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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자연에 다가가 생각에 이르다. |
| 글쓴이 |
김경수 |
작성일 |
2005년 03월 31일 14시 30분 28초 |
| E-mail |
kks1789@naver.com |
조회수 |
1581 |
‘전통과 현대의 조화’라는 화두로 자주 인용되는 사진 구도이다. 성균관대학교 역시 비천당의 지붕과 600주년 기념관을 겹친 사진이 학교 사이트에 자주 선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웃기다. 이것은 조화가 아니라 폭력이다. 더욱이 이런 사진 어느 것을 보아도 현대 건물이 항상 위에 위치한다. 현대가 전통 위에 군림하여 숨 막히게 누르고 있는 답답함의 표현인 것이다. 물론 현대 건물이 높아서 그러하겠지만 어찌되었든 조화는 결코 아니라는 일관된 생각만큼은 변화가 없다. 조화는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관계이다. 조화는 곧 어울림이다. 더욱이 이 같은 구도는 직선과 곡선의 부조화이다.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다. 가공하지 않은 모든 것은 곡선이다. 한옥은 가공적이기는 하지만 곡선의 선만큼은 잘 살리고 있다. 天圓地方이라는 말 때문에 지붕은 곡선으로, 본 집은 직선으로 만들기는 하였지만 지붕의 곡선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 모든 것이 직선인 현대 건물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자연적인 모든 것은 곡선이다. 산, 강, 바다, 잎사귀의 그물맥, 둘둘 말아 올라간 진도견의 꼬리 등등의 모든 것이 곡선이다. 곡선과 곡선은 잘 어울린다. 산 속에 있는 암자를 봐도 하나의 예술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직각의 건물이 들어선다면 그 같은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굳이 부조화의 추상예술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예술에 관하여 문외한이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울림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해도 어울림은 절대 아니다.
한옥의 곡선을 연장하면 큰 원이 그려진다. 원은 둥글다. 둥근 것은 모난 것 보다 덜 아프다. 덜 아픈 것은 부드러움이다. 모난 것은 절도 있는 나눔이다. 차갑고 냉정한 기계다움이다. 부드러움과 기계다움 중 인간은 어떤 속성과 더 가까운가? 물론 부드러움이지 않을까? 인간은 인간다워야 한다. 그 말은 곧 모남이 아닌 구부러짐이다. 모든 것을 나누고 구분하는 이성적 판단으로 행하기에는 인간은 너무도 인간적이다. 정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관계를 이해타산의 나눔으로만 생각하기에는 인간은 너무도 약한 존재이다. 때로는 손해를 보아가며 남을 도울 수 있고, 때로는 정열적으로 사랑하여 그/그녀를 위해 헌신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여 이성적 요소가 아주 없다면 그것도 문제이다. 하지만 자연의 모습이 곡선임을 감안한다면 인간 역시 곡선적인 미덕이 인간 본래의 모습이라 생각하고 싶다. 곡선적인 미덕.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힘과 폭력의 억셈은 아닐 것이다. 날카로운 지적인 비판도 아닐 것이다. 부드러움과 따뜻함의 덕목은 어떨까? 어머니의 품과 같은 포근함과 따뜻함이야 말로 곡선적인 미덕의 전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머니의 포근하고 따뜻한 품은 무엇에 기인하는가?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에 기인하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 사랑이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말이다. 그러한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인간다움은 아닌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본다. 만인을 어머니가 자식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한다면 우리 사회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물론 지극히 이상적인 생각이다. 허나 만인이 아닌 가까이에 있는 사람만이더라도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일까? 그것도 어렵다면 한사람만이더라도 그 사람이 부모이든 나 자신이든 친구이든 연인이든 내 상관이든 내 고장이든 어머니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없을까?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하려는 노력을 안 해서 그렇지 노력을 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받으려는 사랑보다는 먼저 주는 사랑의 노력을 한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같은 사랑을 악용하는 못된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 주위에는 숨은 착한 사람들이 더 많다. 원래 善이 특성적으로 은둔의 경향이 있지 않은가? 가을을 맞이하여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 특히 20대의 젊은이들에게는 꼭 말씀드리고 싶은 내용이다. 혼자서 느끼는 행복도 좋지만 그 행복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 더욱이 그 행복이 그 사람에 의해 생겼다는 것을 느끼는 것도 참 멋들어진 행복인 것 같다.
元자 형의 구조를 하고 있는 해풍부원군의 가옥이 있다. 元자에서 ⺎이 집의 형태이고 사당은 머리의 ⼂ 위치에 있다. ‘재밌다’란 생각에서부터 ‘왜 하필 元자 인가’란 생각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집에서 사당을 볼 때 어떠할까’란 호기심이 가장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가옥의 대청에 누워 바라본 사당의 모습을 찍어 보았다. 거리도 가까울뿐더러 대청의 문을 활짝 열면 사당이 반가이 맞아준다.
