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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의 예의문화

2. 예절이란 무엇인가?

 

 

 1. 한국의 예의문화

 

 

1)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은 한국의 고유명사(固有名詞)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동쪽에 있는 예절의 나라)이라고 불렸다.

우리 나라를 동쪽이라 한 것으로 보아 우리보다 서쪽에 있는 중국인들이 가장 먼저 한 말이 분명하다.

 

지금은 전세계가 그렇게 말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우리 나라를 보면 서쪽에 있는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동방예의지국이라 하는 것으로 볼 때 방향에 관계없이 한국의 고유명사가 되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에 대한 출처는 서기전 268년(中國 戰國時代 魏 安釐王 10년) 중국 曲阜의 공빈(孔斌, 孔子의 子孫이라 傳함)이 쓴 「동이열전(東夷列傳)」이다.

‘옛날부터 동쪽에 나라가 있는데 이름을 동이라 한다(東方有古國 名曰東夷).

방위는 28수(二十八宿)의 기성과 미성의 방향이고, 지역은 조선 백두산에 접해 있다(星分箕尾 地接鮮白).

 

훌륭한 사람 단군이 나니까 9개 부족 구이가 그를 받들어서 임금이 되니 요임금과 한 때의 일이다.(始有神人 檀君 遂應九夷之推戴而爲君 與堯?立).

 

우순이 동이에서 나아 중국에 들어와 천자가 되어 훌륭하게 다스리니 뭇 임금 위에 우뚝했다(虞舜 生於東夷 而入中國 爲天子至治 卓冠百王).

 

자부선인이 학문에 통달하고 다른 사람보다 지혜가 있으니 황제 훤원이 그에게서 공부하고 내황문을 받아와서 염제신농씨 대신 임금이 되었다(紫府仙人 有通之學 過人之智 黃帝受內皇文於門下 代炎帝而爲帝).

 

소련과 대련이 부모의 상을 잘 치러 3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3년을 근심하니 나의 할아버지(孔子)께서 칭찬하셨다(小連大連 善居喪 三日不怠 三年憂 吾先夫子稱之).

 

하나라 우임금의 도산 모임에 부루(扶樓, 檀君 2세)가 친히 와서 나라의 경계를 정했다(夏禹塗山會 夫婁親臨 而定國界).

 

유위자가 하늘이 낳은 성인으로 훌륭한 이름이 중국에도 넘쳐 흐르니 이윤이 그 제자로 공부해서 은나라 탕임금의 어진 재상이 되었다(有爲子 以天生聖人 英名洋溢乎中國 伊尹受業於門 而爲殷湯之賢相).

 

그 나라는 비록 크나 스스로 교만하지 않았고, 그 군대는 비록 강하나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其國雖大 不自驕矜 其兵雖强 不侵人國).

 

풍속이 순후해서 다니는 이들이 길을 양보하고, 먹는 이들이 밥을 미루고,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자리를 함께 하지 않으니 동쪽에 있는 예스러운 군자의 나라라 하겠다(風俗淳厚 行者讓路 食者推飯 男女異處 而不同席 可謂東方禮儀之君子國也). - 중간 생략 -

 

이렇기 때문에 나의 할아버지(孔子)께서 동이에 살고 싶어하시면서 누추하지 않다고 하셨다(是故 吾先夫子 欲居東夷 而不以爲陋).’ - 이하 생략 -

 

위 구절을 쉽게 풀이하면 ‘동쪽의 옛나라 한국의 임금은 단군인데 중국의 요임금과 한 때이다. 한국인 순임금이 중국에서 한국의 가족사상으로 윤리와 도덕?정신문화를 가르쳤고, 황제 헌원이 한국의 도통한 학자인 자부선인에게서 배우고 와서 생활문화를 일으켰으며, 한국인 형제인 소련과 대련이 중국에 와서 효도를 실천해 보였다.

 

단군의 아들 부루가 와서 국경을 정했고, 이윤은 성인 유위자에게 배워서 은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한국은 나라가 컸지만 중국을 없신여기지 않았고, 군대가 강했지만 중국을 침략하지 않았다.

 

풍속이 아름답고 두터워서 사람들이 길을 양보하고, 경제는 분배정의가 이루어졌고, 남자와 여자는 각기 직분에 충실해 섞이지 않으니 이 나라야말로 동쪽에 있는 예절의 나라요, 군자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의 할아버지 공자께서 한국에 가서 살고 싶어하시면서 더럽지 않다고 말씀하셨다’는 말이다.

 

 

2) 「동이열전(東夷列傳)」의 배경(背景)

 

전항 동이열전의 기록은 순수한 창작이 아니라 중국 유학(儒學)의 경전(經典)에 있는 말들을 종합한 것이다.

 

중국 고대 왕들의 사적을 적은 《서전(書傳)》의 「순전(舜典)」에 보면 “순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설아, 백성들이 친하지 못해서 부모 형제 자녀들의 위계질서가 문란하고 부손하구나.

