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飛煥 교수님께서는 가치 다원주의 시대에 있어서 유학의 忠恕 논리야 말로 현대 사회에 있어 필요한 가치 덕목이라 하셨습니다.(「자유민주주의 공동체, 유교는 그 대안이 될 수 있는가」) 그러나 忠恕 덕목의 도입에 있어 유학의 形而上學적인 논리는 배제해야 한다고도 말씀 하셨죠. 忠恕 덕목의 도입은 적극 동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유학의 形而上學的 논리를 배제한다는 것에는 약간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尹武學 교수님께서도 지적하셨던 것처럼(「天人관계를 통해 본 본원유교의 禮와 法」) 忠恕뿐만 아니라 유학의 제 덕목이 天人관계라는 形而上學的 문제인식과 더불어 발전하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 부분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有機體的ㆍ互惠的 관계로 인식한 유학의 특징이자 장점으로 생각됩니다. 반면 근대 서구철학은 자연과 인간을 機械的ㆍ原子論的인 관계로 인식했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 있어 여러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나 아렌트(H. Arendt)도 이 같은 문제 인식을 가져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려고 했습니다. ‘새롭게’란 표현이 어찌 보면 잘못된 표현일 수도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고대 그리스의 사상가들 플라톤(Plato),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가 강조했던 公的 영역(Vita Activa, Public Realm / *공적 영역에 관한 동서양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양은 법 합의 내에서의 영역을 공적영역으로 본 반면에 동양은 욕심을 배제한 영역을 공적영역으로 보았다.)의 강조를 현대사회에 맞게 다시 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그녀의 생각은 획기적인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아렌트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만을 관심 가졌을 뿐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있어 동양적 사유의 특징인 關係的ㆍ有機體的 形而上學을 배제한다는 것은 근본(本)을 없애고 지엽적인 것(末)을 택한다는 논리이며, 근대서구의 사상이 낳은 현대의 제반 문제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할 수 없다는 점에서 忠恕 덕목만의 도입은 반드시 한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사회적 영역에 있어 恕의 범위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恕의 덕목을 법적 판단기준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즉 자발적 도덕의 영역과 법적인 강제 영역의 범위 설정입니다.(「유교적 덕치와 자유주의적 법치의 도덕적 토대」金飛煥.) 그러나 그전에 앞서 恕의 개념에 관한 정립이 보다 시급한 문제라 생각이 듭니다. 롤즈(J. Rawls)가 말한 중첩합의(Overlapping Consensus) 개념의 다원주의 시대에 공존 가능한 사회적 룰(Rule)의 의미인지, 도덕적 영역의 자발적 개념(그에 따라 소극적 자유(Freedom, Liberty)와 적극적 자유의 구분이 명확해 진다.)인지에 관한 문제 말입니다. (참고로 恕와 비슷한 내용의 룰은 성경의 황금율(Golden Rule), 홉스(T. Hobbes)의 제2자연법(Natural Law)에서도 등장 한다.)
이 논문을 통해 德治와 法治의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유교적 덕치와 자유주의적 법치의 도덕적 토대」金飛煥.) 더욱이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反공동체적이거나 공동선(Public Good)을 무시하지 않았다는 내용은 고전 자유주의자들에 관한 편견을 해소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적 이였습니다.(보다 더 자세한 내용은「고전적 자유주의 형성의 공동체적 토대」金飛煥. 1999. 참고)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개인적 자유와 권리(Personal Liberty & Personal Rights)의 영역만을 주장하지 않았다고 해서 현대 사회의 제악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구의 자유주의적 토대 하에 동양의 것을 받아들인다는 논리의 뒷받침인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유가에서도 역시 개인의 사적 영역(동서양의 사적영역에 관한 의미가 다름에도 비교를 한다는 것은 모순임을 인정한다.)을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인정하는 차원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닌 꾸준히 수양하는 노력과 과정을 강조했으며, 이것은 인간에 관한 희망을 전제한 것입니다. 그러했기 때문에 德治는 어찌 보면 자연스런 귀결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송 처리는 나도 남만큼 할 줄 안다. 그러나 소송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하다.”라는 공자의 말씀(「大學」 傳4章)처럼 法治는 德治의 보조 수단일 뿐입니다. 즉 本末의 문제로서 본다면 德治는 本이요 法治는 末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에 관한 희망이 전제되어 있음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가치의 다원화, 사회의 복잡성 등으로 말미암아 法治가 本, 德治는 不在한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德에 관하여 약간의 생각도 없이 모든 것을 法에 맡기는 식의 행위 문제, 권리 담론에 따른 인간관계의 단절, 法에 관한 자유의 제약 인식 문제, 法實證主義의 한계, 도덕 결여에 따른 사회 및 개인의 비인간화 등등. 이러한 상황에서는 德治가 本이 될 수 없는 시대적 한계가 있을지라도 보다 적극적으로 德治를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林孝善 교수는「근대적 국가개념과 정통성의 부재문제」에서 도덕과 정치의 조화 노력이 없는 근대적 국가개념에는 정통성이 없다고 하였다.)
어느 한 쪽만 옳다하는 논리는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려운 논리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보다 무엇이 중요하다란 논리는 여전히 통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쪽으로 시선을 더 돌리느냐의 문제에 따라 해결방법 및 방향은 큰 차이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선의 문제에서 제가 고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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