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일기 33-1]소화불량 걸린 첫 예절특강 100분
예절(예의범절)에 대하여 내가 무엇을 안다고 무턱대고 2시간 특강을 맡기는가? 무모한 부탁이지만 거절한 명분도 없고 시간도 촉박하여 어쩔 수가 없다. 지난 금요일(10일) 저녁, 화요일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특강을 맡아달라는 예의생활실천운동본부 본장의 느닷없이 요청이다. 공교롭게 주말도 다른 약속으로 특강에 대한 준비나 생각할 여유가 없이 월요일이 닥쳤다.
궁리궁리하다 2004년 여름 실천예절지도사과정(160시간)을 밟으며 주제발표용으로 끄적거린 노트가 생각났다. ‘키워드(keyword)로 본 유교 르네상스에 대하여’. 좋다. 이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자고 마음먹고도 머리만 멍할 뿐이다. 언론의 환경이나 신문편집, 제작에 대한 이야기라면 몇 시간이고 할텐데, 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걱정이 앞서니 잠이 안온다. 드디어 소화불량까지 걸려 뱃속에 가스가 차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죽어도 못한다고 할 걸. 후회 막급이다.
팀장에게 2시간 특강 때문에 늦는다고 말하기도 쭈볏거려진다.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 31605호실. 전국에서 모인 93명의 예절지도사들. 30대 중반부터 80대초반까지 있다. 그야말로 남녀노소. 5주간의 실천예절지도사과정을 마친 후 고급지도자과정 160시간을 수료한 분들이다. 그분들 앞에 섰다. 바짝 긴장된 마음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진행자가 강사 소개를 할 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다.
우선 긴장을 풀려고 시중에 떠도는 우스갯소리 한 마디 하다. 누루 황(黃)에서 밭 전(田)이 빠진 자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황우성파동이 가져온 씁쓸한 파자(破字)이다. 답은 ‘말짱 황’이다. 나라 국(國)에서 가운데 입 구(口)가 빠진 것은 ‘할 말 잃은 나라 국’자라고 말하였더니 수강생들이 모두 파안대소한다.
이윽고 강의 시작이다. 나의 호(號)에 대해 설명한 후 친구가 알려준 중국 유종원의 ‘팔우시’(八愚詩)를 소개하니 귀를 쫑긋하신다. 유종원이 '퇴고'로 유명한 한퇴지와 쌍벽을 이룬 시인인데 귀양살이를 하게 됐단다. 하여 자기집 주위의 팔경(八景)에 우(愚)자를 붙여 호를 짓게 된 게 '팔우시'이다. 우계(愚溪) 우구(愚丘) 우구(愚溝) 우지(愚池) 우천(愚泉) 우정(愚亭) 등등. 이어 수강생이 대부분 어르신인 것을 감안해 중국어 한마디를 판서하다. ‘老到學’(라오 따오 쉬에). 죽을 때까지 공부한다는 뜻이다. 중국에서 ‘늙은 노’(老)자는 무시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진다. 스승을 노사(老師.라오스)라고 한다. 중국의 정치가들을 보아라. 전인대(全人大) 평균 연령이 한때는 70세였던가. 경륜(經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다. 사람은 늙으나 젊으나 자기를 추겨주면 좋아하게 마련이다. 그것도 빈말이 아닌데 어쩌랴. 어른들의 경륜을 후학들을 위해 펼쳐야 한다고 역설하다. 죽을 때까지 직업란에 ‘학생’(學生.쉬에셩)이라고 쓰면 얼마나 좋겠느냐, 보통사람들의 신위에 쓰는 ‘학생부군신위’면 됐지, 입신양명을 하고 부귀영화를 누린들, 사람노릇 못하고 살다가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등 주변의 몇몇 인물들을 빗대어 말하다.
이때 책을 한 권 추천하다. 중국의 대표적인 작가 왕멍(王蒙)의 ‘나는 학생이다’라는. 그는 문화혁명때 21년간 위구르주로 하방(下放.귀양)된다. 그의 학구열은 돼지우리를 치우면서도 말리지 못했다. 배움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위구르어를 독파했다. 복원조치후 작품활동을 왕성하게 하여 48년동안 1천만자를 썼다. 34년생. 73세의 고령에 세계 각나라를 1년에 절반정도 돌아다니며 젊은이들과 끊임없이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고 강의를 한다. ‘인생은 항해라고. 명랑하게 항해하자’고. 그는 여권 직업란에 당당히 ‘학생’이라고 쓴다. 이 책은 그의 ‘평생 학생론’에 입각한 수상록이다. 쉽고 짧고 의미가 심장하여 머리에 쏙속 몇 마디가 박히는 좋은 책이다. 어른들이 출판사가 어디냐고 묻고 노트에 적기 바쁘다. 일단 성공이다.
