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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자유인 일기 75]시새 시새와 왜철철 왜철철 |
| 글쓴이 |
최영록 |
작성일 |
2005년 04월 03일 20시 49분 13초 |
| E-mail |
yrock22@naver.com |
조회수 |
1638 |
오라버니 오라버니 올 가을엔 나 좀 시집 보내줘
작년에는 오줌 쌍개로 ‘시새 시새 새새’하더니
올 팔월에는 오줌 쌍개 ‘왜철철 왜철철’하네
내 건너 꼬부랑 암소 팔아서 날 시집 보내주
<호남평야 민요>
환부없는 아픔이 온 몸을 멍멍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시절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입가에 의뭉한 웃음이 슬며시 피어 오릅니다. 그러다 가슴이 뭉클 아릿해옵니다. 우리 6남매도 한 이불 덮고 그렇게 자랐습니다. 추운 겨울밤 밥 짓느라 불 땐 초저녁 구들방은 참으로 따뜻했습니다.
온 종일 들로 산으로 천방지축 뛰어다니던 나와 내 동생은 저녁을 먹자마자 곯아 떨어졋습니다. 형들과 누나들은 동네 마실을 나갔습니다. 홀로 계신 어머니는 구멍난 양말을 깁거나 가축들 추울 세라 닭장과 돼지우리를 살펴 보셨습니다. 전깃불도 안들어오던 우리 시골마을 등잔불 밑이지만 참으로 아늑하고 조용했습니다.
문득 새벽 잠결에 온 몸이 추워지기 시작합니다. 새우처럼 구부리고 이불 속을 파고들지만 이불은 언제나 형들아니 누나들 차지입니다. 한 이불 밑 6남매가 이불 쟁탈전을 시작한 것이지요. 방 구들은 이미 차디 차게 식어 이불이 없으면 그대로 노천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나나 동생은 힘이 부족합니다. 아무리 이불을 잡아 당겨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몸은 굽은 새우를 지나 이젠 꽈리를 열두 번쯤 튼 뱀처럼 어디가 머리이고 어디가 퀴퀴 냄새나는 발인지도 모를 정도가 됐습니다. 게다가 왜 그리 오줌보는 터져 나가려 하는지요. 하지만 일어나 ‘쉬’하는 것은 죽기 보다도 싫었습니다.
‘어휴 밖은 엄청나게 추울텐데. 고추가 금방 탱탱 얼어버릴 텐데...’ 그때 형들이 먼저 일어나 문밖 마루에 있는 놋요강에 쉬를 합니다. “철철철...” 그 소리가 나이애가라 폭포 떨어지는 소리처럼 시원스럽습니다. 오줌발이 요강 위쪽에 떨어질 땐 그 소리가 절간의 풍경소리처럼 청아하기조차 합니다. 요강이 놋요강이기 정말 천만다행입니다. 사기요강이었다면 마루가 그만 한강바다가 됐을 것입니다.
오줌 누는 것도 금세 전염됩니다. 이번엔 누나들 차례입니다. 누나들 오줌소리는 아주 조심스럽니다. 처음엔 ‘시새 시새 새새’하다가 나중에 ‘쏴아’ 합니다. 형들은 씩씩하고 시원스러웠는데 누나들은 조심스럽고 부드럽습니다. 꼭 내 귀에 대고 ‘밥 먹었냐. 어디 아픈 데 없지? 자, 이젠 쉬-하고 자야지’ 하고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이쯤 되면 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비틀비틀 일어나 문을 열고 마루로 나갑니다. 찬 기운이 확 다가와 내 몸을 움찔하게 만듭니다. 저만치 마루 구석에 너부데데한 놋요강이 빙긋이 웃으며 앉아 있습니다. 주위 마루바닥은 온통 오줌 파편으로 질펀합니다. 용케도 그 틈새를 내 발이 비집고 들어와 정자세를 취합니다. ‘또르륵 또르르르... 출출출’ 꼭 또랑물 흘러가는 소리입니다. 시냇물 소리처럼 별로 우렁차지 않습니다.
