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간다고 하면 기를 쓰고 말길 게 뻔한 일이고 걱정에 하늘이 무너질 판이니, 어찌 거짓말을 안할 수 있으랴. 12월, 이런저런 술자리에 몸이 만신창이가 됐다. 연일 생각나는 것은 고향의 눈맛만 봐도 정신이 청신해질 것같았다. 만사 제치고 이틀 휴가 좀 하겠다며 월요일 퇴근길에 팀장에게 말했다. 내일도 큰 술자리가 있는데, 이 핑계로 도망치고 싶은 생각도 강했다. 속깊은 팀장은 “야 이사람아, 고향 부모님도 좋지만, 자네 아들 정시모집 가, 나, 다군 접수 먼저 신경써” 한다. “냅싸두세요. 잘난 왕자병 걸린 지가 알아서 허게요” 툴툴거렸다. 마을회관에서 어머니가 놀래 튀어나오신다. “어쩐 일이다냐, 야가. ?금없이. 세상에 벨 일이 다 있네. 뭔 일 있냐” 놀라고 걱정되어 마구 이 말 저말이 튀어나온다. 이럴 때는 씽긋이 웃는 게 나의 특기다. “암시랑토 안탕개. 그냥 엄마 보고싶어 왔어” “아이고, 놀랬다. 오만 풍상 다 ?어슨게(겪었으니) 아무 생각말고 회사, 학교 잘 댕기라” 보자마자 왜 이런 결론이 나오는지 나는 도통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 양반들은 전기 아끼려고도 그렇겠지만, 겨울철 푸녁거리가 없으니 조반만 드시면 마을회관행이다. 10원짜리 고스톱을 치신다나 뭐라나. 점심까지 같이 해먹고 그늘이 내리면 집에 들어선단다. 한 50여평 되는 잔디밭 마당에 눈이 그득하다. 게우(간신히) 대문까지 걸어나오는 길만 한 뼘만큼 내놓았다. 눈은 진짜로 발목까지 닿으니, 녹아서망정이지 처음에는 어땠을까. 사랑방 처마밑엔 지게막대기만한 고드름이 달려 있다. 어른들은 심란하겠지만, 나는 어느새 동심이 되어 못내 신기한듯 고드름을 쭉쭉 손으로 훑어보며 감회에 젖는다. 그래, 이만한 고드름을 쥐고 칼처럼 꾀복쟁이친구들하고 추운 줄도 모르고 싸우기도 했지. 먼저 부러진 사람이 지는 것은 당연지사.
일제때 만든 신작로로 올라가는 고갯길은 빙판 그 자체였다. 오죽하면 아직도 버스가 못다니랴. 야, 이거 볼만헌데. 대나무대 하나 잘 깎아 씨끼토(썰매의 방언일듯)타면 죽기겠는데, 철없는 생각만 자꾸 난다. 일단은 헛기침을 하며 동네앞 벌판을 바라본다. 들판에 덜렁 서있는 모정과 그옆 정자나무와 잔설처럼 나뭇가지에 히끗히끗 남아있는 눈무더기와. 고향은 그렇게 눈속에 쥐죽은 듯이 잠겨 있었다. 그속에 오직 늙은이 몇 명만이 전설처럼 꼬부락거며 골목을 조심조심 털신을 신고 발을 옮길 뿐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고향에서의 잠은 꿀맛이다. 더구나 어머니 아버지 사이에 끼여 자는 잠은. 새벽녘 나는 습관처럼 어머니 가슴팍을 더듬는다. 쪼그락 밤텡이가 된 어머니의 젖을 만진다. 아내의 가슴을 더듬을 때처럼 손아귀에 힘을 꼭 쥐어본다. “니 가서 마누라 탱탱한 젖 만지라” 면서도 싫지 않는 듯 하다. 오줌발이 땡겨 마당에 서본다. 눈 위에 오줌을 갈기는 것은 언제라도 약간 통쾌한 일이다. 노란 오줌줄기로 글씨를 쓰며 웃어가며 놀던 게 언제적일인가. 그러나 등짝이 너무 서늘해 오싹 한기가 든다. 하늘에 별을 잠시잠깐 쳐다보다 정신없이 방으로 들어서고 만다. 사실 별 본 지도 오랜만이다. 시골에 분기별로야 오지만, 어떻게 하다보면 별 한 개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하늘은 맑았단다. 북두칠성도 옛날처럼 고대로 고 자리에 있다. 자잘자잘한 별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때는 왜 별똥별도 그렇게 많았을까. 덕석(멍석) 깔고 마당에서 자다보면 주욱주욱 온통 별똥별 잔치를 보았었는데.
