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인들은 하늘을 天帝로서 인식하여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으로 보았다.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그 시대에 홍수, 가뭄, 벼락 등의 천재지변은 天帝의 노함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인간은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수단으로 占을 사용하였다. 거북이 껍질, 동물의 뼈를 사용하여 占을 쳤는데 그것이 우리가 흔히 들었던 갑골이다. 이와 같이 처음에 禮가 등장했을 때는 마찬가지로 신 중심의 신에게 드리는 의식의 의미를 가졌다. ‘禮’ 자 자체가 제기에 차린 많은 음식을 의미한다. 초월자에 대한 경외심의 표현 이였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최초의 禮는 인간과 자연의 미분리를 상징하는 의식에 기초한 규범이며 제도인 것이다. 그러나 춘추 시대를 거쳐 인간은 더 이상 하늘을 믿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하늘에 빌고 제사를 지내도 남편, 아들은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의식의 변화는「시경」에 나온 怨天ㆍ罵天詩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하늘을 원망하고 꾸짖는 시의 등장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하늘에 대한 인간의 의식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전환기를 거치며 등장한 사람들이 제자백가이다. 제자백가는 하늘의 권위가 붕괴된 것에 대하여 각각의 대안을 제시한 사람들이다. 그중에서 공자는 지나친 신 중심의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인간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논의를 전개하였다. 따라서 공자를 통하여 禮는 더 이상 초월자 중심이 아닌 인간과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후 禮는 漢대를 거치며 중앙통제의 수단으로서 왜곡된 모습을 지니게 된다. 흔히들 알고 있는 가부장적 禮, 여성 차별의 禮,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禮 등이 그것이다. 한대의 禮는 올바른 禮의 모습이 아닌 지배이데올로기의 수단으로서의 禮이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한대의 왜곡된 모습의 禮가 아닌 공자의 禮 즉 인간과 인간의 관계성을 중시한 禮를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禮는 본래적으로 仁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다. 仁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곧 禮인 것이다. 공자는 “사람으로서 仁하지 못하면 禮를 어떻게 하겠으며 사람으로서 仁하지 못하면 樂을 어떻게 하겠는가?” 라고 하셨다. 이러한 仁과 禮의 관계는 공자와 안자의 대화에서 나온 ‘克己復禮’가 잘 말해주고 있다.「논어」에서 禮는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형식적인 측면 보다는 본질적 의미가 더욱 중요하다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禮는 사치하기 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하고 喪은 형식적으로 잘 치르기 보다는 차라리 슬퍼해야 한다.’ ‘禮라 말하지만 玉泉을 이르는 것이겠는가? 樂이라 말하지만 鐘鼓를 이르는 것이겠는가?’ 등을 볼 때 결국 禮는 仁이라는 근본적 의미가 서고 난 후의 문제인 것이다.(이외에도 공자는 본래 베로 만든 麻冕이 禮에 맞지만 당시 실로 짠 것도 검소하다는 측면에서 대중과 함께 하면서도, 堂上에서 절하는 것은 교만한 것이기 때문에 비록 대중과 어긋나더라도 禮를 지키겠다고 하였다. 초하룻날 사당에 고유하면서 바치는 양을 없애려는 자공에 대해 그대는 양을 아끼지만 난 그 禮를 아낀다고 하였으며, 재아가 삼년상이 너무 길어서 禮樂이 붕괴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사람이 태어나서 3년이 지난 후에야 부모의 품을 떠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워 질책하였다.)
공자에 의해 정립된 禮의 개념과 더불어 순자는 사회규범으로서의 禮를 주장하였다. 순자는 성악설을 근본으로 하여 禮는 사람의 무한한 욕망과 제한된 재화를 조절하는 데서 비롯한 것으로 설명한다. 홉스를 비롯한 근대 서구의 정치 사상가들이 주장한 법과 제도의 기원과 상통하는 면이 있는 측면이다. 결국 순자가 주장한 禮는 사회규범으로서의 禮로서 현실적인 사회 통합을 위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禮는 仁을 표현ㆍ실천하기 위한 방법ㆍ형식으로서 사회질서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禮가 어떠한 성질을 갖기에 仁을 실천하고 사회질서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禮는 別과 和라는 두 가지 성질을 지닌다. 別은 말 그대로 구별을 의미한다. 사랑이라는 한 덕목을 보아도 유학은 묵가처럼 兼愛를 주장하지 않는다. 사랑에서도 엄격한 순서가 있다는 얘기다. ‘모든 어른들을 사랑하는 것’ 보다는 ‘자신의 아버지를 먼저 사랑하고서 그 마음으로 미루어 다른 어른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別을 강조하는 禮는 좁은 의미로서의 禮를 의미한다. 그것이 곧 禮節인 것이다. 節은 마디ㆍ구별을 의미한다. 대나무의 줄기를 연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마디가 없다면 대나무 줄기는 한 통속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마디가 있음으로 하여 이 마디, 저 마디, 세 번째 마디 등등의 구별이 생기게 된다. 그에 따라 禮는 마디 즉 구별의 가깝고 먼 것에 따라 행동방식이 다르게 된다. 그것을 일컬어 禮節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디가 없는 한 통속이라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禮가 같을 것이다. 아버지께 하는 禮나 어린 아이에게 하는 禮의 구분이 없고, 자신의 어르신이나 처음 뵈는 어르신께 하는 예가 같다는 말이다. 그러나 마디가 있다면 구별을 통하여 대상 및 상황에 따라 禮는 달라진다. 사랑의 차별을 인정한다면 그러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도 차별이 있지 않겠는가? 