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교수등 지식인 여성 6명이 수다로 얘기꽃을 피웠다한다. 그 자리의 끝자락이 언제나 그렇듯 남편들 흉보는 것일진대, 그 날도 아니나다를까 애꿎은 50대 남정네 여섯명이 묵사발났다고 한다. 결론은 남자들은 너무 쫀쫀한다는 것. 이유인즉슨, 집안 전기료 아끼는데는 눈에 불을 켜면서 술값, 담배값, 골프등 운동값은 아까운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6명의 남성이 그런다면 대부분의 남성이 그런 행태를 보인 것이리라.
한밤 목로주점에서 처남과 매제가 마주 앉아 석화를 구워먹으며 소줏잔을 훌쩍이며 나온 화제가 그것이었다. 어, 그래요? 나하고 진짜 똑같네요. 엊그제에도 완전히 그 문제로 대판 싸웠어. 형, 생각해봐! 화장실 두 개 환풍기를 하루종일 켜놔요. 원, 집구석이 공장인지 뭔지 왱- 하는 소리에 나중엔 꼭지가 돌 지경이에요. 그래서 소리를 꽥 질렀지요. 나 있을 때 환풍기 틀어놓으면 집을 나가겠다고, 사람을 이렇게 미치게 하는 법이 있냐고. 근데 환풍기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애엄마나 아이 두 놈이 전기 아낄 줄을 몰라요. 훤한 대낮에도 늘 불을 켜놓아요. 대체 왜 그렇게 하는 지 모르겠어요. 전구가 3개인 거실불도 다 켜놔야 직성이 풀리나봐요. 컴퓨터도 켜있죠. 아이들 램프도 켜 있으니 한 집안에 전등이 몇 개나 켜져 있어요? 한번 생각해보아요. 냉장고, 김치냉장고, 텔레비전, 컴퓨터,... 진짜 미쳐버리겠어요.
그렇다. 어찌 불륜만 스캔들이고, 그런 일로만 찢어질 것인가. 이런 생활상의 사소한 시비에 감정은 더 격해지기 쉽다. 양말을 제대로 벗어놓지 못하는 남자, 아무 데서나 방귀를 빵빵 뀌어대는 여자, 밥 먹고 식탁에서 커어억 트림하는 아빠, 콧구멍을 후비고 코딱지를 아무 데나 버리는 남자, 뭐, 맘에 맞지 않기로 치면, 싫기로 하자면 뒤통수가 예쁠 것인가.
맞아. 나는 늘 방마다 돌아다니며 불을 끄는 사람이고, 자기들(대부분의 집들은 3명이렸다)은 불을 키는 사람이고. 비판일변도로 남편이자 가장이자 아빠를 세상에 가장 쫀쫀한 놈으로 만들어 왕따를 시키고, 이러니 내가 집에 들어오고 싶겠냐. 어쩌면 그런다냐. 그리고 또 가장 웃긴 것은 일요일 오후쯤 영화나 외식을 하러 가면 집에 불을 켜놓고 와.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도 않고 사람을 위아래로 쳐다보는 것 있지. 속 시원하게 답변이라도 하면 좋을텐데,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질문이라는 투야. 대체 왜 그럴까.
한밤을 가르며 하는 이야기치고 진짜 쫀쫀하기 한량없는데, 사실 문제는 심각하다. 부부갈등을 넘어 아이들을 포함해 가족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까. 아, 나는 중학교때까지 호롱불, 남포불 밑에서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코밑이 시커멓었다. 형설지공까지는 아니었지만, 전화도 없었고 교통수단도 발달하지 못했다. 우리 아버지세대 앞에선 ‘새발의 피’지만 말이다. 요즘 아이들은 도무지 절약을 모른다. 절약 커녕 근검도 모르고 성실도 모르는 것같다. 그러니 어찌 세대차이가 나지 않겠는가. 수돗물도 그냥 틀어놓고 나오기 일쑤이다. 그런데 왜 엄마들까지 동참하고 나서는 것일까. 엄마들은 대체 생활교육을 어떻게 받은 걸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나의 목로주점 삼순이언니가 이야기속으로 갑자기 들어오면서 내지른 말이 압권이다. “당신들은 몰라. 왜 엄마들이 밖에 외출할 때 불을 켜고 나가냐하면, 한 마디로 그건 ‘사랑’때문이야” “뭐요? 사랑? 웬 사랑?” “당연하지. 사랑이지. 아이들이 집에 들어올 때 어두우면 안된다는 ‘본능’때문이란 말이야. 이런 바보같은 남정네들아. 집에나 빨리 가 자빠져 자!” 아, 진짜 놀랐다. 모성본능 때문이었구나. 모성은 그렇게 위대한 것인가. 그렇게 깊은 뜻이? 그러니 떠오르는 게 있다. 골목에 있었던 친구의 집. 대문에는 가로수등을 달아 저녁내내 켜놓았었다. 아이들이 귀가하는 데 발 헛딛지 말라고. 친구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를 추모한다고, 그 뜻을 짐작한 막내아들이 한동안 불을 켜놓았었다. 지금도 켜져 있는지....
그랬다. 우리는 그날밤 새벽 3시가 넘게 쐬주 4병을 비우며 ‘사랑’을 배웠다. 이제 방마다 불을 켜는 아내를 미워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같이 마신 형도 기가 질린 듯 했다. 스무살 넘은 아들을 키우는 입장이라 동병상린이 많은 편인데, 요즘 두 집 다 부자간에 심사가 불편한 편이었다. 화제가 아들로 옮겨졌다. “자식들은 자라는 동안 효도를 다 한 것”이라고. “더이상 착한 아들, 예의바른 아들을 기대하면 안된다”는 말이야말로 ‘그날의 히트작’이었다. 자라면서 효도를 다한 것이라? 어쩌면 맞는 말 같았다. 역시 한 살이라도 더한 형이 세상에 대해 더 아는구나 싶었다. 술 취해 돌아가는 내 그림자, 그대 또한 한 개 섬이었다. 정신이 은화처럼 맑은 새벽, 노래를 흥얼거린다.
“에헤라 친구야. 내 꿈은 하늘이어라”
|
현재위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