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강에서 이름의 소중함과 무거움에 대하여 얘기했지요.
이제 좀 생소한 '작명례'(作名禮)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야 이제 아무리 늦둥이래도 아이 낳을 일은 없을테고(최근 장가간 새신랑 말고는), 외손주볼 날이 가까워졌으니 한심지경이기는 하지만, 그럴수록 아실 것이 있습니다.
예전엔 한 가락 한다는 집안에서는 통상적인 생활 이외의 일이 발생하면 반드시 사당에 '유사즉고'(有事則告) 조상에게 알린답니다. 출산의 경우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름은 무엇입니다"(生子名某)하고 말이지요.
'내칙'(內則:아내의 도리를 정한 책)에는 "아이를 낳은지 석 달이 되는 그믐에 날을 잡아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아버지에게 뵙게 하고, 아버지는 아이의 오른 손을 잡고 큰 소리로 이름을 지어 부른다"(子生三月之末 妻以子見于父 父執子之右手 咳而名之)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뿌리'라는 흑인들의 뿌리찾기 책, 기억하시죠? 아이를 낳으면 달빛에 핏덩이를 높이 들어올리며 "훌륭히 자라 부족을 잘 일으켜라"며 아버지가 천지신명께 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만큼 우리 조상들은 아이를 낳으면 신성시하고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이지요. 일종의 엄숙하고 경건한 의식(ceremony)을 하는 게 '작명례'입니다.
옛날에는 영아 사망률이 높아 생후 일백일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생존여부가 문제 아니고 이름을 짓고 일가친척과 한상 그들먹하게 먹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겠지요. 출생신고를 2주내엔가 해야 하니, 작명례라는 의식도 앞당겨져야 겠지요.
먼저 명첩(明帖)를 작성합시다. 일정한 서식은 꼭 필요합니다.
명첩은 너비 30cm 길이 50cm정도의 백지를 7칸으로 접어
붓펜으로 씁시다.
첫째칸은 빈 채로 놔두고
둘째칸에 부모를 씁니다. 아버지의 학위, 직급, 본관, 성명. 어머니의 학위, 당호, 본관, 성명을 쓴 후 출생차례 0남(0녀)을 씁니다.
셋째칸 조상을 쓰죠. 본관 성씨 00世 000파 000 0대손, 000댁 000 0대손
넷째칸 생년월일. 사주(四柱) 갑자 을축 병인 정묘
原, 0000년 0월 0일 00시 00분 生, 출생지 표시
다섯째 칸 이름. 名曰 00, 이어 첫글자의 뜻을 밝히고 둘째글자의 뜻, 전체의 뜻을 밝힘
여섯째 칸 작명례 일자와 지은이. 연호 0000년 0월 0일 祖(父) 직급과 호를 씁니다.
일곱째 칸 공란
봉투 앞면에 명첩 본관후인(后人) 성명 000
*의식은 이렇습니다.
병풍{어른이 앉으실 뒤쪽에 침)앞 명첩상에 명첩을 올려놓는다. 명첩상도 아이가 아들이면 동쪽에,
딸이면 서쪽에 놓는다.
홍색방석은 어른이 앉을 병풍의 남쪽 중앙에 펴고,
청색방석은 아이이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앉을 위치에 편다. 자리는 아이아버지가 상석을 향해 절하는 위치에 편다.
과정의 절차는 생략합니다.
어른(대개 할아버지)가 명첩의 내용을 읽으며 설명합니다.
"아가, 지금부터 할애비(애비)가 너의 이름을 지어주겠다"
"너의 애비는 00이고 너의 에미는 00다"
"너는 몇 째 아이로서 몇째 아들(딸)이다"
"너는 본관 성씨의 0세이고 000파 00의 0대손이다"
"너의 사주는 0000년 0월 0일 0시인데 원래는 단군기원 0000년 00에서 태어났다"
"너의 이름은 0자 0자를 써서 00라 한다.
0자는 00의 뜻이고 0자는 00의 뜻으로
너의 이름은 0000 뜻으로 지었다"
"아가, 너의 이름은 00이다"
"00아, 이름자와 걸맞게 훌륭하게 자라서
너의 이름을 부끄럽지 않게 살아라"
"얘들아, 00를 이름자와 같이 훌륭하게 키워라"
이러면서 명첩을 아이 엄마에게 어른이 주면
아가의 부모는 어른에게 큰절을 합니다.
가족과 손님들이 아이의 이름을 칭송한다.
이상하나요? 이런 세리머니는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명첩이라면 평생 보관하지 않겠습니까?
관련 서적을 찾아보아 익혀두는 것도 좋은 일일 것입니다.
이제 곧 손자나 외손자나 태어날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제 개인적인 이야기 한마디 하겠습니다.
큰 놈이 태어났을 때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하루종일 싱글벙글이었습니다. 전주예수병원 5층계단을 단숨에 뛰어올라갔으니까요. 이 놈 백일 때 무엇을 해줄까? 고민했습니다.
천자문을 일일이 1000칸을 한지에 줄을 대고 그었습니다. 100일내에 250명을 만나 4글자씩 글을 받는 것입니다.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르황, 첫 네글자는 당연히 할아버지가 썼습니다. 글자밑에 훈음과 독음을 한글로 쓰게 하고 주소나 덕담, 이름, 도장을 찍는 칸을 또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그 천자문을 보관하고 있는데 19년전의 일을 그때 붓펜으로 한자 네글자를 써준 분들은 아이의 안부를 묻습니다. 백일때까지 완성하느라 죽을똥을 쌌습니다.
작은놈은 그것을 못해줘 못내 미안합니다.
그 천자문 책 첫머리에 아들의 이름을 한글로 지은 까닭과 이름의 뜻을 자상하게 써놓았습니다.
'한'은 '크다' '같다' '하나'라는 뜻이고
'울'은 '울타리' '우리'라는 뜻이다.
따라서 '한울타리' '우리는 하나' '큰 울타리'라는 뜻이다. 네가 자라면서 이 이름의 뜻을 깊이 새기고 훌륭하게 자라기 바란다는 애비의 최대한의 덕담도 담았지요.
그런데, 이 놈 별로 공부도 안하는 것 같아요.
고3 수험생이 맨날 잠만 자고. 어떻게 되겠지요.
뭐. 인력으로 안되는 거잖아요.
이름 이야기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
현재위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