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子思想과 現代韓國(要約文)
金 泰 吉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1. 2,500여년 전에 중국(中國)에서 생긴 공자(孔子)의 윤리사상은 오늘의 한국(韓國)에서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공자사상(孔子思想)의 근본적 원리들 가운데는 오늘의 한국인(韓國人)에게도 귀중한 것이 많다.
2. 공자사상의 근본적 원리들 가운데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귀중한 것이 무엇이며, 그 원리들을 오늘의 우리들에게 적합하도록 살리자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가감(加減) 또는 변형(變形)이 필요한가를 고찰하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과제이다.
3. 공자사상의 근본 원리들은 인(仁), 예(禮), 덕(德), 도(道), 의(義), 효(孝), 군자(君子) 등의 개념 가운데 상호관련을 가지고 포함되어 있다.
4. 공자사상 가운데서 가장 큰 비중(比重)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인(仁)’에 대해서 우선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인(仁)에 대한 설명은 여러 문헌에 여러 가지로 나타나 있다. 예컨대
仁也者 人也. (『孟子』 盡心章句 下)
樊遲問仁. 子曰, “愛人.”(『論語』 顔淵편)
克己復禮爲仁(『論語』 顔淵편)
“剛■毅■木■訥近仁.”(『論語』 顔淵편)
인(仁)은 성실(誠實), 관대, 신의(信義), 공평 등 여러 가지 덕(德)을 종합한 큰 덕목(德目)이다.
5. 인(仁)에 관계된 여러 말씀 가운데서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克己復禮 爲仁”이다.
여기서 예(禮)는 예의, 예절 또는 영어의 에티켓 보다 훨씬 내용이 큰 개념.
禮山卽 仁義, 人間의 道理
6. 우리 나라의 전통윤리는 예(禮)를 매우 존중하였다. 특히 조선조에는 주자(朱子)의 예론(禮論)에 무게를 두었다. 조정의 복상(服喪) 예법(禮法)은 지나키게 엄중하여 정쟁(政爭)의 원인 되기도 하였다. 일반 가정에서도 상례(喪禮)와 제례(祭禮)는 크게 숭상하였다.
7. 현대사회는 여러 조건이 옛 것과는 크게 다르다. 오늘의 현실에 맞는 상례(喪禮)와 제례의 기준을 제시하기는 절실하고도 어려운 문제이다.
8. 이성간(異性間)의 예절, 너무나 문란한 오늘날 젊은이들의 풍속, 인성교육(人性敎育)의 문제
9. 유가(儒家)들은 국가를 가정(家庭)의 연장 또는 확대 선상에서 파악하였다. 따라서 가족의 질서가 잡히면 국가도 편안하게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가족 질서의 근본원리로서 효(孝)를 숭상하였다.
가족(家族)의 질서만으로 국가(國家)의 질서도 보장된다고 오늘날 단순하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현대에도 가족이 중요하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들의 가족은 여러모로 무너지고 있다. 우리들이 오늘의 현실에 맞는 새로운 가족문화를 어떻게 형성하며, 그 형성(形成)을 위하여 효(孝)의 덕(德)은 어떻게 살려야 할 것이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10. 공자(孔子)는 성인(聖人) 다음으로 바람직한 인간상(人間像)을 군자(君子)라고 생각했다. 군자는 소인(小人)과 대비되는 말로서 논어(論語)에 그 해설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표현이 있다.
君子 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 愼於言(『論語』 學而편)”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 貧而樂, 富而好禮者”(『論語』 學而편)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論語』 學而편)
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 (『論語』 子罕편)
11. 군자(君子)는 남의 지도자가 되기에 충분할 정도로 덕(德)을 쌓음으로서 물질에 대하여 연연하지 않으며, 안빈낙도(安貧樂道)한다.
그는 의식적으로 부(富)를 피하지 않으며, 부유하더라도 교만하지 않다. 군자(君子)는 실천(實踐)에 밀첩하여 말을 삼간다. 군자는 명성(名聲)에 초연하며, 남의 인격을 존중한다. 군자는 순리(順理)를 숭상하며, 무리하게 고집(固執)을 피우지 않는다. 그는 흑백논리(黑白論理)를 따라서 외골수로 빠지지 않는다.
12. 조선조 500여년 동안 나라를 지키고 문화를 창달한 것은 주로 ‘선비’들의 강직한 정신력이되고 보는 견해가 있다. 선비는 단순히 강직(剛直)할 뿐만 아니라 유연(柔軟)할 때는 유연할 줄도 아는 인격자(人格者)이다. 고병익(高柄翊)은 선비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서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선비는 첫째로 명분(名分)을 존숭하고, 둘째는 지고한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셋째로 풍류(風流)를 즐기는 마음의 여유를 가졌다. 조선시대의 ‘선비’와 공자가 제시한 군자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있으나 차이점도 발견된다.
13. 도덕성의 존중, 사리(私利)보다는 공동체의 이익(利益)을 우선시하는 넓은 마음, 물욕과 권세욕에 대한 청렴성, 불의(不義)와 타협하지 않는 용감성(勇敢性), 자연과 예술을 즐기는 풍류로서 마음의 여유를 갖도록 함 등은 오늘의 한국인도 본받아야 할 귀중한 유산이다.
공자사상과 현대한국(本文)
金 泰 吉
대한민국 학술원 회장
1. 공자의 정치 사상 (서론)
① 사회의 혼란을 막고 질서를 회복 내지 유지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 길이 있다.
