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자 맹자 순자의 禮 개념 (공맹순예론의 적용 1)
공자를 통하여 仁은 더 이상 초월자 중심이 아닌 인간과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더욱이 ‘우리주의’의 뿌리에 해당하는 관념이 仁임을 공자를 통하여 우리는 살펴보았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仁의 실천적 방법으로서의 禮의 등장이다. 이러한 仁의 실천 방법으로서의 禮는 이후 漢대를 거치며 중앙통제의 수단으로서 왜곡된 모습을 지니게 된다. 흔히들 알고 있는 가부장적 禮, 여성 차별의 禮,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禮 등이 그것이다. 한대의 禮는 올바른 禮의 모습이 아닌 지배이데올로기의 수단으로서의 禮이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한대의 왜곡된 모습의 禮가 아닌 본래의 禮 즉 인간과 인간의 관계성을 중시한 禮를 살펴보고자 한다.
禮는 본래적으로 仁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다. 仁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곧 禮인 것이다. 공자는 “사람으로서 仁하지 못하면 禮를 어떻게 하겠으며 사람으로서 仁하지 못하면 樂을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하셨다. 이러한 仁과 禮의 관계는 공자와 안자의 대화에서 나온 ‘克己復禮’가 잘 말해주고 있다.「논어」에서 禮는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형식적인 측면 보다는 본질적 의미가 더욱 중요하다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禮는 사치하기 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하고 喪은 형식적으로 잘 치르기 보다는 차라리 슬퍼해야 한다.’‘禮라 말하지만 玉泉을 이르는 것이겠는가? 樂이라 말하지만 鐘鼓를 이르는 것이겠는가?등을 볼 때 결국 禮는 仁이라는 근본적 의미가 서고 난 후의 문제인 것이다.(繪事後素) (이외에도 공자는 본래 베로 만든 麻冕이 禮에 맞지만 당시 실로 짠 것도 검소하다는 측면에서 대중과 함께 하면서도, 堂上에서 절하는 것은 교만한 것이기 때문에 비록 대중과 어긋나더라도 禮를 지키겠다고 하였다. 초하룻날 사당에 고유하면서 바치는 양을 없애려는 자공에 대해 그대는 양을 아끼지만 난 그 禮를 아낀다고 하였으며, 재아가 삼년상이 너무 길어서 禮樂이 붕괴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사람이 태어나서 3년이 지난 후에야 부모의 품을 떠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워 질책하였다.)
결론적으로 禮는 仁을 표현ㆍ실천하기 위한 방법ㆍ형식으로서 사회질서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공자 이후 공자가 仁과 禮를 본질과 형식으로 연계시켰던 것과 달리, 맹자와 순자는 각각의 독특한 禮論을 발전시키게 된다. 단순한 형식으로서의 禮가 성선 성악이라는 상이한 인식 위에서 전개된 禮 논의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먼저 맹자는 자신의 본성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틀로서의 禮를 주장한다. 인성과 천도를 연계시켜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인정하는 맹자의 성선설은 보다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禮論을 발전시킨다. 공자의 天으로부터 인간으로의 관점 변화는 인간 중심의 시각으로 완전히 전환을 못한 대중에겐 너무나도 힘든 철학적 요구였다. 맹자는 그러한 문제적 인식을 정확히 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다시금 天을 살리는 작업은 반동적인 움직임을 의미하기에 다시 天을 살릴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맹자는 天을 인간 안으로 내재화시키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본래적으로 도덕적 본성을 가지게 된다는 전제가 성립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성선설이다. 성선설은 맹자의 주요한 학설로서 공자의 仁을 발전시킨 규명이며 검증이다. 이러한 성선설을 주장하고 검증하는데 있어 맹자는 금수와 다른 인간의 특성을 제시한다. 이것은 선한 행위를 왜 해야 되는가에 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에 유익하기 때문에 해야 되는 墨家적 입장이 아닌 사람이 사람이기 때문에 해야 되는 인간의 본유 관념으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금수와 다른 까닭은 아주 미미하다. 다만 뭇 사람은 그것을 버리지만 군자는 보존한다.