가옥이라는 현재와 사당이라는 과거는 시공간에 함께 존재한다. 사당에 모셔진 분들에 의해 현재의 나는 태어났다. 사당 속의 과거는 언제나 현재를 있게 한 은인이자 귀감이다. 더 이상 과거는 과거가 아닌 현재의 과거로서 현재와 공존한다. 공존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내 뿌리와의 공존을 통하여 역사성을 지닌 생명의 소산으로 다시 탄생한다. 왜 지금 여기에 내가 태어났는가? 내 뒤에는 무한소의 확률과 무한대의 경우의 수로 이뤄진 탄생 확률이 존재한다. 물론 내 탄생의 희소한 확률 때문만으로 내가 소중한 것은 아니다. 장구한 조상의 역사는 그 자체로 내 탄생을 위한 역사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도 거만한 해석이다. 조상은 곧 나다. 나는 곧 조상이다. 존재 이유 하나만으로 소중한 생명은 生生不已의 역사성을 가진다. 내 생명은 내 것이기도 하지만 내 조상의 것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함부로 생명을 다룰 수 없다. 이러한 틈바구니 속에서 생명을 소중히 하고 내 몸가짐을 신중히 하는 내 자신에 대한 사랑이 시나브로 싹트게 된다. 내 자신에 대한 사랑은 보다 훌륭한 인간이 되려는 노력으로 연결된다. 노력하는 내 자신과 그 귀감으로서의 조상은 내 마음 속에서도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공존은 내 시조를 낳으신 天地自然에게 까지 연결된다. 어느덧 나에게 있어 天地自然은 나와 공존하는 친구이자, 나를 낳아준 은인이면서, 인생의 귀감으로 조상과 함께 다가온다.
공존하는 천지자연과 조상, 나와의 관계를 통하여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입신양명하여 이름을 떨쳐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성인군자가 되어야 하는가? 친구이면서 은인이고 귀감이 되는 그들이 지금의 나에게 던지는 의미가 무엇인가? 모든 생명은 과거의 장구한 역사성을 지닌다. 이러한 역사성은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지속됨을 의미한다. 내가 받은 생명의 마침은 곧 다른 생명의 창조로 이어진다.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새로운 탄생으로의 전환일 뿐이다. 개구리가 울고 새가 지저귀는 것은 이러한 생명창조의 몸부림이다. 그 모습이 바로 나와 공존하는 자연의 모습이다.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한 제반의 심리와 행위는 더 이상 본능, 욕망이 아닌 나의 삶을 이루는 에너지이자 원리이다. 단순한 가문 계승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의미가 아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내 은인인 자연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보답이다. 또한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유일의 방법이기도 하다. 나를 살리고 너를 살리고 내 자식을 살리고 나무 한그루를 살리는 生生의 원리가 바로 仁이며 사랑이며 자비인 것이다.
이러한 원리가 오인된 결과로 많은 비참함이 등장하였다. 더욱이 자본 및 지배 권력의 수단으로 옷을 바꿔 입은 폐해는 너무나도 심각할 정도이다. 숭고한 행위가 저질의 행위로 나락함은 물론 죽이는 원리로 까지 바뀌게 되었다. 그리하여 과거는 과거이고, 미래는 미래일 뿐 이어짐이 없는 단절로 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역사성을 상실한 나는 죽으면 소멸하는 허무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어차피 없어질 텐데 뭐 그리 고생하느냐?’의 쾌락주의는 허무한 존재의 결론이자 답이다. 조상은 잊은 지 오래고 天地自然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닌 내 하인이 되어버렸다. 생명의 탄생은 귀찮음ㆍ무관심의 대상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오로지 나를 위한 것만이 나의 삶을 이루는 에너지이자 원리이다. 단절과 나눔, 이로움의 추구만이 나를 지배하는 아니 내 자신의 삶의 목적이자 모습이다. 너무나도 초라하고 외로운 내가 된 것이다. 세상은 지옥이다. 그럼에도 나는 살 수 있다. 초라하고 외로운 내 모습과 경쟁의 치열함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세상이 지옥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어떠한 경우가 좋고 나쁜지를 떠나 나는 어차피 나라는 삶을 영위하게 된다. 삶을 영위하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의 가치를 따지고, 무엇은 어떠하다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인간은 많은 생각과 경험을 하게 된다. 또한 자유와 평등이 무엇이고 민족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분분한 의견을 내세우며 대립도 갈등도 하게 된다. 이러한 삶의 모습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내가 보다 더 잘 살기 위해 탐구한다는 목적이 아니더라도, 우주에 관하여ㆍ나에 관하여 보다 더 알려고 하는 생명에 관한 관심은 기본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지 감히 주장해 본다.
