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칼럼]나는 새벽 2시반에 군불을 땠다
훌쩍 어른이 돼버린 마당에 맞는 설날은 들뜨고 기쁜 것이 아니라, 해가 갈수록 심란해지기만 한다. 여성들은 ‘명절 스트레스’ 때문에 싫겠지만, 가장인 우리들도 이제 완연히 늙으신 부모님을 대하고 커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시름과 걱정이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정없이 나오는 아랫배의 볼썽스런 모양에 기가 질리고 있고 오십견 등 건강에도 쉼없이 적신호가 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1년에 겨우 서너 차례 만나는 형님과 형수, 조카들 보기가 어찌 그리 꺼그러운지 사람 미치고 폴짝 뛰다 죽을 노릇이다. 천륜이라는 살가움에 마땅히 반갑고 기다려져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언제부턴가 모든 것이 불편하고 신경이 쓰이고 어색해졌다. 그저 시간이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또 왜일까. 까놓고 말하자면, 남보다 못하게 돼버린 것이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왜 생겼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게 도시생활이긴 하지만, 대가족에서 바로 핵가족으로 전이한 우리 사회현상 중의 하나일 수도 있겠다.
물론 부모가 계신 고향에 가는 길은 아직도 약간은 설렘이 있긴 하다. 모처럼 꾀복쟁이 친구들도 만나 회포를 풀 수도 있는 귀성길이 어찌 괴롭기만 하겠는가. 어쨌거나 어김없이 오는 건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이’ 시간이다. 그래서 솔가를 하고 서해안고속도로를 보통때보다 2-3시간 더 걸리는 데도 운전대를 잡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뒤트렁크에 사과, 배 한 박스씩 바리바리 챙겨넣고, 일년내내 시골에서 올라온 보따리들(쌀푸대, 양파 넣는 것, 보자기, 쇼핑백, 비닐봉지 등 이거 장난 아니다. 아내는 이것 때문에 어머니에게 엄청 점수 땄다), 축구공, 야구공, 배드민턴 세트 등등등등.
사실 세상일이라는 게 생각하기 나름이다. 교통체증에 짜증을 내다보면 좁은 승용차안의 분위기는 엉망이 되고 만다. 그저 이렇게 식구들끼리 가까운 거리에서 장시간을 같이 가며 얘기할 수 있다니, 라고 생각하면 막히는 것이 큰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아들 말에 의하면 ‘생각있는 연예인’ 노홍철이 말대로 ‘교통체증은 차라리 신의 축복’이라는 ‘억설’도 가능하겠다. 언제 가족끼리 이렇게 가까이 얼굴을 맞대며 얘기할 시간이 있었는가 생각해보라. 요즘은 아이들도 자기들대로 바쁘다. 어른들은 그 놈의 생업(生業)이 뭔지,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에 바빠 대화할 시간이 없다. 오죽하면 아내는 늘 ‘우리 남편 얼굴 잊어먹겠다’고 하겠는가. 주말이라고 그렇게 한가하지도 않다. 아이들은 운동과 컴퓨터에, 어른들은 흔해빠진 TV드라마에, 아니면 각종 경조사에, 밀린 모임 어쩌구저쩌구 하다보면 ‘이거 가족 맞아?’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게 ‘개같은’ 도시생활이 아니던가.
그래서 교통체증 쯤은 낙천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 그동안 못한 얘기들 털어놓아보자. 큰아들에게 제 친구들 얘기를 주섬주섬 묻는다. 걔는 이번에 어디 들어갔니? 너희들, 2월중에 스키타러 한번 가라. 돈은 내가 대줄게. 작은 아들에게 묻는다. 방학은 언제까지니? 그래 기어이 2학년때 이과를 선택할래? 2년동안 죽어라하고 공부할 자세는 돼있는거니? 아이들도 이럴때 부모에게 하고싶은 말을 한다. 아빠, 진짜 올해는 술 줄이세요. 12시 넘어 눈이 확 풀린 상태로 들어가 픽 쓰러져 주무시는 아빠를 보면 속상해 미치겠어요.
알았다. 노력하마. 그리고 당신도 아침에 제발 좀 빨리 일어나는 습관을 가져라. 아침밥상 차리는 아빠가 싫어서가 아니고 기상습관이 그렇게 나태해지면 생활 전반에 걸쳐 엉망이 돼버리는다는 거야. 취미생활을 가져야해. 노년에도 우리끼리 같이 할 수 있는 취미, 예를 들면 배드민턴 같은 것을 배우는 거야. 주말 이틀동안 아침잠 때문에 오전을 다 허비해버리는 것을 생각하면 머리에 쥐가 다 나. 이런 스트레스는 없단 말야. 명심해. 알았어. 나도 노력해볼게.
