였다. 논문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봤을 때 저자는 일관적으로 이러한 문제의식에 관한 해결에 치중하고 있다. 더욱이 결론에서는 메이지유신이 근대화가 아니라는 주장을 통하여 ‘고대로의 회귀’를 보다 명확히 표명함으로써 망언, 교과서 왜곡문제까지 해석하려고 하였다.
약간의 무리가 있는 결론이라 판단되지만 저자의 ‘고대로의 회귀’라는 논리구조를 따라간다면 현대에 이르러 일본이 행하는 반역사적 행위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에서 일본이 보여준 경제성장 및 국제무대에서의 성장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고대로 회귀하려는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현대사회에서 적응할 수 있단 말인가? 저자의 논리는 금새 모순이 드러난다. 즉 저자는 역사의 흐름을 반동으로 치부하였다. 인간과 관련된 모든 역사를 포함하여, 하물며 생물도 진화의 단계를 거치는데 인간의 사상이 과거로 회귀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단순히 고대의 특성이 현대에도 나타난다하여 ‘고대로의 회귀’라 명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이다. 저자가 중요한 예로서 제시한 명치유신 역시 근대화의 탈을 쓴 제국주의의 모습일 뿐이다. 제국주의의 흐름과 전체주의의 흐름은 근대화를 바탕으로 한 국가제일주의적인 이데올로기이다. 더욱이 일본과 같은 왕이 존재하는 국가의 특성은 국가주의적 역량을 쉽게 강화시킬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일왕은 군림하되 다스리지 않는 허수아비 왕일뿐이다. 단지 메이지 헌법에서 ‘노예’ 등의 전근대적 단어를 썼다고 하여 그것이 사실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라 판단하면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오판일 뿐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그토록 이성적인 독일인이 히틀러에 의해 광적으로 변한 현실을 경험했다. 이러한 의심스런 경험에 관하여 많은 사상가들이 해석을 하였다. 에리히프롬(E. Fromm)과 한나아렌트(H. Arendt)는 나찌시기의 독일국민을 예로 들면서 ‘자유로부터의 자살적 도피(suicide escape from freedom)'라 하였다. 인류 전 역사를 통하여 쟁취한 자유를 마침내 얻기는 하였지만 어떻게 자유를 누릴지 몰라 방황하고 오해하는 사이, 극도의 사회적 사상적인 혼란함은 기존의 독재 권력에 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내용이다. 일본 역시도 이 같은 혼란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타 국가들과 다르게 자연스럽게 국가주의적 모습으로 그러한 혼란을 잠재울 수 있게 된다. 일왕을 중심으로 한 국가주의의 시도는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낯익은 논리이며, 혼란방지의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는 논리이다. 더욱이 그러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일본 국민은 무리 없이 빠르게 수용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고대로의 회귀’라 명명하는 텍스트주의적 해석(Textualism)은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2. 문화 수용과 창조
야규마코토 선생은 마루야마 마사오의 ‘집요저음’에 관하여 분석하였다. 솔직히 이 논문을 보면서 마루야마 마사오가 생각했던 문제의식에 관해 피식 웃기도 하였다. 독자적인 사상이 없음을 강조하며 외래사상을 변용시키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노력이 어찌 보면 웃기고 불쌍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일본을 ‘쪽바리’라 하며 무시하는 국민은 한국인 밖에 없다. 본인 역시도 일본을 무시하는 생각에서 피식 웃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한국과 일본을 비교함에 있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은 한국은 형이상학적, 일본은 형이하학적이란 비교논리이다. 이기동 교수는 몸과 마음으로 분리하여 한국은 마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음을, 일본은 몸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음을 강조하시면서 전체적인 해석을 이 틀 안에서 결론지으신다. 이 같은 비교는 동서양을 비교함에 있어서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해석이다.(더욱이 홉스(T. Hobbes)이래로 사실과 가치를 구분하는 서구의 근대적 모습은 몸에서 욕망, 욕망에서 경험주의, 다시 경험주의에서 실증ㆍ행태주의로 이어지는 흐름을 개괄해 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에 있어서 유의할 점은 형이하의 것을 강조하는 일본을 바라봄에 있어 무시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후진국인 ‘왜’를 얕잡아 본 이유는 다름 아닌 저급 문화 때문이다. 저급문화를 ‘형이하 중시’와 일치시킨다면 비약적 해석일까? 물론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형이하 중시의 실용적 사회라 크게 우열의 가치 관념을 정의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대, 중세, 근세의 동북아 사회는 지금과 같은 실용적 사회가 아니었다. 형이상의 것을 중시하는 사회인 것이다. 더욱이 근세시기의 주자학은 유학의 형이상학적 측면이 대폭 가미된 학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일본이 가진 형이하 중시의 문화적 전통은 크게 인정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반일감정에 기인한 맹목적 폄하 감정이든 형이하 중시라는 비웃는 태도이든 이러한 자세는 왜곡된 시각의 허상일 뿐이다. 설령 형이상, 형이하 중시라는 사실이 진리일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자세를 견지하면 안 된다. 이것은 근대성의 모순인 이분법에 따른 우열의 가치판단이 개입된 왜곡된 시각이다. 현실적으로는 너희 일본인들에게 지고 있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우리의 깊고 심오한 사상체계가 있기에 지지 않는다는 고집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고집이 맹목적으로 나쁜 것이라 매도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학문의 영역에서는 객관적인 판단과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본과의 역사 논쟁에서 말이다.