선비들의 방은 그리 넓지가 않다. 경상도 그리 큰 편이 아니다. 좁은 방 속에서 작은 책상을 사용하였지만 선비들의 생각은 넓고 크고 다양했을 것이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으면 사진처럼 창문을 열었을 것이다. 창문을 통해 나타나는 넓은 뜰과 연못(물론 그 당시에도 현재와 같이 연못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다. 연못이 있지 않았더라면 창문을 통해 나타나는 정경은 백성들의 가옥 혹은 장터 혹은 길 등의 것들이 아닌지. 무엇이 있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무어 중요하겠는가? 앉아서도 밖을 훤히 볼 수 있는 창문과 그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선비가 아니겠는가?)을 바라보며 선비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단순한 ‘경치 좋다’의 생각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생각을 했을까? 천하를 논하고 우주만물을 논하였을까? 아니면 일신의 행복 추구를 생각했을까? 무슨 생각이건 간에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무엇을 공부했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생각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아는가? 공부는 안하고 낮잠만 늘어지게 잤을지. 아니면 책을 폈지만 임 생각만 했을지. 그러한 상상에 이르러선 ‘히힛’하고 웃음이 절로 나오기도 했다. 여기서 공부 한번 하고 싶다는, 내 자신도 믿겨지지 않는 생각도 들었다. 한번 앉아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유일한 방이기도 하였다.
바깥의 풍경은 사계절마다 달라진다. 변화하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점점 성숙해지는 내 자신을 느꼈을 때의 희열이란 과연 어떤 기분일까? 매 계절마다 달라지는 자연을 바라보며 인생도 역시 그와 같다는 생각을 하였을까? 봄에는 씨를 뿌려야 한다. 공부하고 있는 이 시기는 씨를 뿌리는 인생의 봄 같은 시기이다. 봄에는 씨를 뿌려야 한다. 이때 씨를 뿌리지 않고 수확하려고만 한다면 수확되어지는 것은 절망감뿐이다. 봄에는 씨를 뿌려야 한다. 이때 씨를 뿌리지 않고 무성하게 하려고만 한다면 무성해지는 것은 공허함과 후회뿐이다. 봄에는 씨를 뿌려야 한다. 이때 씨를 뿌리지 않고 쉬려고만 한다면 인생 전체를 영원히 쉬게 될 수도 있다. 내가 그 같은 생각을 하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군대 가기 전, 학교에 대한 불만과 내 능력에 대한 실망은 한동안 방황의 길로 빠지게 하였다. 불만과 실망을 그대로 놔둘 수 없어서 다른 부분으로 전이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돈이었다. 그때는 눈에 불을 켜고 돈을 벌었었다. 낮에는 막노동을 하고, 밤에는 고3 수능 과외를 하였다. 남들처럼 옷 사고 술 마시고 하는 곳에는 전혀 돈을 쓰지도 않았다. 그렇게 1여년의 시간이 지나자 큰 돈을 모을 수 있었다. 통장에 차곡차곡 모아두었지만 내가 군에 가게 되면 물 새듯 조금씩 어디에 쓴지도 모른 채 통장의 돈이 다 없어질 것 같아 차 한 대 사고 군에 입대했다. 그 차는 아직도 잘 돌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제주도처럼 장거리 운행을 하지 않는 곳에서는 사실 큰 차가 필요 없다. 고속도로도 없는 섬 지방에 무슨 큰 차가 필요하겠는가?) 그런데 그 나이에 스스로 벌어 차를 샀다는 자랑보다는 내가 지금 이런 일을 할 때인가 하는 두려움이 너무 앞섰다. 한창 배워야 하는데…. ‘어린애가 벌어봤자 얼마나 벌겠냐’하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소심한 내 성격 때문에 그러했거니 하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차를 팔아서라도 공부를 했어야 했다. 물론 그 같은 방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얻음인지 아니면 얻음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내 합리화인지에 관해서는 솔직히 말할 자신이 없다. 젊었을 때는 많이 뿌려야 한다. 그것은 무협지 버전으로 내공을 쌓는다는 말이다. 경험이든 지식이든 물론 내 방황 역시 하나의 경험으로 인정하고 싶지만 그런 경험은 군대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여전히 누가 뭐라고 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인상이 굳어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인상 안 좋다는 말을 듣는다. 단지 느는 것은 삽질 능력과 눈치 보는 능력이다. 그 같은 능력이 얼마나 많이 쓰여 질지 알 수는 없지만 어찌되었든 따지고 싶지 않은 부분이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난 봄에 대하여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뿌리지 않고서 얻으려고 했던 지난 과거의 어리석은 모습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하다. ‘어쩌면 그러한 방황이 있어서 현재의 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은 해보지만 아직도 관계 면에서나 경험 면에서나 생각 면에서나, 한마디로 모든 면에서 많이 부족하고 많이 배워야 하는 내 자신이 존재할 뿐이다.
봄에는 봄에 적절한 것을 해야 하고, 여름에는 여름에 적절한 것을 하며, 가을에는 가을에 맞는, 겨울 역시 겨울에 맞는 것을 해야 한다. 춘하추동의 이치가 곧 인간의 이치이며 자연 만물의 이치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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