그 하나는 힘과 법으로 악의 세력을 누르는 길이요, 또 하나는 통치자의 덕과 사랑으로써 백성의 자발적 협력을 얻어내는 길이다. 이 두 가지 길 가운데서 공자는 단연 덕치의 길을 택하였다. 덕으로써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은 중국에서 오랜 전통을 가진 것으로서 전설적 통치자 요와 순에 관한 기록에도 이미 나타나 있고, 공자가 존경해 마지않은 주공도 그 길을 밝은 것으로 알려졌다. ■술이부작■과 ■온고이지신■을 강조한 공자로서 덕치의 길을 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② 공자가 힘의 정치를 물리치고 덕치의 길을 제시한 더 가까운 이유로써는 그가 살았던 당시의 노나라의 실정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노나라는 춘추 시대 초기만 하더라도 비교적 국세가 탄탄했으나, 그 뒤에 현군이 나타나지 않아서 공실의 힘이 점차 쇠약해졌고, 삼환씨로 불리는 세 대부 집안의 세력이 커졌다. 이들 대부는 마침내 군권까지 장악하여 나라 정치를 마음대로 요리하였다. 급기야 민심도 동요하여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지게 되거니와, 이와 같은 불행의 근본 원인은 지배 계층의 도덕적 타락에 있다고 공자는 보았을 것이다. 이에 공자는 위정자의 도덕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위정자의 도덕성 강조는 곧장 덕치주의 정치 사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③ 공자는 힘의 정치와 형벌에 의한 치안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타율에 의존한 치안과 질서는 일시적 대중요법 과 같은 것이며, 오직 국민의 덕성에서 우러난 자율적 협력만이 참되고 지속적인 안녕과 질서를 가져올 수 있다고 공자는 믿었다.
④ 그러나 공자가 내면적 덕성의 강조 하나만으로 안녕과 질서가 지배하는 태평성세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은 아니다. 공자는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린다■고 말한 바 있듯이, 덕과 더불어 예를 매우 존중했거니와, 공자가 중요시한 ■예■는 제도와 관습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규범으로서 법에 준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법이 형벌을 수반하는 무서운 규범이라면 예는 형벌의 위협은 없으나 관습적으로 따르게 되는 부드러운 규범이다. 간단히 말해서, 공자는 덕치가 가진 취약점을 예의 숭상으로써 보완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⑤ 인간의 평등을 윤리의 기본 전제로 삼고 있는 현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공자가 예의 숭상을 강조한 대목은 그의 사상이 지극히 비민주적임을 밝혀 주는 대목으로서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사상을 현대의 시각에서 평가하는 작업은 잠시 보류하고, 지금은 공자의 시대에 시점을 고정시키는 자세를 유지하며 그의 사상을 간추려 보는 일에만 전념하기로 하자.
2. 덕과 도 그리고 인
① 덕으로써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고 역설한 공자의 사상을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주장한 ■덕■의 개념이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공자가 ■덕■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기록은 없다. 다만 여러 구체적 상황에서 여러 가지 표현으로 ■덕■에 대해 언급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화 속에서 공자가 말한 ■덕■의 단편들을 종합함으로써 그의 덕론을 추리할 수밖에 없다. 덕을 숭상하는 사상이 공자에서 비롯된 것은 물론 아니며, 고래로 여러 문화 전통 속에 여러 가지 덕 사상이 나타났다. 여기서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공자가 덕에 관하여 가졌던 사상의 남다른 점이다.
덕을 숭상한 공자의 사상 바탕에는 인간이면 누구나 따라야 할 ■도■가 있다는 굳은 믿음이 깔려 있다. “아침에 도에 관하여 들어서 알게 된다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라고 말했을 정도로 공자는 도의 존재를 믿고 그것을 중요히 하였다.
② 사람들 특히 덕치의 임무를 맡아야 할 위정자 계층의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여러 덕목이 있거니와, 그 가운데서 공자가 가장 중요시한 것은 인이었다. 공자의 사상을 가장 진솔하게 전하는 고전으로 평가되는 『논어』 가운데 ‘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이 많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특히 공자는 바람직한 인간형으로서 ‘군자’를 제시했거니와,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잠시도 인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부 와 귀는 사람들이 탐내는 바이나, 도를 따라서 얻은 것이 아니면 누리지 말아야 한다. 빈과 천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이나, 도를 어기면서까지 그것을 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군자가 인을 떠난다면 어찌 군자로서 이름을 이룩할 수 있겠는가? 군자는 밥을 먹는 시간에도 인을 어기지 않으며, 다급한 순간에도 반드시 이를 지키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반드시 이를 지킨다.
