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절을 공부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내가 느낀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자아도취적인 것 같았다.
누가 불교나 기독교에 대한 행태를 이야기하면
거기에 대해 들어볼 생각도 않고 아주 오연한 태도로 무시해버린다.
그러면서 무슨 축문을 어떻게 쓰느냐, 이런 경우는 방위가 틀리지 않았느냐, 하고 논의가 분분하다.
기독교와 불교가 한 두마디로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허수룩한 논리로 가고 있지도 않다.
또한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몇 년 전에 우리 고향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날 도시에 살고 있는 동생이 그의 선고 기제사를 모시기 위해
시골 형님 집에 와보니 불이 깜깜하다.
형님 내외가 어디 출타 했는지 문이 잠겨 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돌아 갔다가 이튿날 전화를 내었더니
형님이
"참, 내가 너에게 이야기 할 것을 깜빡했구나.
내가 어제 우리 동갑계에서 놀러가기로 되어 있어
아버지 제사는 안날 미리 지냈다." 라고 한다.
그들 형제의 이야기가 한동안 사람들 입초사에 오르내렸다.
세상은 말세라는 사람도 있고, 앞으로 이놈의 세상 어
찌 되려나,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벌써 몇 년 전 이야기다.
이제 그 정도를 가지고는
이야기꺼리도 안된다. 3년상은 커녕 장지에서 바로 매혼
해버리는 것이 보통이고, 부모를 합쳐서 기제사를 한 번에 지내는 사람은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신정 연휴 같은 때 동해안
같은 곳으로 놀러가서 일년 제사를 몰아서 한 번에 지내는 사람도 있고, 아예 안 지내는 사람도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왜 제사를 지내야 하나.
제사의 의미란 무엇인가.
이 문제를 이제는 인류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문화사적으로 접근하여 답을 내놓지 않으면, 전날의 효라는 덕목을 강조하는 차원에서는 설득력이 없다.
전날 내가 후배들의 부탁으로 한문을 한참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강의의 첫날, 몇 가지를 가르쳐 주고 난 뒤, 약간의 시간을 남겨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려 하였다.
처음엔 질문을 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오늘 공부한 내용과 상관없이 한문과 관련하여 어떤 내용도 좋으니 궁금한 내용을 질문해 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한 사람이 쭈삣거리며 일어서더니 질문을 한다.
그 질문이란 것이 참으로 내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선배님, 한문은 왜 배워야 합니까?"
사람들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벌어졌다.
내 대로 그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해주었으나, 그 뒤로
나는 그 질문을 다시 다시 생각해보곤한다. 한문 공부를 왜 해야하나에 대한 논리가 탄탄하면 할수록 그 사람의 그 뒤의 공부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예라는 것도 마찬 가지가 아닐까.
왜 상례에서 삼년상을 치러야 하나,
1년상으로 하면 안되나, 라는 질문은 벌써 논어에서 재여가 공자에게 질문한 것이기도 하다.
하물며 오늘날에서랴.
재여는 그래도 복상 기간을 둔다는 사실은 인정하는 입장이었고 복상 기간의 장단을 두고 공자에게 이의를 제기한 것이었지만
오늘날의 예의 문제는 논어에서의 경우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다.
복을 왜 입어야 하나?
아니 예절을 왜 배워야하는가? 예란 무엇인가?
이런 명제에 대한 철저한 검증 없이는 예절에 대한 저 모든 토론도 노력도 다 도로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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