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오-남용 지나치다
최영록(성균관대 홍보전문위원)
같이 일하는 동료중에 미혼의 영국여성이 있다. 어머니가 한국인이다. 한국에서 2년여동안 살고 있는데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우리말을 잘 하는 편이다. 하루는 심각한 표정으로 쪽지를 건네며 묻는다.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일상적인 대화에서 외국어(주로 영어․절대로 외래어가 아님)를 많이 쓰느냐는 것이다. 나름대로 유형을 적어놓은 게 있어 흥미로웠다.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한국인들은 원어민들도 쓰지 않는 단어를 만드는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는 거였다. 또하나, 뜻이 변질되거나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것들을 나열해 놓았다. 어떤 날 자기가 좀 기분이 우글쭈글하여 있는데, 한국인 친구가 ‘왜 그렇게 센치하냐’고 묻더란다. 듣고 난 후 한참 지나서야 ‘센치’가 ‘센치멘털’(sentimental)을 뜻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자기들도 그런 단어가 그 상황에서 금세 떠오르지 않는데, 한국인들의 머리는 참 비상하다고 감탄하면서도 씁쓸해졌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나 사물에 대한 한국말이 버젓이 있는데도 영어를 써야 지식인 같다는 생각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것. 그녀가 예를 든 수많은 사례를 보자. 왜 사과를 애플이라고, 참외를 멜론이라고 하고, 달력이라는 좋은 말이 있는데 캘린더라 하고 잡지는 매거진이라 하거나 일기나 수첩을 다이어리라고 하는데, 이건 아닌것같다는 얘기다.
얼마 전 한국 친구가 “네가 미팅멤버 메이드를 해라”고 하는데 나중에야 자기보고 모임을 주선하라는 뜻이었다는 것을 알았는데, 미팅 멤버는 그렇다치더라도 ‘made’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었다.
또 하나, 외국인과 이야기할 때 너무 발음을 의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자기들과 말할 때 미팅은 갑자기 ‘미링’이 되고 워터는 ‘워러’가 되어버린다며 웃는다.
또한 미장원에서는 아예 영어로만 말해도 지장이 없을 정도라는 것. ‘가위손’이나 ‘머리방’이라는 미장원 간판을 보면 차라리 반갑고 정겨운 생각이 든다는데, 그나마 대부분 ‘콩글리시’ 투성이여서 원어민으로서는 짜증까지 난다고 한다. ‘면도‘를 세이빙(shaving)이라 하고, 컨디셔너(conditioner)에 해당하는 샴푸, 린스는 완전히 우리말化되었으며 커팅(cutting)은 이미 굳어진 것 같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한국인들은 단어의 축약을 보면 언어의 마술사 같다는 것. 자기네들은 할인을 뜻하는 discount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데 DC로 줄이고, 캠퍼스 커플은 CC, 동아리 연수는 MT다. 또한 오피스텔은 오피스(office)와 호텔(hotel)의 합성어인 것 같고, 원피스(one-piece), 헤어샵(hairshop) 등도 콩글리시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영어가 객지에 나와 고생한다’는 말도 있지만 뜻이 변해버린 단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도움을 준다는 뜻의 서비스는 음식점에선 ‘공짜’로 쓰이고, 랩탑(laptop)은 노트북(notebook)으로 대체된다. 10대 학생들도 “오버(over)하지마”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쓰는가. 뭔가 일이 잘 풀려 괴로울 때는 “쿨(cool)하라”고 한다. 이런 말은 자기들도 듣고 난 후 잠시 지나서야 의미가 짐작된다는 것.
그러면서 “문지기, 얼음보숭이 등 북한의 문화어를 보면 재밌다”고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그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그녀의 지적사항을 들으며 낯이 뜨거워지는 게 비단 나뿐일까. ‘영어 공용화’ 문제가 논란이 될 만큼 국제화시대이니 영어를 자유자재로 쓰는 것이 옳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한국말에 대해 모른다거나 일부러 쓰지 않는다면 문제가 아닐까. 한 마디로 우리 언중(言衆)생활에 ‘한 문제’ 있다는 말이다.
프랑스어를 지키려는 프랑스 한림원의 노력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파이팅을 ‘아자’로, 웰빙을 ‘참살이’로, 네티즌을 ‘누리꾼’으로 바꾸어 쓰자는 운동을 매스컴이 앞장서고 기관이나 단체들도 함께 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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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역이름 “더 많은 한글이름으로“
조선 5백년 도읍지 수도 서울(현재도 대한민국 수도이지만), 한양은 고고샅샅 얼마나 우리 이름이 많을 것인가. 그 땅밑에 정말 거미줄처럼 지하철이 놓여 있다. 1호선부터 무려 8호선까지. 현재도 9호선 건설이 한창이니, 땅속은 그야말로 사통팔달이다. 대낮처럼 훤하기도 하다. 수도권 역만 해도 얼추 300개가 넘는다. 그 역마다 이름이 있다. 그 이름중에 가뭄에 콩나듯, 쌀에 뉘처럼 어쩌다 우리말이름이 있어 반갑다. 먼저 생긴 역들은 한문이름이 많지만 5～8호선 이름중엔 유난히 예쁘고 조금은 낯선 한글이름들이 있어 보기에 심히 좋다. 대표적으로 몇 개 역 이름의 유래를 알아본다(한국도시철도공사 자료실에 따름).