위의 인용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공자의 사상 가운데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세 가지 개념, 즉 ‘도’와 ‘인’과 ‘군자’ 사이의 관계가 대단히 긴밀하다는 사실이다. 도를 이야기한 바로 뒤를 이어서 인을 말하고 또 군자를 언급했다는 것은 공자의 머리 속에서 저 세 가지 개념이 항상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어우러져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공자의 사상 바탕에는 도를 터득한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덕이 바로 인이고, 인의 덕을 가까이 하면 그것으로써 이미 군자로서의 바탕을 이룩했다고 보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③ 그러나 공자는 인하게 되기 위해서는 특별히 탁월한 소질이나 초인적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공자는 누구나 결심만 단단히 하고 노력만 꾸준히 하면 인자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논어』「술이」편에서 “인은 멀리 있는 것일까.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인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였고, 「안면」편에서는 “인하게 되는 것은 내게 달려 있는 것이니, 어찌 남에게 달렸다 하겠는가” 라고 말씀하였다. 세상에 인자가 적은 가장 큰 원인은 사람들에게 인을 좋아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공자는 믿었다. 『논어』「이인」편에, “나는 아직 인을 좋아하는 사람과 인하지 않음을 싫어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그의 말이 보인다. 사람들에게 인을 행할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을 발휘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루라도 인을 위하여 그의 힘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나는 힘이 부족한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3. 의와 효
① ‘인’을 넓은 뜻으로 이해할 때는 유교에서 숭상하는 모든 덕목이 그 안에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유가에 서는 ‘인’을 좁은 의미로 사용할 경우도 많으며, 좁은 의미로 사용할 경우에는 ‘인’을 의, 예, 지, 신 등과 병립하여 오상의 하나로 꼽는다. 오상 가운데서 ‘인’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의와 예가 아닐까 한다. 다만 예는 엄밀한 의미의 덕목이라기보다는 외형적 규범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므로 다른 기회에 따로 고찰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의에 대하여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논어』 여러 곳에서는 우리의 ‘의’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언급의 맥락으로 미루어서 ‘의’라는 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행동의 규범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그 개념의 정확한 의미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추측컨대, 공자를 위시한 초기의 유가들은 세상에는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고 믿었으며, 그 도리에 어긋남이 없는 것을 ‘의’라고 생각한 듯하다.
② 『논어』「이인」편에 “부귀는 사람들이 탐내는 바이나, 도로써 얻은 것이 아니면 누리지 말아야 한다”는 공자의 말씀이 있고, 「술이」편에는 “의가 아니고서 부귀한 것은 나에 있어서 뜬구름과 같다”는 말이 있다. 이것으로서 우리는 공자의 ‘의’와 ‘도’ 사이에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도를 따르는 것이 바로 의에 해당한다고 공자는 본 것이다. 다만 원시 유교의 단계에서는 ‘도’에 대한 명백한 정의가 없으므로, ‘의’의 개념도 어렴풋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이 있다. 유가에서는 ‘의’를 ‘이’와 대립시켜서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논어』「이인」편에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는 말이 보이고 맹자와 양혜왕과의 대화에서 이와 이의 대립이 부각된 바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의가 아니고서 부귀한 것은 이에 있어서 뜬구름 같다”고 한 「술이」편의 말을 다시 상기하게 되며, 부와 귀가 이의 대표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유가들은 불가나 도가처럼 세속적 욕구의 대상인 이를 부정적 시각에서 물리치지는 않으나, 이보다는 의를 더욱 숭상해 왔다. 의의 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세속적 욕구를 충족시키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③ 유교에서 말하는 오상이 사회 생활 전체를 위한 규범이라면, 오륜은 주로 가정 생활의 규범을 밝힌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륜 가운데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효의 덕목이다. 중국은 일찍부터 농경을 생업으로 삼고 발전한 나라이며, ‘국가’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가족을 기본으로 삼는 사회로서의 전통이 오래되었다. 농경 사회와 가족 제도를 바탕으로 삼고 형성된 유교 사상이 가족 윤리를 중요시한 것은 당연한 것이며, 가족 윤리의 으뜸가는 원리로서 효의 덕목을 강조했던 것이다.
④『논어』에 보이는 이상과 같은 구절을 종합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 효도의 근본은 부모의 뜻을 존중하고 따르는 공경의 정신이다. 부모의 뜻과 행동에 대하여 공감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자식된 도리로서는 부모의 길을 따라야 하며,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도 3년 정도는 그분들의 길을 지키는 것이 효도에 해당한다.
㉯ 부모가 크게 잘못을 저질렀거나 그릇된 길도 들어서려고 할 경우에는 자식이 그 잘못됨을 간언으로서 일깨우고 고치도록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간언 하는 태도는 매우 부드럽고 완곡해야 하며, 부모가 끝까지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는 자식된 도리로서 물러설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에도 부모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
㉰ 노후의 부모가 육체적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잘 봉양하는 것은 자식된 도리의 기본이다. 그러나 물질적 봉양을 잘하는 것만으로 효도가 되는 것은 아니며, 공경으로써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효도의 필수 조건이다. 특히 자식은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불행으로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자식의 불찰로 인해서 부모에게 근심을 끼치는 것은 효도에 어긋나는 짓이다. 자식이 부모의 곁을 멀리 떠나가면 자연히 부모에게 걱정거리가 되기 쉬우니, 되도록 부모의 곁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것도 효도의 한 방안이다.
㉱ 부모의 생존시에만 잘 모시는 것으로서는 효도로서 충분할 수 없다. 돌아가셨을 때는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르고, 장례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제례를 정성껏 모셔야 한다. 유가의 사상 가운데서 개인의 죽음을 생명의 끝으로 보지 않고 가계의 계승을 통하여 생명이 연장된다는 믿음이 깔려 있으며, 조상의 영혼을 예로써 모시는 것은 자손의 당연한 도리라는 관념이 강하다.