다음에 21세기 지식정보사회, 한국에 있어 유교(유학, 유림)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묻다. 유학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성찰과 진단과 전망에 대하여 나의 짧은 소견을 말하다. 유교가 마치 조선 500년을 망친 것처럼 생각하고 구시대 혹은 시대역행적인 철학이라고 치부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여론은 편견과 선입견에 불과한 것이라고 질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유림지도자들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비난하다. 현재의 성균관은 지금보다 몇 배 더 썩고 밑바닥을 기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다.
유교는 종교가 아님에도 버젓이 종교지도자然하는 성균관장 이하 3두마차체제의 유림조직으로는 욕만 더 얻어먹지, 유교 르네상스에 걸림돌만 될 것이라고 말하다. 호주제 철폐, 동성동본 혼인금지만 죽어라고 주장한다고 되는 게 아님을 알아야 하는데, 여전히 꿈속에 살고 있다고 말하며, 공자왈 맹자왈도 할 자리를 찾아 해야 하고, 만약 한다고 해도 현대화하여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자, 박수가 나온다. 어느 시인은 광화문을 보고 이렇게 읊었다. “광화문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라고. 광화문을 유교나 예절로 바꿔보라고 말하다. 딱 그 짝이지 않냐고 말하다. 이제사 말이 술술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곤 유학의 알짬사상이 무엇인 줄 잘 아시죠? 반문을 하며 강의를 이끌어나간다. 유교는 인(仁)의 사상이다. 이때의 仁은 ‘어질 인’이라고 해석하면 안된다. ‘사람다울 인’ ‘사랑할 인’이라고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경전을 읽다 ‘어질 인’이라고 하면 도저히 문맥이 맞지 않은 곳이 많다. 또한 유학은 효(孝)의 개념에서 시작한다. 부자(父子)간의 사랑을 군신(君臣)간의 사랑보다 윗길로 친다. 모든 것은 자기 몸에서부터 자기 가장, 사회, 정치, 국가로 발전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이다. 가정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는 고래의 진리를 우리들은 망각한 지 너무 오래이다. 유교에서 말하는 효는 무조건적이고 강제적인 효도가 아니다. 자식이니까 부모에게 맹종하라는 게 아니다. 부모는 부모다워야 한다. 자식에게 부모로서 마땅히 자애로움(慈)이 있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를 사랑으로서 하는 것이다. 친친(親親), ‘친할 친‘은 ’사랑할 친‘으로 ’어버이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부자간엔 ’친함‘(親)이 있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인민‘(仁民)이다. ’인인‘(仁人)과 같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 단계를 거쳐야 ’애물‘(愛物)이 된다. 모든 사물을 사랑하게 된다는 뜻이다. 친친-인민-애물을 거친 단계가 유학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세계인 ’대동세상‘(大同世上)이 된다. ’자기 자식이 중한 줄 알면 다른 사람들 자식도 중하게 알라‘는 말이 있다.
요 대목에서 광주의 ‘열혈시인’ 김준태의 ‘기분좋은 시’를 낭송하다. 친친-인민의 단계가 아니겠냐며. 일순 강의실이 조용해진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야
니가 잘나 백도라지냐
내가 잘나 백도라지냐
내 새끼는 어째서 그런지
똥구멍을 빨아도 냄새가 안나더라
자식새끼 가져본 사람들은 모두 그러겠지만
나는 틈만 생기면 내 새끼의 엉뎅이와
똥구멍을 빨며 좋아 어쩔줄을 모른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산천에 백도라지야
이제 남의 새끼 똥구멍을 빨아도
냄새가 안날 것 같으니
좌우지간 나도 눈이 제대로 트이는가 보다
좌우지간 나도 콧구멍이 제대로
벌룽벌룽 열리는가 보다
오 하느님!
고맙고 고맙습니다
청중들은 이게 대체 무슨 시인가 한다. 핵심은 자기 새끼 예쁘게 생각한 만큼 남의 새끼들도 예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의 새끼 똥구멍을 빨아도 냄새가 안날 정도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경지인가. 아무리 어려워도 노력한다는 게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이다. 일제때 문둥이 여인네를 껴안고 자던 선지식도 있었다. 이런 시를 읽으면 기분이 나쁘다가도 컨디션이 절로 좋아진다. 여기에서 오늘 강의가 하이라이트가 나온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친해질 때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 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솔직’이다. 오늘 강의생각을 하면서 이삼일간 소화불량이 걸렸고 오늘 새벽에는 3시에 일어나 골똘히 궁리하던 중 21년전에 만든 수제(手製) 천자문이 생각났다고 하며 가방을 열고 꺼내 보여줬다. 수제 천자문은 또 무엇인가? 큰아이 백일상에 올려놓고자 한지에 일일이 천 개의 칸을 그리고 아는 분들에게 4자씩 천자문에 나오는 한자를 쓰게 하고 훈음과 독음, 이름과 주소, 또는 덕담을 써달라고 했으며 어느 분은 도장으로, 사인으로 나타내었다. 250명에게 받아내는데 힘이 든 기억에 새삼 울컥한다. 이때 맨 앞장에 쓴 시가 바로 ‘기분좋은 시’였다. 그때 나의 각오도 남의 새끼도 내 새끼마냥 사랑하리라였다. 하지만, 그리 했던가. 나는 얼마나 이기적이었던가. 반성도 됐다. 인민(仁民)의 단계를 실천하여야 예절이고 유림이다.
