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례는 집안ㆍ지방마다 禮節의 다름을 의미하는 말이다. ‘남의 집 제사상에 뭐 놓아라 뭐 놓아라 한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집안 지방마다의 특색은 예전부터 있어온 모양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색이 가가례라 할 만큼 상이한 것인가에 관한 문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지방에 따라 방언이 존재하듯이 집안, 지방, 학파, 당색마다 음식과 풍습이 다른 것 또한 분명하다.
한국 예학의 종장이신 사계 선생께서 지은「가례집람」을 보면 ‘國俗’, ‘國制’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선생이 기호학파임을 감안한다면 영남학파의 사람들은 사계 선생의 책을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국속, 국제의 표현을 쓴 것이 단순히 기호학파의 자존심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 이였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학파, 당색에 가리지 않고 한국禮節을 연구하신 분이 사계 선생이시다. 영남학파에서도「가례집람」의 중요성은 높게 인식하고 있다. 학파, 당색에 따른 가가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관점의 차이에 따른 禮書 해석의 상이함은 있을 수 있어도, 학파, 당색에 따른 전혀 다른 禮의 모습은 잘못된 허위의식이다.
제사상 차리는 책을 보면 정확한 음식에 관한 안내가 드문 편이다. 예컨대 맨 앞줄의 과일 놓는 부분을 보면 어느 과일을 놓아야 할지 정확한 표현이 없고 단지 ‘果’ 자 만 있을 뿐이다. 어느 과일이든 상관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분쟁거리가 생긴다. 이러한 현상은 확실하게 통일된 규정집의 부재에도 기인 하지만, 기본은 같되 정통禮書에서 각자의 재량에 맡긴 부분을 자기 형편에 따라 하는 것에도 기인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분쟁거리가 뻔히 생길 줄 알면서 정확한 果를 왜 안 정했을까? 이것을 전문적 용어로 ‘隨宜’ 라 한다.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지방과 계절마다 음식이 다르므로 알아서 형편에 맞게 하라는 뜻이다. 귤이 나지 않는 함경도에서 귤 올리라고 하면 말이 되겠는가?
이렇듯 우리 禮節의 참뜻은 형식보다는 정신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융통성을 인정한 형식이야 말로 정신의 중요한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요즘에는 형식이 목적이 되고 정신이 수단이 되어 왜곡된 결과를 초래하고 있지만 적어도 본 모습의 禮節은 형식 보다는 정신을 강조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가가례의 근본정신을 망각하고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감추는 방편으로 쓰인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다. ‘왜 이것을 올리는가? 왜 이렇게 하는가?’에 대하여 ‘그런 쓸데없는 질문 하지 마라. 우리 집안은 원래 이랬다.’의 대답이 그것이다. 잘못된 것인 줄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하기에 하는 것이다. 설사 잘못된 것인 줄 안다 하더라도 쉽게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가가례의 본래 의미는 형식의 융통성이다. 형식이 고정화 되어 그 논리의 근거로 가가례를 사용한다면 이것은 또 하나의 권력 횡포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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