『논어』에는 효도가 단순히 가족 윤리를 위한 덕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효의 정신은 사회 전체를 후덕하게 만드는 원리이며, 효도의 정신이 확산되면 나라 전체의 정치 문제도 잘 풀린다는 뜻의 말도 보인다. 「학이」편에 보이는 “부모의 장례를 신중히 치르고 조상의 제사를 정성껏 모시면, 백성이 덕이 돈후하게 된다”고 한 증자의 말이 그것이고, 누가 공자에게 왜 정치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효도하라, 오직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를 다함으로써 그것을 정치에 반영하라”고 한 『서경』의 말을 인용하여 효도 안에 정치의 길이 들어 있음을 말한 것도 그것이다.
가정마다 효성이 지극한 자녀들로 가득 차고,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하면, 나라 전체가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유가들은 믿었다. 그러나 이 믿음이 효도를 행해야 하는 이유로서 전제되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공자와 그 제자들은 다만 효는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므로 사람인 이상 이 길을 밟아야 한다는 생각했을 것이며, 효도를 권장하고 숭상하는 과정에서 가족 윤리의 원리로서의 효가 사회 윤리의 원리에도 있다고 강조했을 것이다.
4. 개인주의의 한계와 다시 돌아본 공자의 인간관
① 1945년에 2차 대전이 끝나고 우리 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의 굴레를 벗어나게 되었을 때, 38선 이남은 미국의 영향권 아래로 들어갔다. 우리는 미국식 교육 제도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미국을 본받아서 자유 민주주의 헌법을 제정하였다. 그 뒤로 50여 년의 세월을 보내는 가운데 우리는 여러 측면에서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미국 문화 수용에 부분적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세는 미국의 문물을 모방하는 방향으로 기울었다.
자유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것은 우리 나라의 전통과는 거리가 먼 사상이었으나,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에 대한 경험이 저 서방의 새로운 사조를 맹목적으로 환영하기에 적합한 심리 상태를 준비했다는 또 하나의 요인도 작용하였다. 결국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의 나라’임을 표방하였고, 제반 제도와 일상적 생활 양식이 그 이름을 따라서 변화하였다. 그 동안에 우리가 자유 민주주의의 근본 정신을 제대로 체득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들의 의식구조 바탕에 개인주의적 인생관이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산업화 과정을 통한 경제적 구조의 변화는 개인주의적 인생관을 구축하는 데 더욱 직접적인 요인으로서 작용하였다. 상공업의 발달과 도시화는 젊은이들에게 농사라는 가업을 떠나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대량으로 제공하였고, 그 기회를 잡은 젊은이들은 가족에 대한 충성보다는 차라리 개인의 자유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젊은 세대는 갈수록 ‘우리’를 위한 ‘우리’ 의 삶보다도 ‘나’를 위한 ‘나’ 의 삶이 더욱 소중하다는 생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기풍이 강하게 일어났다. ‘나’에 대한 자아 의식이 ‘우리’에 대한 자아 의식을 압도하는 세태가 된 것이다.
참된 자유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개인주의는, 개인의 권익과 자유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 존중하되, 나의 권익과 남의 권익을 차별 없이 존중하고 나의 자유와 남의 자유를 풍미하고 있는 것은 그토록 높은 수준의 개인주의가 아니라, 실은 이기주의라는 말이 더 적합한 낮은 수준의 ‘개인주의’에 불과하다. 필자는 우리 나라를 풍미하고 있는 낮은 수준의 개인주의를 편의상 ‘이기적 개인주의’라고 부르기로 한다.
② 현재 우리 나라의 이기적 개인주의자들의 대다수가 추구하는 목표는 ㉮ 돈과 재물, ㉯ 권력과 지위, ㉰ 관능적 쾌락 등 외면적 가치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 외면적 가치에 속하는 것들은 대체로 그 총량에 한계가 있고, 그것들을 탐내는 사람들의 욕심에는 거의 한정이 없다. 따라서 이들 외면적 가치의 대상들을 서로 많이 차지하기 위하여 매우 치열한 경쟁 상황이 전개되는 동시에 ‘만인은 만인의 적’이라는 홉스적 불행을 초래한다. 결과적으로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가 나타나게 되거니와, 소수의 승리자는 다수의 도전과 시기 속에서 마음이 불편하고, 다수의 패배자들은 그 패배의 책임을 사회적 구조적 모순으로 돌리고 불만과 분노를 느끼며 산다. 결국 모두가 피해를 입는 셈이다.
이기적 개인주의의 폐단은, 우리 나라의 경우, 지나친 사회 경쟁과 빈부 격차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인의 대다수는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심히 미약한 편이어서 사회 질서의 문제도 매우 심각하다. 교통의 혼잡과 빈번한 교통 사고만 보더라도, 우리 나라의 사회 질서가 얼마나 혼란한가를 짐작할 수 있다.
자유 민주주의의 선진국으로 알려진 서방의 여러 나라들의 경우는 사람들의 개인주의가 타인의 자유와 권익을 존중함에 있어서 우리 나라보다 상당히 앞서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경우도 이기심의 굴레를 벗어나서 투철한 이성적 개인주의에 도달한 사람들은 비교적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들의 사회에서도 이기심으로 인하여 서로가 피해를 입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서구의 선진국에서는 냉철한 개인주의로 인하여 삶의 고독이 우리 나라의 경우보다도 심한 편이다. 우리 한국인의 경우는 대체로 지성보다 정열이 우세한 기질을 가졌으므로, 아직까지는 인정이 많은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정을 나누며 서로 어울리는 경우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러나 서구의 선진국 사람들은 대체로 냉철한 기질이 우세하므로 각각 떨어져서 각자의 울타리를 고수하는 경향이 우리보다 강하다. 각자의 울타리 고수는 개인의 독립성과 자유를 위하여 도움이 되기는 하나, 궁극적으로 모두가 외로운 인생을 산다는 결과를 가져온다.