그래도 내 다음 차례인 동생보다는 훨신 우렁찹니다. 동생은 ‘출출출...' 아직 사나이의 그 소리가 아닙니다. ‘아무렴, 아그냐. 밥 좀 한참 더 먹어야 되것다 잉?’
찢어지게 가난한 시골, 게대가 아버지 어머니까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오빠가 가장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겠지요. 동생들은 많고 물려받은 것은 가난 뿐이고, 오빠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그런 오빠를 동생이 몰랐을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앞집 꽃순이가 시집간 대도, 뒷집 복순이가 시집간 대도 묵묵히 오빠 뒷바라지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속마음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요. 밭에서 김을 맬 때나 남의 집에 품팔러 갔을 때나 자신도 모르게 맺혔던 슬픔이 노래가 되어 나왔습니다. “오라버리 오라버니, 나 시집 보내줘. 응. 작년엔 오줌 누니까 시새시새 새새 하더니 올 8월 오줌 누니까 왜철철 왜철철하네”
얼마나 시집가고 자팠으면(싶었으면) 어릴 적 내가 들었던 형들의 오줌소리보다 더 큰 ‘왜철철 왜철철’ 소리가 났을까요. 표현도 참 질박합니다. 저절로 소웃음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가슴이 짠합니다. 더구나 집에는 늙고 병든 꼬부랑 암소 한 마리밖에 없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소는 집안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재산입니다.
큰 누나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목사 팬입니다. 난 그게 싫습니다. 천국은 내 마음속에 있는데, 누나는 그렇지 않다면 가끔 눈에 광기를 띱니다. “교회가라. 술 먹지말라. 집에 일찍 들어가라. 건강 조심해라” 보통 잔소리가 아닙니다. 한 나무에서 난 잎이지만 생각은 이제 천리가 넘게 벌어졌습니다. 조카들도 매형도 꼭 남의 식구같은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저번에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남편없이 홀몸으로 39년간을 오직 6남매만을 위해 사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님을 땅에 묻고 얼마후 지나가는 이야기로 큰누나에게 옛날 겨울밤 놋요강에 오줌누는 얘기를 했습니다. 왜 누나들은 그 소리가 ‘시새 시새 새새’하다거 나중에 ‘쏴아’했느냐고 물었습니다.
큰누나는 금세 뒤집어졌습니다. 배꼽을 잡고 한참동안 방을 뒹굴며 웃고 또 웃었습니다. 한참을 웃고난 누나는 “어찌 웃었는지 눈물이 다 난다”며 “썩어 죽일 놈”하며 나에게 곱게 눈을 흘겼습니다. 그러는 누나는 꼭 어머니 같았습니다. 나도 눈물이 살짝 났습니다.
합장.
어떻습니까. 이런 추억 한두 자락쯤 가지고 계시겠지요. 저는 더도덜도 말고 딱 요렇게 맛깔스런 글, 한 편 쓰는 게 소원입니다. 내가 썼다고 우기고 싶을 정도니까요. 불행히도 이 글은 저의 막연한 친구의 작품입니다. ‘백수일기’를 쓴다고 하니까, 요런 식으로 글을 엮어보면 어떻겠냐며 앉은 자리에서 한 30여분 두들긴 게 바로 이것이니, 내공이 보통을 훌쩍 뛰어넘지요. 그러니 제가 언제나 그 벗을 보면 깜빡 죽지요. 말하자면 저에게 보여주는 ‘샘플’인 셈인데요.
얼마나 재미있고 놀랐더니 튀어나온 말이 이랬습니다. “야, 이거 절창(絶唱)이다, 야” 정말 ‘절창 그 자체입니다. 아무에게나 ’ 나의 벗이 썼다‘며 자랑하고 싶으니까요. 왜냐구요. 이 글은 시청각을 동시에 갖추었잖아요. 오줌 싸는 소리 들리시죠? 소리야 가지가지겠지요. 아버지가 내는 소리는 ’와랑와랑‘일지도 모르고 큰 형님이 내는 소리는 ’찰 찰 찰‘일 수도 있겠지요. 그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같지 않나요. 또한 무언가 흘러간 영화처럼 어느 장면이 눈에 보이지 않나요? 골마리를 까는 동작, 싸고난 후 샅을 추스르는 장면들.