그럼서저럼서 고향집에 도착했다. 헛간이 딸린 아래채 묵은 방은 1년에 한번 빛을 보는 날이다. 솥단지에는 뜨거운 물이 펄펄 끓고 있다. 그 방은 천장도 쭉 찢어지고 닦아본 적이 없어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듯 하다. 게다가 쓰다가 버리거나 묵어진 물건들이 사방에 가득하다. 이를테면, 옛날에 농주를 담아먹을 때 필수적인 ‘용수’가 걸려 있고 가마니를 짤 때 스는 ‘보디’ ‘화살’가 있는가 하면 ‘물레’도 있고 벽마다 주렁주렁 걸어논 각종 바가지(실제로 아버지가 다 만든 것이다)들, 못쓰는 주전자(막걸리 심부름을 하며 홀짝거리던), 곤로, 아기 욕조, 안락의자, 대나무 궤짝, 작은 뒤주 등등등등. 그 방문을 열면 그냥 ‘민속촌’이다.
아버지는 늘 밖에서 빙빙 도시며 대사(大事)를 치를 때마다 ‘시다바리’에 바쁘시다. 그중에 하나가 부엌(부석짝)에 불 때는 것이다. 닭이나 돼지대가리를 삶을 때 보면 불을 때시는 게 보람인 듯 하다. 불도 때본 사람이 땐다. 아무나 불씨를 일구거나 아궁이에 무조건 나무만 밀어넣는다고 땔 줄 아는 게 아니다. 예년에 비해 날씨가 허벌나게 푹한 데도 아들자식, 손자녀석들 추울까봐 맹물을 솥으로 하나 가득 끓여놓으신다. 그러니 어찌 옛날생각이 나지 않겠는가. 사랑방에는 늘 소죽솥이 있었고 여물을 가득 넣고 겨와 버무려 소죽을 끓였다. 물을 담은 대야를 솥안에 넣고 같이 끓이고 신새벽부터 자식들을 깨운다. “이놈들아, 물 끓여놨다. 후딱 일어나 세수해라” 그 대야에는 여물이 둥둥 떠다녔다. 손으로 휘휘 젓으며 세수를 한 후 종종걸음으로 마루에 올라서면 손에 문고리가 척척 달아붙었다. 그때는 얼마나 추었는지 마루도 나올 엄두가 나지 않아 오줌을 참곤 했었다. 7남매가 싸대는 오줌으로 노란 놋쇠오강(요강)은 철철 넘쳐나고. 그 오강 좀 봐라. 여기저기 빵꾸가 나 때운 자국이 요란했다. 향토방 벽 바르데끼 때운 지라 움푹짐푹 제대로 놓여 있을 수도 없었다. 그때는 동네마다 돌며 냄비, 요강 때우러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모처럼 부엌에서 몇시간 서서 차례준비를 하던 아내는 저녁밥을 물리고 7시가 되자마자 실실 눈치를 본다. 어느 방에서 몸을 눕힐까, 워낙 추위를 타는 지라 죽어도 시골생활은 못하겠다는 걸 입방아처럼 달고다니는 처지이므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살아있는 민속촌’ 아래채 쩔쩔 끓고 있는 아래채 묵은 방을 ‘욕심’을 냈다. 문종이도 숭숭 뚫려 황소바람이 불어오는 데도 바닥은 발을 딛을 수 없을 만큼 뜨거우니, 우선 먹기 곶감이 달다고 부득부득 그 방서 자겠단다.
어머니 아버지도 외풍 때문에, 또 꼭두새벽엔 구들이 식어 안된다고 말리는데도 소용이 없다. 내가 옆에서 자줄 수밖에 도리가 없다. 아이들은 큰방 할머니 옆에서 자고. 진짜 허리 지지는 데 이만한 곳은 없다. 장판이 누릇누릇할 정도로 뜨끈뜨끈하니 초저녁부터 숙면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깨 저린 곳도, 허리 빡빡한 것도 자고나니 말짱하다. 너무 가뿐했다.
문제는 새벽 2시반에 눈이 뜰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벌써 구들은 식어 방바닥이 차디차 지고 있는 게 아닌가. 평소에 ‘얼음공주’라고 놀릴 만큼 추위에 약한 아내는 얼마나 추울 것인가. 벌써부터 몸을 웅크리는게 말은 못하고 속으로 벌벌 떨고 있을 게 틀림없다. 헐수할 수 없이 자리를 털고 불을 때러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 밤에 보일러 때는 큰방으로 가라고 할 수도 없고. 카랑카랑한 날씨에 마당에 나선다. 등줄기가 서늘한 데도 물건을 터억 허니 꺼내 오줌을 눈다. 옥근을 세 번 털고 괴춤을 추기며 헛간을 뒤진다.