타인과의 끈끈한 유대를 거부하고 각자가 자기의 방식으로 사는 것을 젊은이들은 대체로 환영한다. 이러한 추세는 근자에 우리 나라 젊은이들에게도 급속도로 번져 가고 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내 방식대로 살겠다.” 이것은 우리 나라 젊은이들에게 매혹적이고 당연한 말로 다가오기 쉬우며, 상업주의에 젖어 있는 대중 매체는 은근히 젊은이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을 부추긴다.
“인간이라는 것이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제멋대로 살 수 있는 존재냐? 하는 원칙의 문제는 여기서 제기하지 않겠다. 다시 말해서, 사회의 안녕과 질서, 국가의 유지와 발전 따위의 거창한 문제들은 일단 접어 두고, 개인적 차원에서 볼 때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길인가? 하는 문제만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무릇 구속을 원치 않는 것은 본능과도 같은 심리이고, 특히 부모들의 지나친 간섭에 대한 반동 심리에서 젊은이들이 각자의 길을 주장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젊음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 길이 유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③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동경하며 50여 년 동안 살아온 셈이다. 그리고 그 이념의 실현을 위하여 우리 나름의 노력도 하였다. 한때 공산주의 이념과의 갈등을 겪기도 했으나, 소련과 그 위성 국가들의 몰락을 계기로, 이제는 자유 민주주의의 정당성이 입증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의 세력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대항 세력이었던 공산주의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자유 민주주의의 완벽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는 아직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그 문제들이 점차 해결되어 가는 추세에 있다고 낙관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개인주의적 인간관의 타당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새롭게 문제를 제기한다기보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온 문제가 다시금 심각하게 다가온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이 오래된 문제를 다시금 의식하면서 필자는 공자의 인간관으로부터 무엇인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④ 바람직한 사회의 첫째 조건은 질서와 평화다. 사회가 질서와 평화를 잃으면 개인들의 각자의 뜻을 이루고 보람찬 삶을 실현하기가 매우 어렵다. 바람직한 사회의 둘째 조건은 사회 정의에 입각한 만인의 기본 생활 안정이다. 기본 생활이 위협을 받으면 ‘각자의 취향을 따르는 바람직한 삶’이라는 것이 실현될 바탕을 잃게 된다. 모든 사람들의 기본 생활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사회 정의가 무너져서 빈부의 차이가 심하면, 인간적 갈등이 격화되어 마음의 평화를 잃게 된다. 바람직한 사회의 셋째 조건은 인화 내지 사랑과 협동이다. 인화와 협동이 부족하면 그 사회 안에 사는 개인들의 삶이 고독과 좌절을 면하기 어렵다. 이상 세 가지 조건들은 서로가 완전히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며, 상호간에 적지 않은 연관성이 있다.
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질서를 파괴하고 안녕을 위협하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이들 반사회적 성향의 사람들과 맞서서 안녕과 질서를 지키는 일이 중요하거니와, ‘나’만을 염두에 두고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희박한 사람들에게 반사회적 세력을 꺾어 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개인적 자아, 즉 ‘나’의 껍질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반사회적 행동을 스스로 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반사회적 세력과 맞서서 싸우기를 원치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손해를 감수해 가며 ‘우리’를 위하는 일에 정열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해야 한다. 이리하여 우리는 공동체 지향의 인간관이 개인주의적 인간관보다 우세함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⑥ 공자의 인간관은 자연의 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혈연을 유대로 삼고 함께 생활하는 가족이 하나의 ‘우리’를 의식하며 사는 것은 동물의 세계에 공동된 현상으로서 그 생물학적 근거가 확고하다. 부모가 독립 이전의 자녀를 자아의 일부로 의식하고 독립 이전의 자녀들이 부모를 자아의 일부로 의식하며 의지하는 것은 생물학적 자연 현상이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 의식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이 저절로 그렇게 된다. 일반 동물의 경우는 그렇게 저절로 생긴 가족적 자아 의식이 새끼들의 성장을 계기로 소멸한다. 그러나 높은 지성을 가지고 과거를 기억하며 미래를 예상하는 인간의 경우는 그 가족적 자아 의식을 오래 보존하고 더욱 확대한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공자의 인간관이 가진 크나큰 강점이다.