까치산 : 화곡동이 개발붐을 타자 봉제산 까치들이 비교적 늦게 개발된 인근 산(해발 73.5m)으로 몰려들어 까치산이 되었다.
애오개 : ‘작은 고개’ 또는 어린애와 관련이 있는 고개라는 뜻. 아기고개, 아기고개, 애고개, 애우개로 불렸던 곳이다.
굽은다리 : 당말, 벽동마을을 잇는 다리가 굽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 곡교리(曲橋里)라 하는데 우리 이름이 얼마나 예쁜가.
독바위 : 독바위굴의 바위가 독(항아리)과 같다 해서 붙여진 지명. 인조반정때 원두표장군이 숨어지낸 덕바위굴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연신내 : 조선초 영서역이 설치된 곳. 연서역으로 되고 연서천을 연신내라고 부른 데서 유래됐다.
새절 : 신사(新寺)의 한글명칭. 이 곳에 새절이 있었다 한다.
버티고개 : 옛날 순라군들이 야경을 돌면서 “번도!”라 하며 도둑을 쫓았으므로 번티(番峙)라 하다가 변하여 버티고개가 되었다한다.
돌곶이 : 천장산의 한 맥이 검정돌을 꽂아놓은, 즉 수수팥떡 경단을 꼬지에 꿰어놓은 것같이 형성되어 돌곶이마을로 불렸다한다.
마들역 : 역참기지에서 말들을 들에 놓아 키웠기 때문에 유래되었다고 하는 설과 일대가 삼밭이어서 마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먹골역 : 먹을 제조한 묵동(墨洞)의 우리말이라거나 먹을 이 마을의 이름으로 붙여야 학문이 발달한다는 설이 따라 지었다는 말도 있다.
뚝섬유원지역 : 옛날 살곶이들이라고 했으나 80년대 한강종합개발계획에 의해 조성된 뚝섬유원지가 있어 이름지어졌다.
살피재 : 상도동과 봉천동을 잇는 고개로, 수목이 울창하여 도둑이 많은지라 재를 넘기 전에 사람들이 살펴서 가라고 하여 붙여졌다.
장승배기역 : 장승은 경계의 표시이나 리(里)수를 적어 세워두는 이정표이기도 했다. 또한 악귀를 막는 수호의 샤머니즘이다. 흔히 장승이 서있는 곳을 장승배기라 하는데 유래는 조선 중기 정조가 뒤주 속에 갇혀 비통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한시도 잊지 못하고 수원의 묘소를 참배 다니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당시 나무숲이 우거진 이 곳에서 쉬기가 적적하기 그지없어 장승을 만들어 세웠다고 한다.
보라매공원 : 사냥을 위해 길들여진 생후 일년이내의 매를 일컫는데, 공군사관학교의 상징새이다.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살펴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우리말의 한자어化였다. 이를테면 마포를 ‘삼개’로, 방이는 ‘방잇골’로, 증산을 ‘시루메’로, 수색을 ‘물치’로, 대흥을 ‘독마을’로, 반포를 ‘서릿개’ 등으로 옛땅이름을 찾아주면 어떨까. 새절을 ‘신사’로 짓는 식의 우(愚)는 더 이상 저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땅이름이 이렇게 된 데는 식민시절 일본인들의 ‘문화오염’ ‘문화왜곡’에서 온 것도 많을 것이다. 인근에 대학교가 있다고 하여 대학명을 역이름으로 하는 ‘단순무식’한 일도 앞으론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역이름을 지을 때는 ‘지하철역이름 제정위원회‘에서 여러 가지를 놓고 심사한다고 들었다. 거듭 생각하여, 되도록 우리말에서 유래된 이름들로 지으면 어떨까. 이것도 나라사랑하는 한 방법이 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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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말 : ‘대궁상’(잔칫집에서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떡 벌어지게 차린 밥상)을 기다리는 데 심심찮게 주전부리나 하시라는 뜻으로 장만한 ‘입맷상’ 12반찬은 괜찮았는지 모르겠다. ‘어원으로 본 세상’이나 ‘팔반가’ ‘동방예의지국’ ‘한민족의 민족정신’ ‘24절기’ ‘살려쓸 우리말’ 등의 머리칼럼에 붙인 작은 상자기사(‘맞춤법 돋보기’ ‘혼인서식’ ‘부의 서식’등의 ‘실천예절 한마당’)들은 나름대로 눈요깃감으로 대령한 것들이다. 강호제현의 혜량(惠諒)과 질책을 바라며, 더 넓은 상판(床板)에서 뵙게 되기를 기대한다. <필자: yrchoi@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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