유교는, 유학은, 유림은 2500년전 공자님이 설파한 인간의 수양이념일 뿐이다. 현세의 일도 모르는데 어찌 내세(죽음)의 일을 알 수 있겠느냐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다. 내세관(來世觀)이 없는데 어찌 종교로 성립될 수 있는가. 조상님을 추모하는 제례가 있다고 하여 종교란 말인가. 제사를 지내는 의식은 우상숭배가 아닌 숭조(崇祖)사상일 뿐이다. 공리공담, 탁상공론, 사색당파, 노론소론, 예학 논쟁, 유교는 조선500년을 말아먹은 몹쓸 이념인가.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들 핏속에 단군의 피가 흐르고 단일민족이라면 민족적 유전자(DNA)가 같을 것이다. 국민 대부분이 묵시적인 재가불자(在家佛者)라고 치자. 유교의 정신도 우리 핏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알 것이다. ‘저런 버릇없는 놈’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 ‘무례한 놈’에 나오는 버릇, 법이 모두 예절 아닌가. 예절은 부지불식간에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 배어있는 생활규범이다. 그것을 체계적으로 교육시키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 모든 것이 예절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2500년전 공자님이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칭찬해 마지 않았던 자랑스런 민족이다. 이른바 동방에 빛나는 문화선진국이었던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은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이다. 일본인들도 ‘서방예의지국’이라 하지 않고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렀다. 어찌 자랑스런 호칭이 아닐까. 그러던 것이 구한말에서부터 인성(예절)교육의 실종으로 인하여 근현대 100여년만에 ‘동방무례지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시대적 사명은 예절을 부흥시켜 동방예의지국의 명성을 되찾는 것이 아니겠는가.
‘기분좋은 시’를 쓴 시인은 ‘한복’이라는 시를 썼는데, 여기에서도 한복을 유학이나 예절이라고 바꿔 읽어봐도 공감하는 게 많을 것이다. 또 시를 낭송하다.
‘한 복 1’
한복은 맨살의 부드러움이다.
조선의 안으로부터 묻어오는 온화하고도 미끈한 빛깔.
가래침을 뱉고 싶은 거리에서 무명도포를 걸치는 일은
몇 십배나 더 속이 후련하다.
푸른 하늘처럼 붙는 감촉이란
입술에 물린 젖가슴보다 푸짐하다.
요즘은 섹스에 달관한 노인들만이
의젓하게 입고 다닌다고 하지만
혁명을 겪어본 사람은 한번쯤은 한복을 입어보라.
정신을 휘감고 흔들리는 곡선은 잔물결많은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의 붓끝이라 해도 어찌 시늉이나 하겠느냐.
넉넉한 바짓말을 추스를 때
등줄기가 환해지는 고적감은
자유의 어쩔 수 없는 약점이다.
지금은 정서의 절정에 매달린 단 한 벌의 한복을
입기 위하여 시골로 장가들려고 애를 쓰고
밤중에도 장롱의 열쇠를 비틀며
할아버지의 한복을 몰래 빼내려는
혁명적인 장난은 너무나 서글프다.
한복을 훔쳐서라도 입으려는
내 알몸의 소원은 암담할 뿐이다.
늘 남의 옷을 벗고 입었기에 암담할 뿐이다.
‘한 복 2’
모두들 양복을 입는 세상?
모두들 다른 마음을 입는 세상?
어머님, 나는 한복을 즐겨 입고 싶어요.
깊은 밤에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처럼
먹물이 풀리는 듯한 한복의 볼륨!
감실감실한 촉감을 주면서도 교교한 어질머리!
그 환장하게 아늑한 깊이! 잘 지지 않는 노을의 얼룩!
피를 뚫지 않고도 잡혀지는 뻑뻑한 어제의 깊이!
거울 앞에 서서 보며 입지 않아도 옷고름이 나붓이
고요히 제자리에 와서 만져지는
그 기막힌 연두빛의 떨림! 떨림! 떨림!
혹은 외롭게 헐어져 내려갔던 그 하이얀 따거움!