그러나 ‘자연의 정’에 뿌리를 두었다는 바로 그 점이 약점으로 나타나기도 쉽다. 대체로 ‘정’이라는 것은 그 미치는 범위가 좁다. 그것은 잔잔한 호수 위에 던져진 조약돌이 일으킨 파문처럼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가다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특히 혈연의 정은 폐쇄성이 강해서 가족 밖으로 멀리 뻗어 가지 못하고 가족 이기주의 수준에 머물기 쉽다. 혈연의 정에 갇힌 사람들은 “남의 자식을 밀어내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자식만은 일류 대학에 집어넣어야겠다”는 식의 생각을 벗어나기 어렵다. 가족에 대한 사람을 이웃 사랑으로 넓히고, 이웃 사랑을 나라 사랑과 인류 사랑으로 점차 확대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하냐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의 정에 뿌리를 둔 집단주의 인간관 그 자체 안에서 우리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족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닫힌 마음으로는 현대의 문제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다. 현대는 열린 마음의 인간상을 요구하거니와, 그 열린 마음의 인간상을 위한 가르침을 공자의 사상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일까?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나, 공자의 ‘군자’ 개념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5. ‘군자’의 개념으로부터 현대인이 배워야 할 것
① 우리가 공자의 군자 개념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갖는 것은 주로 두 가지 기대 때문이다. 우리가 갖는 첫째 기대는, 현대를 사는 우리로서 바람직한 인간형의 그림을 그리고자 할 때, 공자의 군자 개념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그것이다. 그리고 그 둘째는 현대를 사는 우리로서, 바람직한 인간관을 모색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전장에서 고찰한 공자의 집단주의적 인간관에 대하여 그 부족한 면을 보충할 수 있는 지혜를 공자의 군자 개념으로부터 다소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우선 현대의 바람직한 인간형을 위하여 공자의 ‘군자’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공자에 따르면, 군자는 풍요로운 물질 생활을 탐내지 않는다. 공자는 부귀를 배척하지 않았으며, 정도를 밟아서 얻은 부귀라면 오히려 대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공자 자신이 고관의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고관의 자리에 어울리는 예를 갖추자면 어느 정도 물질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는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생활은 경계하였으며, 차라리 안빈낙도하는 것을 군자다운 태도라고 역설하였다.
옛날부터 부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갈망하는 바이다. 특히 현대는 부에 대한 욕구가 탐욕에 가까울 정도로 팽배한 시대이다. 인생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이 가문이던 시대는 사라지고, 이제는 부가 인간의 값을 정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간주되는 세태가 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공자가 권장한 군자의 길이 현대인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길일까 하는 문제를 우선 고찰해 보고자 한다.
결혼부터 말하면, 현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사치와 낭비를 억제해야 할 시대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자연 자원의 고갈 문제와 자연 환경의 오염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던 옛날에도 성현들은 검소한 생활을 권장했음에 비추어서 현대에는 더욱 철저히 절약에 힘써야 한다. 옛날에는 부자가 먹다 남긴 음식을 빈자가 먹기도 하고 부자가 입다 버린 옷을 빈자가 얻어 입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대에는 멀쩡한 가구도 쓰레기가 되는 세상이다. 소비가 결코 미덕이 될 수 없는 까닭이다. 옛날에는 가난을 조상의 탓 또는 팔자의 탓으로 돌렸던 까닭에 빈부의 격차에 대한 사회적 불만은 적었다. 그러나 지금은 본인의 무능과 게으름에 연유하는 가난까지도 사회 구조의 모순에 책임을 돌린다. 부자들의 사치와 낭비가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까닭이다. 그밖에도 검소한 생활을 권장해야 할 이유는 많이 있다. 사치스러운 생활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자의 ‘군자’는 오늘의 우리를 위해서도 본받을 만한 귀감임에 틀림없다.
유교는, 내세를 중요시하는 불교나 기독교와는 달리, 현세에서의 삶을 긍정했으며 금욕을 권장하지는 않는다. 공자가 좋아하는 군자도 현세에서의 세속적 즐거움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는 즐길 때는 즐기고 슬플 때는 슬퍼하며 자연스럽게 산다. 다만 그는 지나친 쾌락을 탐내지 않으며, 몸과 마음이 상할 정도로 슬픔에 젖지 않는다. 요컨대, 즐겁게 살되 즐거움의 정도가 지나쳐서 향락을 탐닉하지는 않는 것이 군자의 생활 신조이다.
많은 현대인이 지나치게 돈을 좋아하는 것은 사치와 낭비를 위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사치와 낭비는 지나친 향락으로 연결된다. 즐길 것은 즐기되 지나친 향락은 삼가고, 슬픔을 슬퍼하되 지나치게 슬퍼하기에 이르지 않는 군자의 중용은 현대의 우리로서도 본받을 삶의 지혜라고 생각된다.
② 현대의 우리 사회는 말만 무성하고 실천은 빈약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좋은 말을 잇달아 쏟아 놓는 사람은 많지만, 그 말을 실천에 옮기거나 믿고 뒤따르는 사람은 적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정치계에 현저하며,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정치에 대한 불신은 경제와 사회, 교육과 문화 등 여러 분야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실정에 비추어 “일에는 민첩하되 말은 삼간다”는 군자의 태도로부터 오늘의 우리들이 배워야 할 교훈이 적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논어』「이인」편에 보이는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는 공자의 말씀도 현대인이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귀중한 교훈을 담고 있다. 현대인은 일반적으로 이익에 대하여 매우 민감한 반면에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 불의를 눈을 감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 옳지 않는 행위를 감행하기도 한다. 나라 일을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사사로운 이익을 챙겨야 마땅한 터인데, 많은 사람들이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결국은 나라 전체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그 어려움 속에서 나 자신도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소인배의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③ 공자는 ‘중용’을 덕의 지극한 것으로서 중요시하였고, 군자가 마땅히 체득해야 할 덕목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그리고 중용과 표리의 관계를 가진 ‘조화“도 군자의 덕목으로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주변에는 극단으로 달리는 사람들이 흔히 있고, 극단으로 달리는 풍조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도 적지 않다. 사람들은 남의 눈에 뜨이기를 좋아하고, 남의 이목을 끌기 위하여 튀는 언행을 감행한다. 그러나 비록 남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슬기로운 태도가 아니다. 사람들은 조만간 그 튀는 언행에 대하여 싫증을 느끼게 될 것이고, 더러는 거부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거부감은 갈등을 유발한다.