앞으로 자세히 보게 되겠지만 禮節의 다양한 형식적 측면들이 이러한 내용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듯 구별의 멀고 가까움을 강조하게 되면 가까움 위주의 편협성을 띄는 문제가 그것이다. 구별을 강조하게 되면 편협의 중심주의를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禮는 和를 중시한다. 구별에 따른 설정 다음의, 구별에 적합한 상황 논리가 그것이다. 이것을 樂이라고 하였다. 단순한 음악이 아닌 화목을 도모하는 모든 의식이 樂인 것이다. 유격훈련 후 병사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로 시행하는 막걸리 파티도 화목을 도모하는 의식으로서의 樂이라 할 수 있다. 구별의 멀고 가까운 것에 따라 각기 다른 행동양식을 잘 수행한다면 화합을 도모할 수 있다. 상황에 맞는 올바른 행동양식을「중용」에서는 時中이라고 하였다. 定命論도 역시 이러한 時中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물이 네모난 컵에 들어가면 네모 모양이 되고 세모난 컵에 들어가면 세모 모양이 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조화ㆍ적응이 잘 되는 것이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교육생으로서 비천당에 교육받으러 오면 대통령이 아닌 학생의 禮를 다해야 한다. 그곳에서 자신이 대통령이라고 교육 통제를 받지 않는다면 온전한 교육이 이뤄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비천당 내에서의 인간관계도 온전하지 않게 된다. 구별 및 상황에 맞는 時中적 의미로서의 樂은 구성원들의 和를 이루는 禮의 한 덕목인 것이다. 결국 禮는 인간의 욕망(欲)을 절제하고 樂은 인간의 정감(情)을 절제하는 것이다. 즉 禮樂의 목적은 別과 和의 기능을 통하여 개인의 수신 및 대인관계를 원만히 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절제하여 中庸을 얻도록 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좋은 의미를 지닌 禮이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자칫 왜곡된 개념으로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이러한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하는 것은 본질적 내용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禮를 억압, 속박, 차별로 단정하여 禮에 관하여 알려고도 하지 않는 편협성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이 알고 있는 禮는 대부분이 잘못된 禮이다. 아니 禮라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심각한 상황에서 禮는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며 또한 그들에게 다가가야 될 것인가? 이와 같은 문제는 앞으로 우리들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본문에서는 禮의 정의에 관한 주제를 명시하였기에 위 문제와 관련하여 현대적 禮 개념을 살펴보고자 한다.
흔히들 조선의 예송논쟁은 당파싸움의 절정으로서 비극적인 역사의 한 사건이라 알고 있다. ‘상복 입는 기간이 뭐가 그리 중요하기에 그토록 국론을 소모하는가?’ ‘형식주의의 폐단을 벗어날 수 없는 잘못되고 수치스런 역사 사건이다.’ 등의 평이 그것이다. 또한 세계 학문의 논쟁 역사에 기록될 정도로 유명한 사단칠정 논쟁과 인물성동이 논쟁 역시 쓸모 없고 소모적인 형이상학적 논쟁일 뿐이라고들 평한다.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당시의 조선보다 현실적이고 쓸모 있는 논쟁을 하고 있는가? 세계관이 변하고 가치관이 변화된 현재의 시선으로 위 두 사건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예컨대 20세기 제일의 세계적 문제였던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립은 당시에는 삶이냐 죽음이냐의 중요한 문제였다. 많은 시간이 흘러 새로운 체제 및 사상이 등장하여 20세기의 이데올로기 대립에 관하여 평한다면 지금 우리가 판단하는 조선에 대한 비난보다 작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겠는가? 조선시대 예송 및 성리학적 여러 논쟁은 당시의 삶, 생활 자체이고 문화 자체였다. 더욱이 우리 조상들이 했던 치열한 논쟁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단순한 서양 베끼기의 성과와 차원을 달리하는, 우리화의 작업을 통하여 이룩한 고도의 문화적 수준을 볼 수 있다. 상장례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면 예송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현대의 한국인이 서양학문에 대하여 하는 것처럼 조상들이 단순히 성리학을 모방했다면 그 어떤 문제의식도 없게 될 것이다. 당시의 생활, 삶, 문화 전반에 관한 치열한 탐구와 문제의식이 없다면 등장할 수 없는 사건들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현대 한국인의 생활, 삶, 문화에 관하여 얼마나 많은 탐구와 문제의식을 갖는가? 그 흔한 논쟁하나 없는 사회, 이유는 간단하다. 외국학문을 소개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 사회에 있어 禮의 주장은 단순한 복고로의 회귀인가? 禮는 문화 그 자체를 의미한다. 문화실천운동이야말로 공자 이후 행해진 禮樂의 본모습이었던 것이다.
우수한 문화는 흘러가기 마련이다. 문화의 주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맞는 문화를 확실히 하면서 좋은 문화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무분별한 타국 문화 추종은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다. 역사적으로 세계 최고의 문화 흡입력을 자랑하는 중국에게도 만년의 시간이 넘도록 한국은 흡수되지 않았다. 그러나 근 50여 년의 짧은 시간동안 한국은 서양의 문화에 무릎을 꿇었다. 자존심이 없는 한국인, 우리 문화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제국주의 시대 침략당한 우리에게도 잘못은 있지만, 무력으로 침략한 서양 일본세력들은 아무 죄가 없었던가? 21세기는 문화 전쟁 시대가 될 것이다. 맞이하며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한국 문화는 무엇인가? 일상의 문화가 아니면 그 문화는 죽은 문화이다. 단순한 복고가 아닌 현재에 맞는 문화재창조의 작업이 시급한 때이다. 그것이 바로 禮樂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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