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들었다. 분류심사원과 소년원(少年院)에 있는 비행-범죄청소년들을 만나 13년동안 매주 토요일 3 - 4시간씩 상담지도를 해온 동기동창이 있다는 것을. 나는 평소 이런 사람이 의인(義人)이라고 생각해온 터라, 또 ‘한 감동’ 먹고 말았다.
요즘 사람들은 찌들을 대로 찌들어 쉽게 감동하지 못하고, 일단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의심의 눈초리부터 보내곤 한다. 하지만, 나는 무조건 감동하는 체질이다. 좋은 일은 같이 축하해주면 어디 덧나는가 말이다. 그런 사람이 많다고 자기가 실제 하기는 쉽지 않지 않은가. 그리고 또 하나, 터무니없는 질투와 시기가 판을 친다. 남이 잘 되고 상 타고 부자되는 것에 대해 매급시 배 아파하고 씹고 난리를 치는 풍토가 팽배해 있다. 메마른 세태에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내용때문에 오후내내 흐뭇했다. 직장생활, 사회활동을 하며 이런 이야기 듣는 것은 무조건 기분좋은 일이다.
얼마나 천주님에 대한 신심(信心)이 돈독하면 그런 일이 가능할까? 나같은 경우를 예를 들면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매주 토요일 짬을 내어 아들같은 후배들, 그것도 감옥에 있는 청소년 상담지도에 나선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은 일이다.
천주교 단체중 교정사목회(矯正司牧會)라는 기관이 있다고 한다. 그 기관의 소속 회원들이 교도소나 소년원 등 사회의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친구가 되어주고 때로는 선생님이나 카운슬러가 되어준다고 한다.
그 친구는 창립 20여년 된 사목회에 13년전부터 소속돼, 위에서 열거한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고 한다. 처음 활동할 때의 심정은 이랬단다. 강남에서 잘 나가는 사설학원을 20여년 경영했다. 돈도 많이 벌은 모양이다. 중고등학생들의 사교육의 한몫을 담당하면서 얻은 경제적 가치를 상대적으로 교육적 혜택에서 동떨어진 사회의 청소년들에게 환원하고 싶었다고 한다.
한 주, 두 주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만큼 보람이 커져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꼴통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들이 어디 순순히 면담에 응할까. 담배 피는 것은 기본일 것이고 술 먹고 깽판부리는 놈은 왜 없을까. 요즘 세상엔 제 부모 알기를 똥친 막대기처럼 아는 놈들도 많은데, 그들을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해주며 그들의 정서를 순화시킬까. 진짜 애들이 순한 양처럼 말을 잘 들어? 그리고 걔들이 정말로 자기들 잘못을 뉘우쳐? 싸가지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말야.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그 친구 만나 요것저것 다 물어보고 싶었다.
그렇단다. 확실히 효과가 있단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10년이 넘게 자원봉사활동을 되레 하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래서 멈출 수 없었던게 벌써 13년. 이제는 청소년 상담치료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전문가가 되고 노하우가 쌓였다. 물론 애들 다루는 데 '비법'이 있긴 있을 거야. 우리야 무조건 권위적으로 화를 내고 포기하고 이러지만, 전문가들이 보면 다 착하기만 한 우리들의 막내동생, 아들 딸로 보이는 모양이지. 신기하다.
하여, 지난 여름과 겨울에는 2주간(월-금요일 5일씩 10일간) 영등포교도소와 안양교도소에서 특강을 하며 죄수들을 상대로 그룹지도(7- 8명)를 하고 심리상담활동을 하며 정신교육을 시켰단다. 당연히 힘든 만큼 보람도 컸단다. 이 복잡다단한 사회을 정화시키는데 한 몫을 한다는 생각을 하면, 앞으로도 이 길을 꾸준히 걷겠다는 게 그 친구의 남다른 각오이다.
이 활동은 법무부에서 천주교교정사목회에 위탁한 프로그램의 하나이다. 이제는 아주 익숙한 일상사가 되었다. 오랫동안 고민해오던 학원경영의 중단을 결심한 것도 이런 활동상의 제약이 하나의 이유였다. 물론 그동안 못해온 공부에 대한 갈증이 결심을 부채질했지만 말이다.
분류심사원은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의 죄질을 심사하여 형량을 매기는, 이른바 소년범 재판소에 해당되며 안양교도소 부근에 있다. 소년원이라는 이름은 사회적인 이미지를 고려해 ‘고봉중학교’로 개칭했으며 경기도 군포에 있다. 매주 토요일 그 곳을 찾는다는 것은 개인적인 일들을 아예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고봉중학교’ 아이들의 눈빛만 봐도 그들의 불만이나 고민사항을 알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처음에는 무지하게 무섭고 떨리고 어색했다고 한다. 아이들을 키우는 학부모 마음이 앞서고, 자기 자녀라고 생각하고부터 조금씩 안정이 되고 그들의 눈빛을 살필 수가 있었다.
그는 오늘 천정배 법무부장관으로부터 ‘봉사상’ 표창장을 받았다. 개신교, 불교 등 종교단체 관련기관의 봉사활동자 5명이 상을 받았다. 정부기관의 봉사상, 이게 어디 고스톱쳐서 따는 것인가. 조선조 국가에서 인정하는 상이 ‘청백리’였다. 청백리로 지정되면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었다. 국가가 인정해준 상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노태우-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노씨와 본이 같은 줄은 모르겠으나(실례를 용서하시라), 가문의 영광 아니겠는가.
그런 동기동창을 둔 내가 자랑스러울 지경이다. 얼마전에는 민중의 지팡이가 기관 총수로부터 상을 받았다하여 축하의 인사말이 쏟아졌는데, 대관절 전라도 어디에 박혀 있는 고등학교관대, 이래 정신이 제대로 된 인사들이 줄을 잇는단 말인가. 10대후반 철부지들이 어느새 사회의 중견 동량들이 되어 상도 받고 명예를 드높이는구나.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었구나. 우리 주변에, 그것도 동창이 '사마리안'이 있구나. 명문이다. 암, 진짜 명문이로고.
그의 보이지 않는 선행(善行)에 뜨거운 경의와 박수를 보낸다. 전라고 만세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알지 못하게 할' 정도로 그의 봉사활동을 옆에서 도와준 그의 반려 전라여고생에게도 찬사를 보낸다. 전라여고 만세다!
주역 첫머리가 이렇게 시작된다든가. '적선지가 필유여경 적악지가 필유여앙'(積善之家 必有餘慶 積惡之家 必有餘殃). 착함을 쌓으면 경사스러운 일이 많을진저! 자선은, 적선은 언제나 아름다운 일이다.
*추신 : 그의 이름은 노, 진, 규이다. 개포동성당에 다닌다. 외모는 저팔계와 사오정을 합체했다고 생각하면 상상이 될 지 모르겠다(이런 비유를 용서하시라). 그러나 만나보면 사근사근 배쪽이다. 몹시 부드러운 '얼큰'(얼굴이 큰)남자, 어쩌면 그는 여성성(女性性)이 더 강하단 말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사회의 그늘진 곳에 있는 청소년들을 자기 자식처럼 보듬고 같이 울고 웃는 게 아닐까. 그는 오늘날 6기 동창회를 활성화시킨 전임 회장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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