마누라라 자칫하면 얼어죽을 판인데, 이까짓 오싹한 썰렁함이 문제인가. 착살가지(낙엽진 솔잎)와 지나간 달력을 쭉쭉 찢어 불을 붙인 후 고자배기(썩음직한 나무등걸), 잘라논 대나무 등을 쌓아 불을 땐다. 한참만에야 불이 간신히 붙어 활활 타기 시작한다. 한 30분 불을 때니 식은 구들이 다시 달아오르는 듯 하다. 세상 모르고 자면서도 아내는 작은 몸을 편다. 나무를 끊고 불을 지피느라 검정이 묻은 손을 찬물에 씻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 아내 곁에 눕는다. 가만히 안아보기도 한다.
나는 한 겨울에도 어지간하면 추위를 타지 않는 체질이나, 한번 마음속으로 ‘춥다’고 느끼면 속까지 그대로 얼어버리고 만다. 어쩔 때는 길거리에서 한 발짝도 뗄 수 없이 웅크리고 서있을 정도니까 말 다 했다. 그러니 ‘춥다’라고 느껴버리면 죽는 것이다. 그런 내가, 시키지도 않는 일을, 그것도 새벽 2시반에 자는 아내를 위하여 부석짝(아궁이)에 나무를 밀어넣고 불땔 지도 모르는 놈이 군불을 땠다. 부모가 시켰으면 그 일을 하랴. 오로지 아내가 잠을 설치지 않고 곱게 자라는 뜻으로 말이다. 해놓고 보니까 내 자신이 기특하고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아내는 과연 이런 기분을 알까? 모처럼 남편으로서 ‘엄청나게’ 큰 일을 했다.
새벽 4시. 여느 때같으면 큰방으로 건너갈 시간이다. 벌써 어머니는 깨셨을 것이다. 새벽잠이 유독 없는 나는 그때 어머니 곁으로 간다. 쭈글쭈글한 젖을 만지며(실제상황이다. 어미는 싫지는 않은 것같아도 손을 밀어낸다. 니 마누라 탱탱한 젖 만지라며) 오랜만에 모자간에 수다를 떠는 것이다. 보통 2시간쯤 걸리면 ‘동네 한 바퀴’를 다 돈다. 누구는 어쨌다더라. 그 집은 자석들 국민핵교만 가르쳤는데도 천생 효자노릇은 다 허드라. 이 대목에 이르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저 묵묵히 듣고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랄 밖에.
이번에 이장 선거하는데 볼만허드라. 수당에 눈이 멀어 벨 모략중상이 횡행하더라. 이장선거도 정치의 축소판 아니겠는가. 농촌에서 한달에 40만원씩 수입이 있다는게 어딘가. 그러니 백년 천년 해먹고 싶지 않겠는가. 내쏴두시오. 출세한 것이구만. 시큰둥하게 대답을 허니 화제는 다른 곳으로 넘어간다. 야야, 니 아재는 나이 육십에 애를 난다는구나. 세상에. 망칙할 일이다. 왜요? 딸만 여섯 있다가 기언치 아들을 낳을 모양이네요. 아주미가 오십 이쪽저쪽일 텐디. 그거, 토픽감이네. 긍개 말이다. 이런저런 모자의 수다를 아버지는 이미 깨신 상태에서 다 듣고 계실 것이나 언제나 말씀이 없다. 간혹 당신이 상관할 주제가 나오면 가만히 헛기침을 하신다. 다 알고 있다는 표시다.
그런데 그날 새벽엔 큰방으로 건너가지 않았다. 불 땐다고 설친 잠과 서서히 달아오르는 아랫목 구들장 덕분에 솔솔솔 잠이 밀려온 것이다. 6시쯤 밖에서 벌써 고무신 끄는 소리가 나면서 ‘야야, 안추웠냐’ 하신다. “아니요. 새복 2시반에 일어나 금불(군불) 땠어요” 시상에, 그리서 뭐 밖에서 꼼지락거리는 소리가 났구만. “어머니, 마누라 얼어죽을까봐 발딱 일어나 한 보시기 땠더니 아직도 따땃하구만요”
그때까지도 아내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 중간에 가만히 일어나 저 따숩게 자라고 금불땐 남편의 ‘속깊은’ 애정의 깊이를 알기나 할 것인가. 잇따라 아버지가 농담을 하신다. “아따, 그리도 지 마누라 얼어죽을까봐 핑생 안허던 일을 혔그만” 이 말씀을 하시면서도 아버지 마음엔 ‘잔잔한 행복’과 ‘흐뭇한 웃음’이 퍼져 나가고 있을 것이란 것을, 최소한 아들인 나는 안다.
아무튼 결혼 21년만에 처음으로 아내를 위하여 한밤중에 일어나 사랑방 군불을 땐 사건은 아주 뭇흐한 사건이었다. 어찌 칭찬받을 일이 아니겠는가. 여보! 얼릉 일어나 ‘남편밖에 없다’고 모닝키스 한번 해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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