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옛것은 다르다. 전통이란 후손에게 물려줄 만한 가치가 있고 현재도 유용한 것이어야 한다. 이제 쓸모없는 것이라면 그냥 오래된 옛것일 뿐이다. 옛것은 짐이나 전통은 값진 자산이다. 혼인의 역사도 인류탄생 이래의 전통이며 혼인의 정의나 혼례시간까지도 조상의 지혜가 살아 숨 쉬고 있어 현대에도 유용하다. 혼인은 남녀가 만나 결합하는 것으로 혼인즉 남녀합체지의(男女合體之義)라 하였다. 동성동본의 혼인을 기피하였고, 동성 간의 결합은 혼인의 범주가 아닌 것이 전통혼례이다.
혼인(婚姻)의 혼(婚=女+昏)은 장가든다는 뜻으로 여인(女)을 저녁 무렵(昏/황혼 혼)에 만나는 것을 의미하고, 인(姻=女+因)은 시집간다는 뜻으로 여자가 중매장이 매씨(媒氏)로 인(因)해 남자와의 만남을 뜻한다. 혼례는 남녀가 짝을 이루어 부부가 되는 의식절차이며, 예로부터 혼(婚)이 아닌 혼례(昏禮)라 하였다. 이는 양(陽/남)과 음(陰/여)의 만남이며, 혼례시간도 해(陽/남)와 달(陰/여)이 만나는 즉 해가 지고 달이 뜨는 황혼(昏)무렵에 하는 것이 전통이요 풍속이었다. 그래야 혼주나 신랑신부도 오전에 차분히 준비할 수 있고, 하루의 일손을 마친 하객도 편하고 여유로울 것이다. 또 예식 후 합궁례(合宮禮/첫 날밤)의 시간까지도 배려된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국 등 서양에서도 혼례시간은 거의 예외 없이 퇴근 무렵이다. 그래야 낮 시간에 여유 있게 준비를 할 수 있다는 합리적 사고와 예식 후 이어지는 만찬과 축하파티로 보람찬 하루를 마음껏 즐기고 오붓한 보금자리(合宮禮/합궁례)를 맞는다는 실용적 측면이 있으리라. 예(禮/에티켓)란 합리적이고 서로 편해야 한다는 점에서 동서양이 그 맥을 같이 한다. 모두가 여가를 즐기는 주말의 점심시간에 하는 우리의 현대 혼인관습은 납득할 수 없다. 이것은 전통도 하객을 위한 것은 더욱 아니며, 당사자나 혼주도 새벽같이 미용실이나 뛰어 다니기 바쁜 잘못된 관행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의 혼례시간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것 같다. 대부분 주말과 점심시간만을 희망하기 때문에 예식장 잡기부터가 전쟁 같은 실정이다. 혼잡한 주말과 점심시간의 혼례는 근거 없는 신 풍속도이며 하객불편과 무례 등 숫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요즘 주5일 근무제로 금요일 퇴근 무렵의 혼례가 서서히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고 합리적 선택이다. 이제 금요일이 주말인 셈이니 퇴근 무렵의 혼례가 더욱 평일로 확산되어야 한다.
해질(昏/혼) 무렵이면 전통예법에도 맞고 모두가 편하고 여유로우니 얼마나 좋은가. 예(禮)란 지켜야 할 사회적 규범이고 생활이다. 남에게 패가 안 되고 과학적이어야 하며 따르면 누구나 편해야 한다. 비록 혼례만이 아니라 글로벌시대에 우리의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니 좋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꽃 피우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세계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문화민족의 자긍심이기도 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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