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 >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는 전두환 정권의 ‘경제 자유화’조치 이래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김영삼 정권의 세계화 전략 및 김대중 정권 때 행한 노동시장, 재벌, 금융, 공기업, 교육, 정부부문에 있어서의 개혁들 역시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모습들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흐름은 현재 ‘참여정부’의 유연화ㆍ개방화의 움직임에 이르고 있다.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외국의 그것과는 다른 양상으로 다가온다. 즉 선진 자본주의국가들의 신자유주의는 전후 성립한 복지국가의 폐해를 극복하고자하는 시장중심주의적ㆍ법치주의적 움직임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한국에서 실현되지도 않았던 ‘사회국가’를 예방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서구의 복지국가체제의 모순이 드러난 이상 한국이 서구식의 복지국가를 그대로 모방한다는 것은 어리석게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서구의 특수한 상황 및 배경에 관한 복합적인 고려 없는 단순한 도입으로 인해 많은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구미의 경우는 복지체제가 잘 마련되어 있어 ‘제3의 길’이 가능하다. 그러나 구미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고려 없는 무분별한 ‘제3의 길’ 시행은 한국에 있어 많은 문제점만을 양산할 뿐이다. 복지제도의 선확립이 미비한 상황에서 순수한 시장경쟁원칙으로 회귀하자는 입장은 구조적으로 가장 열위에 처해 있는 하위층에게 많은 피해를 안겨 주었다. 때문에 하층민의 희생을 요구하는 시장주의자들의 설득은 성공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에 따라 국민과 국가 간의 불신은 깊어지게 되었고, 불신이 깊은 만큼 국민들의 삶은 가치 있는 인생 향유와 거리가 멀게 되었다.
최소한의 복지권을 확충하려는 노력 역시 ‘복지와 자유는 상극’이라는 잘못된 판단으로 인하여 봉쇄당하고 있다. 더욱이 ‘사회국가 예방’이라는 한국의 신자유주의를 감안한다면 복지에 관한 논의는 그 입지가 매우 좁아진다. 또한 권위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복지에 관한 오해 역시 복지권의 확충 노력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복지ㆍ자유 개념에 관한 몰이해에 기인한 이러한 한국의 신자유주의 모습은 왜곡된 색깔 논쟁과 연결되어 사회발전에 관한 논의의 싹을 애초부터 잘라버린다. 롤스ㆍ드워킨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는 그것이 평등의 요소를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엄연한 자유주의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문적 의식이 결여된 한국 자본가들의 자유개념은 ‘국가 간섭이 최소화된 자유로운 시장관계’라는 고전적 자유개념에 국한된다. 그들은 소극적 자유개념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복지의 확충 주장은 국가개입을 옹호하는 빨갱이든가 좌익 즉 ‘적’의 목소리로 인식된다. 복지에 관한 오해는 복지에 관한 정확한 의미파악으로 수정 가능하다. 복지는 더 많은 자유 실현을 위한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복지 자체에 관해 알기를 원치 않는 한국의 상황은 복지는 여전히 자유의 상반개념일 뿐이다.
결국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정체가 모호한 양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서구와 용어만 같을 뿐 전개내용 및 주장내용에 있어 전혀 다른 모습이다. 물론 일방적인 서구 추종의 당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독특한 특수성을 주장하려면 우리 고유의 논리나 이론적 깊이가 있다는 전제 하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에 관한 의미 파악에 있어서부터 실패하고 있다. 이에 문제 발생에 따른 해결을 위한 신자유주의 등장이 아니라 기회주의적으로 차용해서 자신들의 입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어떠한 발언도 용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의 흐름은 전 세계적 흐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가에 관한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하는 척 흉내만 내면 될 뿐이다.