스르르 눈 감아보면 저절로 흔들리는 황량한 옆모습!
우리가 한번도 가지 않은 곳에
함박눈이 소복소복 쌓이듯
아직은 칼이 박힐 수 없는
우리네 눈물에 땅강아지처럼 기어다니는 저녁 어스름!
물레방아에 휘감긴 치렁치렁한 잎사귀의 아픔!
어머님, 나는 오지게 한복을 입고 싶어요.
서럽도록 하이얀 한복을 죽고 못살게 좋아해요.
바짓말이 넉넉하여 펄럭이는 우리나라 사람들!
솔바람도 초승달 달빛으로 흘러 들어오는 기인 소매통!
은은하고 부드러운 한복을 호올로 찾아서 입노라면
어머님, 어머님, 나는 정말 외롭지 않답니다.
모처럼 빨아 다려 입고 길거리에 나서면 사람들은
나를 이방인처럼 치켜다 보지만
저희들끼리 들먹들먹 수군수군거리는 모양입니다만
어머님, 나는 그럴수록 마음이 뉘엿뉘엿 푸근해집니다.
잃어버린 옛시절 고향을 돌아나 온 듯이 밀려드는
밤바다의 파도에 머리끝까지 안기우듯이
한복은 내 불덩이 가슴을 지그시 지그시 누르며
머언 푸른 하늘을 향하여
학처럼 넓게 날개를 펄럭거려 준답니다.
피를 뚫지 않고도 잡혀지는 뻑뻑한 어제의 깊이!
깊은 밤에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처럼
먹물이 풀리는 듯한 한복의 볼륨!
어머님, 그래요 살이 너울거리도록 입고 싶어요.
죽어갔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펄럭펄럭 입고 싶네요.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살아갈
우리나라 사람들의 몸부림을
오 눈물보다 더 맑은 한복을 곱게 여미어 입고
한번쯤 호탕하게 너털털 웃고 싶어요.
한번쯤 쩌렁쩌렁 목청을 가다듬고서
정든 산천 어디에서나 하얘지고 싶어요...
캄캄한 밤중에도 하야지며 나부끼고 싶어요...
‘아시아적 가치’란 바로 ‘유교의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과학문명이 극단을 치달으면서서양에서 동양의 정신을 찾습니다. 동양의 정신은 유교의 정신입니다. 유교가 거듭나기 위한 여러 학문적 접목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최근 열린 세미나 이름은 ‘유교와 경영의 만남’이었습니다. 유교와 경영이 무슨 상관이냐면 할 말이 없겠지요. 그러나 유교와 법학의 만남도 있고, 오늘 제가 읽어드린 이런 시와 유교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유교와 문학의 만남’ 그중에도 ‘유교와 시의 만남’ 이런 식의 연구가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복'을 '유교'로 바꿔놓고 읽어보시죠. 지금, 이제 유교의 현주소 아닌간요? 맨살의 부드러움, 맞는 말 아닌가요? 요즘은 섹스에 달관한 노인네들만이 의젓하게 입고 다닌다, 맞는 말 아닌가요? 미당의 시를 보세요. '조선사람은 흔히 그 머리로부터 온 몸에 사무쳐 오는 빛을/마침매 버선코에서 까지도 떠바들어야 할 마련이지만/온 하늘에 넘쳐 흐르는 푸른 광명을/광화문 저같이 의젓이 그 날개죽지/위에 실고 있는 자도 드물다//상화 양층의 지붕 위에 그득히 그득히 고이는 하늘/위, 층엣것을 드디어 치일치일 넘쳐라도 흐르지만/지붕과 지붕 사이에는 신방같은 다락이 있어/아래 층엣것은 그리로 온통 넘나들 마련이다//옥같이 고우신 이/그 자락에 하늘 모아/사시라 함이렸다/고개 숙여 성옆을 더듬어 가면/시정의 노랫소리도 오히려 태고같고/문득 치켜 든 머리 위에선/파르르 낮달도 떨며 흐른다'. 광화문은, 유교는 저리 구시대적 유물로만 우리앞에 서야 하는가.
딱 이 대목에서 진행자가 튀어나오며 ‘10분간 쉬었다 하시죠’ 한다. 휴우- 50분이 벌써 흘렀나? 1교시는 어떻게 잘 넘겼을까?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후다닥 흡연코너를 찾는다. 어르신들이 들어오는 데도 할 수 없다. ‘저, 담배 한 대 피우겠습니다’. ‘아이구, 괜찮습니다’ ‘강의 잘 들었습니다’ ‘저, 진짜 몰라요. 그냥 지도사과정 들으며 느낀 소감을 말하는 것 뿐인데요’ ‘휴우- 알탕갈탕 1교시는 어떻게 했는데 2교시는 어떻게 하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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