참꼬박을 삶아 개다리소반에 올리고 어머니는 양념장을 만들고, 아버지와 쏘주를 마신다. 말을 안해서 그렇지, 이 양반들은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막내아들이 이것저것 사갖고 와 해물을 삶아 입안에 넣어주는 이 재미. 요놈이 세정(細情)을 알아 하시지 않을까. 솔직히 따지고 보면 이 양반들이 사시면 몇 날 몇 해나 사실 것인가. 이제 79, 76. 그 연배는 숟가락 놓고 깨팔러 간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그러니 살아 생전 자식이라고, 손자라고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1년에 잘 해야 4번, 그러면 5년을 더 사신대도 20번이다. 20번 보면 많이 본 것일 터이고, 그 다음엔 돌아가시면 대체 어디서 목소리를 듣고 늙은 얼굴을 어루만질 수가 있냔 말이다.
그런데 왜 자식들은 그 간단한 사실을 모를까. 아니 알면서도 ‘악착같이’ 외면하는 걸까. 자기 새끼들 키우느라 바빠서? 글쎄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치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간단할 일이다. 자기 앞날에도 이런 날이야 금세 닥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자식 키우면 이런 재미 좀 맛봐야 하지 않을까. 옛날에는 자식 키우는 게 유일한 보험이었는데, 요즘 세상은 어떻게 돼가는지, 노인들이 몇 배 더 현명해야 하고, 몇 배 더 현찰(돈)이 있어야 하고, 자식 며느리 눈치보기에 속은 새깨맣게 타고 만다. 오호, 통재라.
아침에 중무장을 하고 길을 나선다. 한 두어시간 산책 좀 하고 올 게요. 이것도 사실 귀족취미다. 부모 생각하고 내려왔으면 조금이라도 그 옆에 더 있어줘야지, 무슨 산천경개 구경왔다고 집을 나서느냐 그 말이다. 하지만 내 목적은 또다른 데 있다. 동네 뒤편 산허리를 따라 임실에서 오수까지 이어진 예전 지방도로가 있다. 굽이굽이 커브길이 마흔일곱개나 돼서 ‘마칠재’라고 했다던가. 남부군 빨치산들이 전선을 끊으며 행군한 길이었다고 한다. 마칠재에도 미당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처럼 어찌 신화와 전설이 골골이 없었겠는가. 그 신화를 기록하고 싶었다.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신화는 다 사라지고 없었다. 나의 무딘 붓만 한탄할 밖에 없는 일이다. 대시인 서정주처럼 ‘마칠재 신화’를 쓰고 싶었는데, 나는 재주와 학문이 턱없이 부족하여, 그 일을 하지 못했다. 미치고 환장할 일이지만, 그릇이 그것밖에 안되는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산속 도로라 동네앞 눈하곤 비교가 안될 정도로 푹푹 발이 빠진다. 빠드득 빠드득 소리가 나기도 하고 가만히 들어보면 꼭 개구리 울음소리같기도 한다. 우선 전혀 사람흔적이 없다. 말하자면 나의 발길이 시발(始發)이다. 길이 깊어질수록 동네도 점점 멀어지고, 한 시간여만에 커브길 10여개나 넘었을까. 들판을 조망하며 상념에 젖는다.
눈 봐라! 눈 봐라! 눈 봐라!
저 순백(純白)의 눈밭을 보아라!
저리 하얀 마음으로 한세상 살 수는 없는 일인가.
무엇이 그리 탐(耽)지고 무엇이 그리 욕(慾)이 나
중생들은 늘상 티격태격하느뇨?
