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칼럼]“명절 교통체증은 신의 축복”
누군가 그랬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아들자랑은 아니지만 본의아니게 그렇게 됐습니다.
임실에서 설 당일 10시45분에 출발, 수원에 5시에 도착했으니 6시간이 넘게 걸렸지요.
그 상경길 라디오에선 '호통개그'의 박명수가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그중에 한 마디를 듣고 아래의 칼럼을 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생활칼럼'입니다. 다음날 새벽 제 메일로 보낸 '명절 정체'라는 칼럼을 보고 솔직히 저도 놀랐습니다. "어, 이 놈 봐라!" 싶었지요. 생각의 각도를 한번 달리 하면 지옥도 천국이 된다는 말과 같겠지요. 일독을 권합니다.
----------------------------------------------------------------설날(29일) 차례를 지내고 어르신들께 세배를 드린 후 덕담을 듣고 부리나케 서울로 정신없이 올라오는(차 막힌다고 서둘러 떠나라는 할머니의 채근으로) 길이었다.
그날 오후 라디오프로 ‘박명수의 2시가 좋아’에 요즘 엄청 뜨는 엔터테이너 ‘홍철’형이 전화로 연결이 됐다. 어느 프로에서든 시끄럽게 떠들기만 하는 그인지라 어김없이 떠들어대기는 마찬가지다. 전화상이다 보니 그의 빠른 말을 잘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그 중에 명절날 교통체증을 신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이 쏙 들어왔다.
그의 말인즉 “이런 날이 아니면 언제 가족들이 이렇게 얼굴 가까이 마주보고 있을 시간이 있겠냐”는 것이다. “좋아좋아~ 가는 거야~~”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아~”라며 매사 활발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깊은 생각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사실 생각해보면 요즘 가족끼리 얼굴 맞대고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벽을 두고 사는 집이 많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집집마다 컴퓨터가 들어서면서 아이들은 컴퓨터에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한 대 있던 TV가 두 대가 되면서 가족끼리 보는 드라마마저 달라지고 있다.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다보니 갈등이 많아지고 갈등이 많아지다 보니 가족이라도 거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명절 고향길 귀성길, 적어도 서너 시간 심하면 한 나절 동안의 시간은 얼마나 귀중한가. 가족들끼리 ‘A-HA’같은 요즘 게임도 할 수 있고, ‘3-6-9’나 ‘쿵쿵따’ 같은 한 철 지나간 게임도 할 수 있겠고, 정 할 게 없다하면 끝말잇기도 할 수 있다.
이때야말로 이런저런 고민이나 상의할 것들을 얘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 아닐까 싶다. 친구들끼리라면 몰라도 가족들끼린데 재미있으면 금상첨화지만 재미가 없으면 그건 또 어떤가. 그간의 서먹서먹함도 풀어줌은 물론 지루하고 불편한 차 안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즐거운 여행길로 만들 수 있다. 핵가족시대, 멀어져가는 가족간의 정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니 이 시간야말로 ‘신이 내려준 축복’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같다. 또 하나 재미는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있다. 즐거운 여행길, 휴게소의 ‘대명사’ 가락국수 한 그릇은 또 얼마나 맛이 있는가.
그동안 못 뵈었던 친척들에게 인사하러 가는 명절을 길이 막힌다고 짜증만 내지 말고 ‘생각있는 연예인’ 홍철형 말대로 귀성길 교통체증까지 신의 축복이라 생각하고 즐거운 여행을 하는 것처럼 길을 나서자.
몇 시간동안 좁은 공간에서 인상을 쓰고 시간 더디감만을 한탄하다가 연예인의 말 한 마디에 나는 또 하나 생활의 지혜를 배우게 되었다. 어떤 현상을 어떤 시각(viewpoint)으로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밝게도 보이고 흐리게도 보인다는 것을. 나는 곧바로 벌써 5시간이상 운전만 하는 아빠의 어깨를 뒷자리에서 안마해드리며 ‘ 세단어 끝말잇기’를 하자고 제안, 어휘력을 뽐내기도 했다.
최한울<1986년생. 예비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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