 

너를 교육부장관을 시키니 아버지는 의롭게 하고(父義) 어머니는 사랑하고(母慈) 형은 우애하고(兄友) 동생은 공손히 하고(弟恭) 자녀는 효도하는(子孝) 다섯가지 가르침, 오륜(五倫)을 공경해 펼치고 너그럽게 하라(帝曰 契 百姓不親 五品不遜 汝作司徒 敬敷五敎在寬)’고 했다.

 

역시 유교의 경전인《맹자(孟子)》의 「등문공장(騰文公章)」을 보면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성인(舜)께서 근심이 있으시어 설을 교육부장관을 삼아 인륜을 가르치시니 부자유친이며, 군신유의이며, 부부유별이며, 장유유서며, 붕우유신이니라’라 하였다(聖人有憂之, 使契爲司徒, 敎以人倫,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고 했다.

 

같은 책인 《맹자》의 「이루장(離婁章)」을 보면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순임금은 저풍에서 나시어 부하에 옮겨 살으셨으며 명조에서 돌아가시니 동이(한국)의 사람이다’고 했다(孟子曰 舜生於諸馮 遷於負夏 卒於鳴條 東夷之人也)”고 했다.

중국에서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는 책 《소학(小學)》의 「계고(稽古) 명륜장(明倫章)」을 보면 “공자(孔子)의 말씀으로 ‘소련과 대련이 부모의 상을 잘 치러 사흘을 지극히 애통했으며, 석달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한 해를 슬퍼하고, 삼년을 근심했으니 이들은 동이(한국)인의 아들이다.(少連大連 善居喪 三日不怠 三月不解 期悲哀 三年憂 東夷之子也)’고 하셨다.”

이상의 근거를 보면 《동이열전》의 기록들은 권위있는 고전인 유교경전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3) 이(夷)는 오랑캐가 아니고, 동이(東夷)는 한국이다.

 

《동이열전》에 의하면 “한국은 중국보다 문화 선진국이기 때문에 생활문화와 정신문화 및 가족제도와 효도 등을 한국에서 배웠고, 풍속이 순후하니 예절의 나라”라고 하면서 그 책의 이름을 ‘동쪽 오랑캐의 이야기’라는 뜻으로 동이열전이라 한 것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생각은 이(夷)를 오랑캐, 비문명이라 해석하는 데서 오는 편견이다. 그러나 ‘夷’의 용례(用例)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평평하다(平) 기쁘다(悅) 베풀다(陳) 무리(等)로 쓰여지는 것이 일반적이고, 지역이나 방위로는 오직 중국인들이 자기들의 동(東)쪽 지방을 말할 때에만 ‘이(夷)’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인들도 동쪽 지방을 이(夷)라고 하는 것 뿐이지 오랑캐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오랑캐라 해석하는 까닭은 글자의 뜻이 아니라 중국인들이 자기들은 중화(中華)라 해서 문명인이라 하고, 기타 변두리 지방은 비문명인이라는 관념에 의한 것이고, 우리도 그대로 인정하는 자학적(自虐的)인 해석이다.

서기 100년경에 후한(後漢)의 허신(許愼)이 한자의 형태, 의미, 음을 체계적으로 해설한 한자 최초의 사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夷’자를 해설하고 있다.

 

“이(夷)는 평평하다는 뜻이고, 글자의 구성은 대(大)와 궁(弓)으로 되었으며, 동쪽 지방의 사람이다.(夷 平也 從大從弓 東方之人也).”

 

이(夷)는 평평하다는 뜻이고, 글자의 구성은 대(大)와 궁(弓)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한자는 뜻글자인데 동쪽 사람을 왜 큰 대(大)자와 활 궁(弓)으로 구성된 이(夷)라고 했을까. 중국 청(淸)대의 학자 단옥재(段玉栽, 1735~1815)는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를 지어 아래와 같이 해설했다.

 

“남방(南方)은 만민(蠻?)인데 충(?)을 의미하고, 북방(北方)은 적(狄)인데 견(犬)을 의미하고, 동방(東方)은 학(?)인데 치(?)를 의미하고, 서방(西方)은 강(羌)인데 양(羊)을 의미해서 각기 그 성품을 따랐다. 오직 동이(東夷)는 대(大)를 의미했는데 그것은 대인(大人)이고, 이(夷)의 풍속은 어질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살아서 군자가 있는 죽지 않는 나라이다(南方蠻?從? 北方狄 從犬  東方? 從? 西方羌 從羊 有順理之性 惟東夷 從大 大人也 夷俗仁 仁者壽 有君子不死之國).”

 

통훈정성(通訓定聲)에 보면 “동방(東方)의 사람이다. 대(大)와 궁(弓)으로 되었는데 궁(弓)은 이(尼)로도 씌어지고 옛글자 인(仁)과 같다(東方之人也 從大從弓 弓字亦作尼 與古文仁同)”라고 했다.