그래서 저는 이 글에서 시청각의 묘미가 그대로 살아나는 아주 훌륭한 칼럼이라고 말합니다. 저만 그럴까요?
글을 다 읽고 난 후에 은근하게 밀려오는 페이소스(pathos)에 한동안 정신이 멍해졌지요. 이윽고 잔영처럼 어느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허연 궁둥이’였습니다. 할머니는 당시 아마 30여년을 과부로 사신 60대였을 것이고 어머니는 30대 후반쯤 되었을 것입니다. 방 윗목에는 수수대로 엮은 고구마‘창고‘가 겨우내 양식으로 기다리고 있고 좁은 방안에는 손자 몇 명이 아무렇게나 자고 있었겠지요. 밖은 시베리아 찬바람이 불어오니 놋요강(우리는 오강이라고 불렀음)을 마루에다 놓고 일을 보기는 고통스런 일이었겠지요.
새벽쯤 되었을 것입니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오줌소리가 어떤 소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둠속에서 가끔씩 보던 어머니와 할머니의 허연 엉덩이만은 뚜렷이 떠오릅니다. 결코 외설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어머니의 엉덩이는 둥글넙적하고 말처럼(실제 말띠입니다) 튼실해 보기 좋은 반면에 할머니의 엉덩이는 빈약하고 힘이 없어 보여 마음 한 켠이 은근히 아프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소리도 당연히 그랬을 것입니다. 할머니는 ’시새 시새 새새‘하다가 ’졸졸졸‘ 흐물흐물 말았을 것이고, 어머니는 시종일관 ’왜철철 왜철철‘했을 것입니다.
그 분들은 설마 아들막동이가 당신들 엉뎅이를 훔쳐보는 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겠지요. 어쩌면 꿈에서 봤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여동생이 3명 있었지만 다행히 오강과 연관된 추억은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추위가 조금 덜한 날은 오강을 마루에 놓지요. 4남3녀 일곱손주가 싸대는 오줌줄기와 양 때문에 매일아침 할머니는 진저리를 쳤을 것입니다. 당신들 것까지 합쳐 9명이 한밤 내내 싸대면 중간에 한두 번 비워야 했으니까요. 아마 막내였겠지요. 아니면 나인지도 모르지만, 한번은 오강에 ‘큰 것’(똥)을 쌌다가 직사허게 혼이 났습니다. 모두다 자기가 한 짓이 아니라니 싸잡아 욕을 먹을 수밖예요. 아버지는 언제나 마당으로 나가시지요. 얼마나 그 뒷모습이 의연했던지요. 우리 집안의 하나뿐인 당당한 가장이었으니까요.
왜 그렇게 제대로 슛이 안되든지요. 중학생쯤이면 새벽녘 꼬추가 성이 나 손으로 눌러가면서 싸야 했습니다. 형들한테 또 오강 바깥에다 쌌다고 혼이 나니까 그럴 때는 ‘참 어머니랑 여동생들은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문고리에 손이 턱턱 달아붙는 아침 마루바닥에 흘린 오줌흔적을 지우며 닦는 일은 늘 형들 몫이었으니까요. 어쩔 때는 노랗게 얼어있기도 했습니다. 여자들은 턱 허니 앉아서 싸니까 밖으로 샐 일이 없잖습니까.
고등학생때쯤이면 비로소 아버지 흉내를 냅니다. '달걀귀신 있다‘고 하여 얼씬도 못하던 헛간의 ‘칙간’을 이용하게 되지요. ‘성인’이 되었다는 뿌듯함에 허리를 쭉 펴고 뒷짐을 진 채 일을 봅니다. 나오지도 않는 헛기침을 ‘허엄 허엄’하기도 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은 그렇게 시나브로 되었던 것같습니다.