한국적 특수한 상황에 따른 올바른 접근이 필요할 때이다. 이것은 자유주의에 관한 기본적 개념 확립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문제이다. 평등과 복지, 그리고 서구 신자유주의의 개념 및 등장하게 된 배경까지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이론적 지식 후에 한국의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그에 합당한 처방을 내리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처방을 내리는데 있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은 국가와 시장의 이분법적 대립인식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시장실패, 정부실패를 거치며 발전된 시장과 정부의 대립 관계적 인식은 소극적 자유개념에서 도출된 고전 자유주의적 관계인식이다. 현대사회 특히 다원주의 사회에 이르러 ‘국가ㆍ시장’이라는 기존의 주체는 다양한 주체로 변화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시민조직의 등장, 세계 국가ㆍ경제와의 직접적 연관성, 다양한 문화요소 등의 여러 요소 및 주체에 관한 상황적 고려 없는 단순한 이분법적 ‘국가ㆍ시장’의 시각은 한계에 이르렀다. 더욱이 자유의 개념 역시도 적극적 관념이 더욱 중시되고 있어 기존의 대립적 관계 인식은 전환되어야 할 당위를 호소하고 있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시점에서 서구가 신자유주의를 도입한다고 하여 우리도 역시 맹목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대립적 시각보다는 관계적 ㆍ호혜적인 시각을 기반으로 새로운 주체 및 새로운 관계설정의 패러다임을 구추하려는 노력이 더욱 시급하지 않을까?
만약 이러한 인식의 전환 및 패러다임의 재설정이 어렵다면 차선책으로 자유주의의 올바른 측면을 발전시켜야 한다. 즉 시장주의적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따라가겠다면 자유롭고 ‘공정한’ 자유시장 경제를 확립해야 한다. 시장과 국가의 투명성 제고 및 그에 따른 신뢰 확보의 문제는 공정한 시장경제의 기본적 요구이다. 공정하지 않은 시장에 맡긴다는 것은 자유도 아니고 평등도 아니고 민주도 아니다. 시장주의의 가면을 쓴 독재일 뿐이다. 공정한 게임의 룰과 준수 없이는 보이지 않는 손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발휘될 수 없다. 두 번째로는 시민들의 최소한의 복지권을 확충하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복지는 열악하여 한국의 복지권은 인간다운 삶을 살 복지의 본래적 권리와 연결되어야 한다. 기초적인 사회보장 없이는 어떠한 시장행위도 활성화 될 수 없다. 기본적인 사회보장이 부재한 상태에서 일어난 사회분쟁ㆍ혼란 시, 가진 자들이 분쟁ㆍ혼란을 해소하는데 사용할 비용을 애초에 재분배로 활용한다면 보다 많은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이것은 경제적 효과뿐만이 아니라 빈부 간 ‘호감’이란 의식적 측면으로 까지 미치는 효과 역시 발휘할 수 있다. 세 번째로는 서구의 신보수주의가 관심을 두는 문화 및 사회의 도덕적 통합ㆍ건전성에 관한 내용이다. 한국의 보수주의가 권위주의와 시장주의라는 어색한 만남의 형태를 띠고 있는 만큼 이 부분은 매우 조심하게 다뤄야 할 문제이다. 만일 이처럼 국가의 주도가 부담스럽다면 문화 및 도덕적 통합의 영역을 시민사회 영역에 위임하는 방식으로 제도적 장치와 기회를 마련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문화 및 도덕적 통합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함은 물론이다.) 현대 한국에 있어 시민은 더 이상 국가행정의 객체가 아닌 파트너이자 동반자이다. 따라서 권위와 명령의 일방적 관계가 아닌 협력적 체제를 형성할 수 있다. 게다가 시민의 의식과 역량은 전 시대에 비해 많이 성숙되고 전문화되었다. 더욱이 문화적 다원주의의 현대사회에 있어 국가 주도는 급속한 변화에 대한 대응성과 적응력의 무능을 초래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가는 서구의 신보수주의와는 다른, 문화 및 사회의 도덕적 통합에 관한 다양한 사회 주체들 간의 참여와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과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 참여와 관심 증대에 있어 권위주의적 국가는 예방ㆍ극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한국의 정확한 문제 진단과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이론적 깊이가 짧은 기회주의적 신념체계이다. 정체불명의 신념체계에 의한 현실 분석은 현실에 관한 왜곡된 대책 및 그에 따른 절망적 미래 한국을 현재화한다. 바람직한 한국 현실의 반영 및 그에 따른 적절한 대책 마련의 노력은 실체적 진실을 반영하는 올바른 신념체제에 기인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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