현대인으로서도 군자의 인간형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는 견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우리는 군자에 가까운 사람이 되는 것이, 사회 전체를 위해서 뿐 아니라, 본인 개인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냐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군자형의 인품을 실현하는 일이 현대의 여러 여건 아래서도 가능하냐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것은 군자형의 인품을 가진 사람이 현대의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겠느냐 하는 의문이요, 둘째 것은 현대와 같은 각박한 사회에서 군자다운 군자가 나타날 수 있겠느냐 하는 의문이다.
현대는 이에 밝은 영악한 사람들이 활개를 치는 시대요, 우리 사회는 말을 잘해야 출세의 길이 열리는 사회이다. 그런데 군자는 이보다 의를 존중한다 하였고, 일에 민첩하되 말을 앞세우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 현대는 도처에 향락의 기회가 널려 있는 시대다. 그러나 군자는 향락에 탐닉함을 삼간다고 하였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현대 사회에서 ‘군자’의 자세를 지키려면 불리한 경우가 많을 것이니, 결국 군자로서 사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이것이 우리 첫째 의문의 배경이다.
우리가 만약 이를 인보다 중용시하고 이른바 ‘출세’를 삶의 보람으로 생각하는 소인의 인생관을 전제로 삼는다면, 군자가 되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만약 향락의 극대화에 최고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군자가 되는 것은 본인을 위해서 좋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군자의 인생관은 소인의 인생관과는 크게 다르므로, 그의 인생관으로 본다면 군자로서 사는 것이 도리어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향락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쾌락주의의 역리라는 모순에 부딪히기 쉬우므로, 소인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생활 태도가 아니다. 더구나 군자의 가치관으로 볼 때 그것은 한갓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근시안적 계산법에 따르면 군자 됨에 불편함 점이 많다는 주장이 성립할 수 있을 것이나, 원대한 안목으로 내다보다면, 이해와 득실을 개선한다 하더라도, 군자 됨이 도리어 본인을 위하는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사람들의 인격은 사회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고 형성된다. 기성 세대의 지배적 정신 풍토, 가정과 학교에서의 인성 교육, 정치와 경제의 현실 등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젊은이들의 인격 형성이 크게 좌우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전체적 상황은 여러모로 보나 군자형의 인격을 길러내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군자형의 인물이 나타나기에는 정신 풍토가 너무나 각박하다. 이것이 우리 둘째 의문의 배경이다.
그러나 군자형의 인물이 나타나기 어렵다는 것이 그 불가능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믿는다. 인간은 주위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그 영향을 극복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힘도 가지고 있다. ‘군자’가 바람직한 인간형 임을 확신하고 그 인간형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굳은 결심으로 꾸준히 노력하면 그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는 일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공기 좋고 물 좋던 옛날에 비하면, 현대는 건강을 유지하기에 어려움이 많은 시대다. 물과 공기뿐 아니라 식품에도 화학 물질이 함유되어 먹을 것이 마땅치 않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대인이 건강체를 단념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더욱 어렵다. ‘군자’라는 인간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군자’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정신적으로 매우 건전한 인품에 붙인 이름이라고 이해하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6. 가족주의적 인간관의 한계와 열린 마음의 군자
① 전장에서 공자의 인간관을 고찰했을 때, 그의 집단주의적 인간관에, 현대의 개인주의적 인간관에서 오는 폐단을 극복할 수 있는 장점과 아울러 약한 고리도 있음을 보았다.
공자의 인간관은 가족주의적 인간관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확대한 것이었다. ‘가족’ 이라는 자연 집단을 근거로 삼은 까닭에, 공자의 집단주의적 인간관은 ‘자연의 순리를 따른다’는 강점을 가졌다. 그러나 가족 집단을 지탱하는 그 자연의 정이 자기 중심적이며, 그 정이 미칠 수 있는 거리에 한계가 있는 까닭에, 가족주의에서 출발한 공자의 인간관이‘우리’의 범위를 과연 어디까지 확대할 수 있느냐 하는 물음에 부딪친다. 이 물음은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물음인 까닭에, 공자의 인간관에 있어서 약한 고리로서 남을 우려가 있다.
우리는 저 물음을 해결할 수 있는 단서를 공자의 군자 사상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군자’의 가장 큰 특색의 하나가 열린 마음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가족주의적 사유의 폐쇄성을 극복하는 단서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열린 마음’이니 ‘닫힌 마음’이니 하는 말은 뜻이 모호한 표현이므로, 그 뜻을 구체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다. 앞에서 인용한 바 “군자는 두루 화친하고 편당적이 아니다”라는 「위정」편의 구절은 군자의 열린 마음을 구체적으로 밝혀 주기에 큰 도움을 준다. 편당적이어서 패거리를 만드는 것은 소인들이 하는 짓이며, 군자는 여러 사람들과 광범위하게 화친하되 편을 가르거나 패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군자의 투철한 불편부당 배후에는 이익보다도 옳음을 숭상하는 정신이 깔려 있거니와,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해 관계가 일치하는 사람들이 뭉쳐서 다른 집단에 대하여 배타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어떤 경우이든 군자의 정신에 어긋나는 짓이다. 따라서 같은 지방 사람들이 뭉쳐서 다른 지방과 편을 가르거나 같은 동문끼리 뭉쳐서 세력을 형성하는 따위는 군자의 정신에 위배된다. 같은 논리를 한 걸음 더 연장한다면, 민족적 이기주의나 국가적 이기주의도 군자의 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우리는 『논어』에 두 번 보이는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유명한 구절을 다시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구절은 “무엇이든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한 마태복음의 황금률과 같은 논리의 가르침을 소극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세계 종교로서의 기독교와 같은 논리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알기 쉽게 말해서, 공자의 ‘군자’사상에는 자기 중심적 정의 논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계기가 숨어 있다.