놋요강은 그 수많은 ‘물총’에 못견뎌 곳곳이 빵꾸가 납니다. 오강 때우는 사람이 안오면(동네마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었음) 오일장에서 때워가지고 오지요. 사기오강은 크기도 큰 게 별로 없고 자주 깨지더군요. 지금사 때우는 곳을 생각해보면 우숩습니다. 아파트 진입로등에 속도를 줄이라는 뜻으로 턱을 만들어 놓은 것 있지요. 꼭 그렇게 두툼하게 때웁니다. 오강은 도토롬하게 올라온 몇 군데 때움흉터때문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뒤뚱거리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손으로 가양(가)을 잡고 일을 봐야 합니다.
저를 비롯해 세 형들도 중학교를 넘어 고등학교때까지 오강신세를 졌을 거예요. 그런 추억때문이었을 겁니다. 큰 형님과 셋째형의 ‘희한한 오강싸움’이 벌어진 것도. 어느 해 셋째형이 시골을 다녀오면서 놋요강을 가져온 것이 사건의 발단입니다. 집들이를 하는 데 큰 형님이 셋째형집의 진열장에 점잖게 놓인 놋쇠요강을 보았답니다. 정색을 하면서 ‘왜 이 요강이 여기에 있느냐‘고 했다지요. 재미있어 한바탕 웃고 끝날 사건이지만, 고지식한 이 양반이 워낙 정색을 하며 말하니까 셋째형수가 민망했겠지요. ’그럼, 시숙어른. 가지고 가세요‘하며 가는 길에 내드렸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우리들의 놋요강‘은 큰형님댁에 그렇게 가게 되었답니다. 아무래도 큰형님이 오강과 관련한 추억이 있어도 우리보다야 훨씬 더 있겠지요. 그 ’별스런 애착‘도 나쁘게 생각되지 않드라구요. ’아끼는구나. 우리들의 추억을. 그리고 간직하고 싶어 하시는구나. 역시 큰형이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온통 때움천지인 그까짓 물건이 무슨 골동품이라고, 또 무슨 돈이 되겠다고 욕심을 부렸겠어요. 애틋한 그 마음이 가지고 있고 싶었겠지요. 마땅한 말이 없으니까 ’장자‘(큰아들)를 들먹였을 거구요.
예전에는 혼수중 빠뜨리지 않는 것중 하나가 바로 ‘요강’이었답습니다. 대개는 스테인리스 요강이었지요. 나의 아내도 꼭 자기만한 요강을 갖고 ‘이쁘게’ 시집을 왔습니다. 아마 허드레창고에 쳐박혀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한번이라도 써먹어봤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니, 할머니의 허연 엉덩이를 훔쳐본 것처럼 아내의 ‘싱싱한’ 엉덩이를 훔쳐본 기억이 없으니까요. 한번쯤 보고 싶은 풍경인데. 오늘밤이라도 요강을 잘 닦아 슬며시 침대밑에 놓아볼까요? 이놈의 아파트는 안방에도 화장실이 있으니 참 웃기지요. 더구나 비데라니요?
놋요강, 빵꾸를 수십군데 때운 놋요강. 아버지를 제외한 9명이 매일밤 차례차례 그 깊이를 모를 정도로 제법 큰 놋요강에 엉덩이를 철벅철벅 걸쳤겠지요. 펑퍼짐한 늙은 호박만 했지요. 그 오강, 가질 수만 있다면 나도 갖다가 모셔놓고 싶을 정도니까요. 한 이불에 7남매가 자면서 이불쟁탈전을 벌였듯이 말입니다.
우리들의 겨울밤은 그렇게 길게 길게 놋요강의 오줌소리와 함께 가고, 이윽고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왔답니다. 봄이 왔어요. 얼음장 밑에서 봄을 재촉하는 발걸음소리는 '시새 시새 새새'입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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