이상으로 미루어 보면 “이(夷)는 동쪽 사람인데, 그들은 훌륭한 사람(大人)이고, 어진 사람(仁)들이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이(夷)는 오랑캐가 아니고 ‘훌륭한 사람’, ‘어진 사람’을 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맹자(孟子)의 말씀에 “순(舜)은 동이(東夷) 사람이요, 문왕(文王)은 서이(西夷) 사람이다(孟子 離婁章 舜 東夷之人也 文王 西夷之人也)”고 했는데 이것은 “순임금은 동쪽의 오랑캐이고, 문왕은 서쪽의 오랑캐이다”는 말이 아니고, “순임금은 동쪽의 훌륭한 어진 사람이고, 문왕은 서쪽의 훌륭한 어진 사람이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孔子)의 말씀과 행적을 담은 《논어(論語)》의 「공야장(公冶長)」편과 「자한(子罕)」편에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도가 행해지지 않는구나. 뗏목을 타고 바다에 뜨리니 나를 따를 자는 자로(子路)일 것이다(子曰 道不行 乘?浮于海 從我者 其由與)’라고 했다.”

“공자께서 구이(九夷 : 한국)에 살고 싶어하시니 어떤 이가 여쭙기를 ‘더러울 텐데 어찌 하시렵니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가 살면 어찌 더러움이 있으리요’라 하셨다(子 欲居九夷 或曰 陋 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고 했다.”

이미 한국은 군자의 나라니까 더럽지 않다는 말이다.

 

이상에 대해 어떤 사람은 “‘이(夷)’, ‘동이(東夷)’, ‘구이(九夷)’가 한국일 때에 가능한 해석인데, 과연 ‘이(夷)’가 한민족인가”라고 반문을 하기도 한다.

 

중국의 모든 역사책에는 한국의 역사를 곁들이는데 그 부분이 ‘동이전(東夷傳)’이다.

 

중국 사서(史書)인 《통감(通鑑)》의 「당기(唐記) 태종조(太宗條)」에 보면 “고려는 동이이다(高麗 東夷也)”라 했고, 문서심원(文書尋源) 12편(編)에 보면 “동이는 조선인데 기자를 봉한 땅이고 지금의 고려가 이것이다(東夷 朝鮮 箕子所封之地 今之高麗 是也)”라고 했다.

 

 

4) 한국의 예절은 우리의 고유문화

 

우리 나라의 예절은 우리의 고유문화이다. 예절은 언어(言語)와 같은 것이다.

높은 산과 깊은 물에 막혀 일정한 지역에서 무리지어 사는 생활권에 따라 쓰여지는 말이 다르듯이 예절도 일정한 지리적?풍토적 특이한 여건 아래의 생활권에서 행해지는 생활방식이다.

 

따라서 언어문화권과 예절문화권은 거의 같은 테두리로 형성되는 것이다.

즉,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생활예절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우리의 예절을 말하면서 으레 8백년 전 송(宋)나라 학자인 주자(朱子)의 가례(家禮)를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그 까닭은 1392년에 고려의 뒤를 이은 조선(朝鮮)이 고려 때에 성행하던 불교문화를 누르기 위해 주자학을 채택,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을 취하였고 당시의 지배층인 선비들이 주자학에 반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말로만 주자의 가례를 앞세웠을 뿐 그것을 실천하지는 않았다. 위에서 보았듯이 모든 문화가 우리에게서 배운 것이기 때문에 중국의 생활방식인 가례도 우리의 생활문화와 큰 차이가 없었고, 한자문화(漢字文化) 관계로 가례를 많이 보기는 하였지만 우리의 방법과 다른 것은 따르지 않았다.

 

중국과 한국은 말이 다르고, 옷이 다르고, 음식이 다른데 어떻게 중국의 생활방식과 우리의 생활방식이 같을 수 있겠는가.

 그것을 증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혼인례(婚姻禮) : 혼인이란 남자와 여자가 몸을 합해 부부가 되는 절차이다. 중국의 가례는 남자의 집에서 예식을 올리고 첫날밤을 치러 부부가 되지만, 우리 나라는 여자의 집에서 예식을 올리고 첫날밤을 치러 부부가 된다.

 

② 상장례(喪葬禮) : 사람의 죽음을 갈무리해 장사 치르는 절차이다. 우리 나라의 효자는 부모의 묘지 앞에 여막(廬幕)을 짓고 3년간 묘지를 모시는데, 중국의 가례는 그 시묘(侍墓)제도가 없다.

 

③ 제의례(祭儀禮) : 돌아가신 조상을 받드는 절차이다. 중국은 차(茶)가 대중음료이기 때문에 모든 제의에 차를 올리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일체 차를 올리지 않는다.

 

④ 배례법(拜禮法) : 중국에는 9가지의 절하는 법이 전해지는데 우리 나라는 5가지의 배례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