외래사상을 변용시키는 것이 과연 모방에 그치는 저급의 사상 수준일까? 모방에서만 그친다면 그러한 판단을 할 수 있겠지만 주체적 창조로 이어진다면 말은 달라진다. 더욱이 모든 사상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하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독자적이고 배타성을 지닌 사상은 어디에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의 유동성ㆍ가변성에 잘 적응하고 자신의 것으로 잘 변용시킬 수 있다는 것은 저급의 모습이기는커녕 현대사회에 있어 강력한 문화적 모습으로 등장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대사회는 문화적 다원주의(Pluralism)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유일의 이념이 존재하여 전체 공동체를 인도하는 사회와는 전혀 다르다. 다양한 가치ㆍ문화ㆍ이해관계가 존재하는 사회이며, 각각의 주체 간 공존의 규칙 마련이 매우 힘든 사회이다. 이 같은 사회에서 문화적 적응력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저질문화에 대한 적응력은 논외이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과 다르게 현대의 다원주의 사회를 영위함에 있어 ‘머리와 가슴의 분리’라는 부적응의 문제로 시달리고 있다. 물론 일제에 의한 전통의 단절, 현대사회가 한국인과 잘 맞지 않는 형이하 중시의 사회라는 점 등을 여러 원인으로 분석할 수 있겠지만, 부적응의 요소 역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또한 해방 이후 서구 문물을 무비판적으로 무분별하게 수용했던 우리의 지난 반세기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외래사상의 주체적 수용 및 창조의 문제는 심각한 양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비판적 수용과 주체적 창조의 모습(물론 일본이 전적으로 이 같은 모습을 띤다는 것은 아니다.)은 문화적으로 중요한 덕목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3. 너무나 같은, 너무나 다른
한국과 일본, 같은 동양권 국가이고 가장 가까운 이웃국가 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사상적으로 너무나도 상이한 국가이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가깝고도 먼 관계’라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관해서도 너무나도 상이한 한국과 일본일까? 실질적인 한ㆍ일 관계 속에는 언어와 개념이 포함ㆍ제한할 수 없는 성질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서로의 비교를 통해 각각의 ‘나 자신’을 잘 알기 위한 수단적 분류일 뿐 그것이 도리어 주체가 되어 우리의 생각을 고착하면 안 된다. 한류 역시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설레고 가슴 뛰는 애틋한 사랑 및 가족애에 관한 접근이다. 여기에 ‘한류’라는 언어가 가미되어 한국 것임을 강조하게 된 것일 뿐이다.
현대인들은 시간적ㆍ정신적 여유가 없는 고독한 군중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남과의 경쟁으로 인해 나의 정서와 마음은 황폐화되었고, 돈으로써 모든 영역의 사회적 재화를 분배하는 물질위주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항상 불안하여 누군가와 연결되어야 하는 모순성은 핸드폰ㆍ인터넷 중독으로 연결되고, 형이상의 심오한 이치를 불가지라 하여 학문의 대상에서 제외해 버린 칸트(I. Kant) 이후의 학문적 울타리는 임기응변식의 치료만을 양산할 따름이다. 이러한 사회 속의 현대인은 진정한 사랑의 설렘과 따뜻한 가족애를 느낀 지도 오래되었고 느낄 수도 없었다. 하지만 한류는 그러한 부분을 비집고 들어가 현대인이 잃었던 따뜻한 감정ㆍ정신의 눈을 일깨우도록 만들게 하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공통적인 주제에의 호소는 인간에 관한 믿음 및 고도의 정신적 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한 믿음과 정신적 문화의 기반은 한국에서 특히 발달된 것이지 전적으로 한국만의 것은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느낄 수 있는 보편적 생각ㆍ감정ㆍ느낌에 관한 내용인 것이다. 그러나 한류라는 언어의 구속은 자신들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는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한국의 것’이란 착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각국의 오랜 전통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을 쉽게 도출할 수 없는 능력의 부재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한국은 고도의 정신문화가 발달되고 형이상의 영역이 발달되어 있어서 정신 중심의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하는데 이로운 점이 있다. 하지만 한류가 세계에 어필할 수 있다고 하여 ‘한류=한국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의 폐해를 극복하고 그 폐해에 의해 상처 입은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잃어버린 마음의 영역을 되찾는 것이다. 모든 세계인이 동감함에도 불구하고 실체적 진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러한 정신적 사고의 훈련이 역사적으로 덜 되었기 때문이다.(앞서 밝혔지만 우열의 가치판단이 배제됨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우수성은 보편ㆍ영원의 사실과 일치될 수 없다. 시공간의 상황이 배제된 우수성은 권력적 횡포일 따름이다.) 그러한 마음의 영역은 한국만의 것이 아닌 현대인 모두의 것이다. 몇 년 전 일본에서 폭발적 인기를 끈 ‘에반게리온’의 주제가 곧 잃어버린 마음의 되찾음이 아니었던가? 물론 이러한 주제 때문인지 아니면 드라마틱한 구성 때문인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 만화의 주제와 인기도는 무시할 수 없는 비례관계를 암시한다.
잃어버린 마음의 되찾음은 그동안 잘못 인식된 ‘나’에 관한 문제로 귀결된다. ‘몸’이란 한부분만이 내 모든 것이라 생각한 상황에서 마음의 등장은 진정한 나의 모습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근대적 자아에 의해 왜곡된 반쪽의 인간은 현대에 이르러 많은 모순을 보이고 있다. 포스트모던의 움직임 역시 이러한 모순을 잘 인식하고 있지만 형이상을 배제하면서 어쩔 수 없이 형이상을 도입하는 내부적 모순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형이상의 배제는 분리할 수 없는 양자를 분리하려는 억압에 기인한다. 이제는 잃어버린 반쪽의 내 모습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 있어 한국인과 일본인은 같은 인간으로서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 타자와의 비교를 통한 내 모습의 발견도 중요하지만 타자의 공유를 통한 내 모습의 발견도 소중한 우리시대의 과제임을 강조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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