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사임당이 말도 많아 한편 올려보았습니다.
제가 라이온스클럽 연말행사에 초청강연한 주제이며, 원고는 한국경제 '머니' 12월호(11/25발행)에 게재됩니다. (고액권 초상에 사임당 찬성여부와는 별개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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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권 화폐주인공으로 신사임당이 선정되자 일부 여성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그 이유가 “초상인물로 김구와 신사임당을 선정한 것은 헌법의 양성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며, 또한 '김구는 애국심과 통일의 길을 모색한 지도자이고, 사임당은 교육과 가정의 중요성”이라는 선정배경이 '남성=국가' '여성=가족'이란 전통적 사고의 답습이라며 비판한다. 이는 성차별이라면서 유관순 선정을 요구한다. 보다 더 훌륭한 분으로 대표적 여성을 추천하려는 뜻이라면 당연하나, 국가보다 가정과 현모양처는 하위개념이고 성차별이며 아름다운 전통도 배척의 대상이라면, 유관순 누나도 혹 결혼하고 자녀를 훌륭히 양육했을 경우 거부대상이 아닐는지 난감한 생각이 든다.
요즘 ‘현모양처’하면 구식이고 성차별이라며 왕따일지 모르나, 현모양처가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라는 사실을 알면 그 멋에 푹 빠질 것이다. 흔히 현모양처는 인내심 많고 자기희생적 여성상을 연상하고 연속극에서도 무조건 순종이나 착한 편향적인 여성을 선보인다. 또한 우리사회가 현모양처라는 이미지를 가부장제의 유용한 선전수단으로 활용한 면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순종적 여성묘사는 ‘강한 여성콤플렉스’에 대한 남성의 저항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사임당은 그러한 박제된 이미지에 속하는 인물이 아니다. 실제 현모양처는 훨씬 엄하고 강하며 현명하고 무조건적인 순종보다 관계개선을 꾀하는 인물이다. 특히 사임당을 전통적 현모양처로 꼽는 데에는 겸손만이 아닌 균형과 화합 창조적 가정의 수호자이기 때문일 것이며 이런면들이 보인다.
나이 18세에 22세의 이원수와 결혼한 신사임당이 자녀 교육뿐 아니라 예술과 문인으로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훌륭한 어머니의 가르침과 둘째는 남성우위의 허세를 부리지 않은 남편의 협조와 화합이었다. 사임당은 조선시대의 여성에 대한 차별과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강한 의지와 실천을 한 분이며, 스스로의 독자적 자기성취와 자녀들에게는 모범적 교육자로 동방의 성인인 율곡을 기른 분이기도 하다. 신혼 초 남편과 10년간 학업을 닦은 뒤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강행한 당찬 여인이며, 남편이 첩실을 얻을 때 조목조목 부당성을 지적하는 설득의 면모를 보여준다.
오늘날의 젊은 여성들도 자아와 개성을 살리려고 애를 쓴다. 예나 지금이나 자아와 개성이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결혼한 남여가 가정을 등지면서 자아와 행복추구란 힘들다.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를 임신한 수백 년 전에 이미 태교를 한 어머니이다.
또한 자녀양육을 위하여 일생동안 놀이 한번 간일이 없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지만, 시,서,화(詩,書,畵)의 여류명인일 뿐 아니라 뛰어난 인격자이면서 덕이 높은 현부인(賢婦人)이며 지극한 효녀이고 어진 어머니이었다. 남편과 아들 율곡 모두를 당대 최고의 학자로 만들어낸 그녀의 힘은 여성해방을 위하여 가정을 뛰쳐나간 ‘노라’의 인형탈출이 아닌 조화와 균형이며 곧고 강한 현명한 인품이었다. 현모양처는 자기희생과 순종과 양성불평등의 나쁜 표본이 아니며, 어떤 현모양처도 자신의 재능을 썩힌 경우는 없다.
신사임당만 아니라 최초의 여성변호사 이태영 박사, 소설가 박완서, 김영란 대법관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 여성들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선 안 된다.
이처럼 신사임당은 잘난 아들을 둔 어머니로서만이 아닌 당당히 한 획을 그은 인물이며, 그런 뜻에서 그녀의 고액권 초상선정을 '국가망신'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신사임당과 율곡 모자가 나란히 고액권의 주인공이 되는 상황과 새 5천 원권 뒷면에도 신사임당의 그림이 새겨져 중복이라는 이의까지 거부하자는 뜻은 아니다. 페미니스트(feminist)들은 현모양처를 남성들이 만든 여성폄하 이미지라며 싫어한다. 그 주장이 일정부분 맞더라도 부정적인 면만의 부각은 동의받기 어렵다. 남녀평등은 당위이나 양성간 도전이 아닌 조정과 역할분담이라는 순기능으로 서로 이해하고 돕는 많은 현모양처(賢母良妻)와 현부양부(賢父良夫)가 그리운 시점이다. ▨ (총1966자/원고10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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