... 인의를 따라 행하신 것이지 인의를 행하려고 하신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개의 성은 소의 성과 같고, 소의 성은 사람의 성과 같은가?
인간이 인간인 까닭은 인간의 본질 즉 四端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식욕, 색욕을 철저히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사람 된 까닭은 금수와의 차별적인 본성에 근원하고 있다는 것이 맹자의 주장인 것이다. 그 차별적인 본성이 곧 四端이다. 이러한 四端은 하늘이 내게 부여한 것이다. 이러한 四端을 잘 따르면 大人이 되고 그렇지 아니하면 小人이 된다. 따라서 인간은 금수와 다르게, 더 나아가 小人과 다른 大人으로 나갈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갖게 된다.
사람에게는 모두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있다.
사람이 배우지 않고도 능한 것은 양능이요,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양지다.
四端, 良能, 良知가 곧 본연의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이다. 따라서 본성의 善은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본래 갖추고 있는 것이다. 맹자는 天을 심성에 내재화시킴으로써 도덕성의 근거를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기에 맹자가 말하는 성선은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도덕적으로 선한 즉 완전한 사람이다’라는 말이 아니라 태어날 때 그의 본성 속에 저마다 선한 요소 혹은 원칙이 있다는 말이다. 이 같은 모든 인간의 특성을 고려해 볼 때 그 선한 본성을 잘 보존하고 확충한다면 누구나 聖人이 될 수 있다.
요순과 보통사람은 같다.
성인도 나와 똑같은 부류이다.
순은 누구고? 나는 누구인가? 누구든 노력한다면 순임금처럼 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맹자의 성선론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부 성인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함으로써 삶의 가치 주인은 나라는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수신을 통해 자신의 도덕적 본성을 자각하고 자발적으로 도덕적 행위 즉 禮를 하게 된다. 여기에는 禮를 꼭 해야 한다는 어떠한 억압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맹자가 주장한 禮는 자신의 본성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틀로서의 禮인 것이다. 이와 같은 맹자의 생각은 인간의 본성이 욕망의 추구라는 서구 근대의 사상과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이다. 이런 이유 하에서 맹자의 禮論은 기존의 개인주의적 담론의 한계를 인식하고 가치주체의 자각이라는 보다 고차원적인 사회 창조를 위한 논리를 제공한다. 이 점은 현대 한국이 과감히 살려야 할 禮의 모습이기도 하다.
맹자와는 달리 순자는 지금까지 전개된 天과 人의 관계에서 天을 과감히 제거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연법칙과 인간법칙의 연계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天人相分은 자연과 인간이 각각 그 직분을 갖고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순자의 이러한 天에 관한 인식은 自然之天(Sky)의 天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인간과 하늘은 원초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순자의 이러한 天人相分은 공자의 天에 대한 인간 주체성의 확보를 의미한다. 그러나 순자는 서로 나누어졌지만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의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天을 극복가능하다는 논리를 주장하게 된다.
하늘에는 하늘의 절기가 있고 땅에는 땅의 자원이 있고 인간에게는 이들을 다스릴 능력이 있다.
... 하늘을 알려고 추구하지 않는다.
이 같은 순자의 자연관은 인간에게도 적용하게 되는데 본성과 인위를 구분하는 논의가 그것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극복가능성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인위의 극복가능성의 논의로 이어진다. 그것이 바로 化性起僞이다. 결국 순자가 자연성과 인위성을 구분하는 의도는 자연성의 악함(성악)을 강조하면서 인위성을 정당화하는 데에 있다. 여기서 순자의 禮論이 등장하게 된다. 자연성의 악함은 禮의 기원을 설명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禮는 사람의 무한한 욕망과 제한된 재화를 조절하는 데서 비롯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렇게 형성된 禮는 인간의 인위성을 발달시키는, 즉 인간의 욕망을 조절하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禮는 주어진 상황에 맞는 행위의 방식을 규정하는 성격을 지니게 된다. 결국 순자는 교육을 통하여 禮를 내면화시키고 이에 바탕한 사회질서를 형성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순자가 주장한 禮는 사회규범으로서 현실적인 사회 통합을 위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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