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전통(禮)
한국사회는 자유에 관한 종합적이고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 더욱이 21세기가 되도록 색깔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적극적인 자유에 관한 관심은 절실하다. 물론 남북분단의 상황 속에서 권위주의적 국가를 경험한 한국은 최소한의 소극적 자유개념조차도 보장받지 못했던 암울한 시기가 있었던 적이 분명하다. 그러나 세계가 변하고 시민의 의식이 발전하는 상황 속에서도 자유의 협소한 의미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것 역시 심각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변화된 환경은 성숙한 시민의식 및 덕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정부와 시장의 역할 주도라는 정부ㆍ시장실패의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변화된 사회를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시민사회의 성장 역시 기존의 일방주의적 관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 적극적ㆍ관계적ㆍ협력적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발전하는 테크놀로지의 속도는 사회변동의 정도를 판가름할 수 없을 만큼 급속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러한 시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인간에 관한 요구는 곧 의식 및 덕성의 변화 요구로 이어지는 것이다.
‘내 멋대로 식의 자유’로부터 해방된 삶을 살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순한 자유의 문제 일뿐만 아니라 권리 및 사회 전체의 풍속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이 부분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유학적 전통 중 하나인 禮와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禮는 남을 배려하는 정신에 기인한다. 이러한 정신에 근거하여 다양한 禮의 형식이 발전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반대로 형식을 통하여 남을 배려하는 정신의 발현 역시 기대할 수 있다. 물론 禮가 기득권 유지수단으로서 경직되고 권위적으로 된다면 폐해가 클 것이다. 또한 정신과 형식의 상호조화가 없어도 올바른 禮의 실현을 기대할 수 없다. 그 동안 이러한 문제적 현상으로 말미암아 한국은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禮가 강조될 수 있는 이유는 관계성의 확립 및 그에 따른 배려의 정신 때문이다. 더욱이 禮에 기인한 문제적 상황은 올바른 모습의 禮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禮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억제할 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배려의식과 노력은 나와 타인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민 등으로까지 발전가능하다. 禮의 관계적 영역의 범위가 자연 만물에 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은 충분히 자유개념과도 조화가능하며 소극적 자유개념에 허덕이고 있는 한국사회에 유익한 방향제시 역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수업이 끝났다고 해서 복도에서 떠드는 행위가 정당한가? 내 자신 때문에 옆 강의실 학생들이 경험하는 학습방해는 고려해 보지 않았는가?’ 쉬운 예가 될 수 있겠다. 물론 누구나가 이러한 생각을 이해하고 인정한다. 그럼에도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러한 생각조차 없는 사람들은 논외로 한다.) 그것은 행위의 문제이다. 즉 몸에 배지 않았다는 말이다. 禮는 이러한 인간의 측면에 관한 명확한 이해도 포함한다. 禮의 형식이 까다롭고 어색하게 느끼는 이유는 몸에 배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몸에 밴 禮의 형식은 자연스러운 행동의 표현일 뿐이다. 그렇다고 하여 까다로운 형식적인 禮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배려하는 마음의 합리적 발로가 禮의 형식이다. 합리적 발로가 아니거나 현대사회에 맞지 않은 형식은 변화 가능하다. 그렇지만 변화, 재조정의 과정을 겪을 때도 앞서 밝힌 형식에 내제된 원리를 살릴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전통이 있음에도 왜곡된 자유 인식으로 인해 우리 스스로가 전통을 부정했다. 그런데 조사해 보니 우리의 자유인식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오히려 우리가 부정한 전통과 자유의 모습이 많이 닮았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인가? 보다 복잡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으나, 이러한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해결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미래는 문화적 사회적 사상적으로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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