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 이 이름을 기억하는가. 짧은 문인의 삶치고 한국문학사에 너무 큰 획을 긋고 떠난 천상의 작가. 2004년 남원시는 국고 보조금에 보태어 주무대인 매봉마을 뒷자락 6000여평에 469억원을 들여 ‘혼불문학관’을 지었다. 이건 정말 감격스럽다 못해 너무나 기념비적인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도대체 ‘혼불’이라는 대하예술소설이 무엇이관대, 이런 아기자기한 일이 생겨났을까. 우리에게는 박경리선생의 ‘토지’도 있는 마당에.
그러나 그 님은 박선생님 못지 않게, 아니 더한 마음으로 문학을 위하여, 우리의 자랑스런 모국어를 위하여 전력투구했다. ‘소살소살’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북한강 어귀에서 한 밤을 꼬박 새며 물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이금림이라는 극작가와 함께). 이 단어에서 한 자를 따고, 저 단어에서 한 자를 따 한 단어를 만든 기가 막힌 조어법(造語法)을 어느해 KBS ‘역사스페셜’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소살거리는 청량한 물소리’ 무슨 뜻인지 감(感)이 오긴 오는가?
그 님은 말했다. “원고를 쓸 때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는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고. 나의 기억 하나. 기고문을 쉽게 찾을 수 없어 그러는데, 83년인가 있었던 ‘한민족의 눈물바다’를 기억하는가. 몇날 며칠 방영된, 이른바 ‘이산가족 상봉‘. 그 현상을 보고 쓴 님의 칼럼 한 편. 지금도 찾아 읽어보고 싶다. 한(恨)으로 점철된 ’우리만의 정서‘를 님만큼 읊어낸 사람을 보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절창(絶唱)을 할 수 있었을까. 감탄, 또 감탄했던 게 벌써 20년도 더 전이다.
님은 외국 어느 대학의 특강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던가.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다. 한 나라 한 민족의 정체는 모국어에 담겨 있다” 이만한 철학이 있었기에 하나의 작품을 비단실로 아롱다롱 수놓았을 것이다. 1980년부터 1997년까지 17년동안 오로지 이 작품만을 위해 한밤을 꼬박 새우며 가슴앓이를 하며 ‘글쓰지 않는 사람을 미치게 부러워한’ 그는 산소호흡기를 끼고 죽어가면서도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을 띄엄띄엄 말했다고 한다. “혼불 하나면 됩니다...아름다운 세상입니다...참으로 잘 살고 갑니다”라고.
어차피 천상 문인(예술가)는 그렇게 살고 가는 게 아닐까. 천상시인 천상병은 천상병식대로 살다가 죽어가면서 ‘아름다운 이 세상에 소풍갔다 왔다’며 하느님께 보고했을 것이고, 천재화가 이중섭은 이중섭대로 먼저 간 아들에게 천도복숭아를 건네주며 사랑하는 남덕여사를 천상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근원에 대한 그리움으로’ 써내려간 원고지 1만2천장. 한길사 발간 10권. 혼불은 민속학적 백과사전을 뺨친다. 민족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음식, 노래의 유장하고 도도한 복원을 보라. 어찌 혀를 내두르지 않겠는가. 전라도 사투리나 방언이 어려운가. 그럼 공부를 하라. 명창이자 국창 박동진선생님도 말했다. 전라도 사투리로 하지 않으면 판소리가 아니다라고. 왜냐하면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글과 말속에, 우리의 혼속에서 말이다. 혼불이야말로 일제 강점기를 통과한 사람들의 꺼진 영혼을 환하게 지펴 올리는 해원의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어릴 적 할머니에게 들었다. 어느 집 초가지붕 위로 한밤중 ‘혼불’이 나가면 그 집안 누군가가 석 달이나 삼 일 내에 죽는다고. 혼불은 둥근 접시만한 크기의 푸른색을 띠었다고.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맨 먼저 고인의 옷을 들고 지붕으로 올라가 초혼(招魂)을 하며 돌아오라고 삼세번 외쳐댄다고. 그러고보니 어쩐지 푸르스름하고 끝이 뭉퉁한 혼불이란 것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진짜로. 또 그랬다. 어느 지붕이나 그 집안을 지키는 ‘업구렁이’가 있는 벱이라고. 업이 다무락(담장)을 넘어 사라지면 그 집안은 흉한 일이 연속돼 결국 흉가가 되고 만다고. 혼불은 본 것 같지만, 아마 상상속이었을 터이지만, 업구렁이는 진짜로 봤다. 느시렁느시렁 돌다무락을 넘던 것 말이다.
아마 님은 그런 얘기를 쓰고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아직도 할 말이, 쓰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그래도 작가는 만족하고 눈을 감는다. “혼불 하나면 됐다“고.
골동품적인 가이드 황영순여사(평범한 동네이장 마눌님인데, 혼불 10권을 몇 번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말하자면 재야(在野) 혼불박사, 혼불 ‘빠꿈이’다. 청호저수지 유래를 물어보라. 바로 천추락만세향(千秋樂萬世享) 설명이 이어진다. 초등학교 때 소풍길이었다고 한다. 이 아주머니의 ‘인간승리’ 인터뷰는 매스컴에 수차례 보도된 바 있다. 전라선 남원역 코밑에 간이역(곽재구의 ‘사평역에서’의 사평역도 간이역이다) ‘서도역’이 있다. ‘혼불’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역사 속에서 멸실됐을 이름이다. 서도역 폐쇄 3일전에 철도청장등에 청원장을 내어 1932년 준공 당시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살려낸 여장부이다)의 설명이 이어지는데, 어느 곱게 늙으신 할머니(근처에 사신 모양이다)가 느닷없이 묻는다. “가가 기껏히야 서도리 아구만”(이 딸래미가 그래봤자 이 근처 서도리에 사는 애기구만 : 고향출신이라서 이물다-친하다-는 뜻으로 묻는 말이다). 이어 또 묻는다. “야는 근디 왜 그렇게 일찍 갔대?” 촌철살인이다.
치열한 삶이다. 삼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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