한 세상 놀러 왔으면,
그냥 저 눈처럼 깨깟허게(깨끗이)
학처럼 선녀처럼 살다가면 안되는 것일까?
저렇게 깨끗한 눈도 녹으면 질척질척, 보기에 심히 좋지 않다.
특히 도시에선 눈이 녹으면 천덕꾸러기처럼 천하고 지저분하다.
그러니 무릇 사람의 뒤끝은 청결할 일이다.
알탕갈탕 찌그락짜그락 살아본들, 그 뒤끝이 어찌 깨끗할손가?
그러니 마음을 비우고 허허실실처럼 사는 수밖에 없겠다.
우리같은 무지렝이 중생들이야. 평범한 것은 ‘위대’한 것이다.
눈곱만큼 잘 날 생각없고 그저 건강하니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노릇하며 살다 가면 고만인 것을.
76년이던가. 어느 여성과 이 길을 오늘처럼 눈이 펑펑 내리는 가운데 데이트를 한 적이 있다.
문득 전화를 건다. 지리산 어느 온천에 있단다. 정말 감회가 새롭다. 이생각 저생각에 발길 가는 대로 걷다보니, 이제 내려가야 한다. 어머니는 진즉 걱정을 시작했을 게야. 그것도 병이지만 헐 수 없는 일이다. 무조건 걱정을 덜어드리는 게 도리인데, 늘 걱정거리를 만들어준다. 사람이 걱정거리가 없으면 사람이간디, 이게 무슨 역설이란 말인가.
‘어머이, 용돈 좀 드릴까?’ ‘그게 뭔 소리냐. 이거 택시비 히라잉’ 요 정도니, 나는 행복해도 너무 행복한 놈이다. 벌써 또 한 보따리 싸놓았다. 갓김치! 세상에 어떻게 이런 맛을 내게 만들까? 간장게장이 밥도둑이라지만, 이거 한 포기만 있어도 몇 그릇의 밥을 해치울 수 있다. 배가 터지면 또 어떤가.
아버지, 제가 왜 오늘 온 줄 아세요? 기(氣) 받아가려고 그래요. 왜 있잖아요.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조상묘 자주 찾는 것처럼 말이에요. 제가 대처에서 살지만, 늘 제 가슴속에는요? 고향이 고스란히 들어있어요. 그 ‘약발’이 떨어지면 사는게 지치고 힘들 때예요. 그래서 왔어요. 여기 이 눈, 내 눈에 박아가려고요. 저기 앞에 들판 보고 심호흡 한번 하려고요. 얼매나 시원해유. 눈이 다 시원허고 마음이 활짝 열리는 것 같구만요. 그러면 또 몇 달 서울에서 찌댈 수 있어요. 저는 그래요. 도시인들 보고, 속으로, 이 화상들아, 내 마음속에는 넓은 들판이 있단 말야, 알아? 내 마음은 늘 부자야, 임마. 너그들허곤 출신성분이 다르단 말야, 이 진짜 촌놈들아. 니가 새벽녘 눈무게에 눌려 짜아짝 찢어지는 청솔가지 소리를 알아? 들판을 내지르는 저 사나운 바람맛을 알아? 그것도 모르잖아, 임마. 그 추억의 힘이 나를 키운 거여. 내 아들은 지 말대로 서울놈이여. 이것은 진짜 큰 비극이라고 생각혀요. 가는 죽어다 깨나도 이런 것을 모르잖여요.
아버지, 그래서 왔어요. 어머니 냄새 맡으러, 장독대에 댓발처럼 쌓인 눈더미를 보러, 감나무 가지는 안찢어졌는가 궁금해서요. 눈이 이렇게 많이 쌓이면 성묘를 하지 않는다고요. 그래도 조부모 봉분은 한번 가볼래요. 볼록볼록 두 분 묘에 참 예쁘게도 쌓여 있네요. 그 속에서 어르신들은 도란도란 얘기하고 있을까요? 마음속말 몇 마디 중얼거리고 미끄럼타고 내려왔어요. 아버지, 인자 괜찮아요. 술독도 좀 빠졌고, 어머니랑 따땃허게 잘 지신게 안심하고 또 올라갈게요. 지발 적선허고 건강히만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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