여기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공자로 출발하여 빙빙 돌아서 어렵게 박애의 정신에 도달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출발하는 편이 낫지 않느냐?” 하는 의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박애 정신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자아로 의식할 수 있는 자아관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아로서 온 인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대자아의 철학이다. 박애의 철학보다도 대자아의 철학으로 마음이 끌리는 까닭은 타아를 사랑하기보다는 자아를 사랑하기가 쉽다는 심리학적 사실에 있다.
기독교도 가운데도 소아를 희생함에 생애를 제공한 테레사 수녀가 있고, 인류를 넘어서서 모든 생명을 사랑한 슈바이처 박사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개인주의에서 출발하여 테레사 수녀나 슈바이처 박사의 큰사랑에 도달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어려운 일이다. 필자 자신이 ‘나’를 버리지 못하는 보통 사랑임을 아는 까닭에, 그리스도의 박애보다도 공자에 대아에로 마음에 기운다.
② 우리 민족이 일본의 침략을 받고 그들의 식민지로 전락했을 때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나’와 민족을 동일시하였다.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상태에서는 개인의 삶도 위협을 받는다는 위기 의식이 사람들의 자아를 크게 만들었다. 물론 모든 한국인이 공통된 자아를 의식했던 것은 아니며, 더러는 삶의 방도를 친일파의 길에서 찾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민족적 자아 의식을 가지고 산 시간이 많았으며, 특히 일부의 애국 지사들은 가정까지도 멀리하고 ‘민족’이라는 자아를 위해서 일생을 헌납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애국 지사의 길을 선택한 사람과 친일파의 길을 택한 사람의 갈림길에서 작용한 힘이 무엇에 연유했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들이 가진 어떠한 차이가 누구는 애국 지사의 길을 걷게 하고, 누구는 친일파의 길을 걷게 했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자연의 정의 차이 또는 지능의 차이가 사람들을 서로 다른 길로 가게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친일파들은 자연의 정이 약했다거나 지능이 낮았다는 주장 또는 그 반대의 주장이 성립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론의 여지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나, 애국 지사의 길을 택한 사람들을 공자가 말하는 ‘군자’의 인간형으로 분류하고 친일파의 길을 택한 사람들을 ‘소인’의 인간형으로 분류한다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람들을 군자의 길로 가게 하는 것이 뜨거운 정열과 냉철한 지성이라고 전제한다면, 애국 지사로서 ‘대인’의 길을 걸은 사람들은 뜨거운 정열과 냉철한 지성을 아울러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러한 추측은 전 인류를 ‘우리’로서 의식하는 대아의 경지에 도달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고자 하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힘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뜨거운 정열과 냉철한 지성을 아울러 갖는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우리들의 지성이 민족과 국경을 넘어서서 전 인류에까지 미치는 것도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③ 현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자아의 범위가 넓은 열린 마음의 인물을 요구하는 시대이다. 지구 전체가 일일 생활권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교통과 통신이 발달했고, 전세계의 인구가 한 부락민처럼 이해 관계를 맺어 가며 살고 있다. 날로 더해 가는 환경의 오염과 자원의 고갈은 온 인류가 뜻을 모아서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지켜 줄 것을 요청한다. 단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후손들에게 오래도록 인간이 살 수 있는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자아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넓은 범위로 확대되어야 한다. 우리들이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으며, 우리와 우리 후손이 살아 남기 위해서 대자아의 인간상이 나타날 필요가 있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현대인으로 하여금 대자아의 인간상으로 접근하게 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가족주의의 색채가 강한 공자의 집단주의적 인간관과 공자의 ‘군자’ 사상의 힘만으로, 현대의 인류가 봉착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관을, 현대의 서구적 개인주의 인간관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관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인간관을 모색함에 있어서, 고대의 위대한 동양사상가인 공자의 가르침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술이부작과 온고이지신을 강조한 공자가, 선대의 가르침을 답습하는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많은 사상을 새롭게 피력했듯이, 현대를 사는 오늘의 지성인들도 우리 자신의 머리로 현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옛날 공자의 경우나 오늘날 우리의 경우나, 삶의 문제 해결의 지혜를 모색함에 있어서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뜨거운 정열과 차가운 지성이다.
7. 덕치의 이념과 현대 한국
① ‘덕치주의’는 본래 ‘법치주의’와 대립하는 개념이다. 『논어』「위정」편에 보이는 “정령으로 인도하고 형벌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은 형벌은 면하되 염치는 모르게 된다.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은 염치를 알게 되고 또 바르게도 된다”라는 말로 알 수 있듯이 공자는 덕치만이 정치의 정도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있다. 성선설에 근거를 둔 이 주장은 하나의 이상론이며, 민심이 순박했던 옛날에도 현실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흔히 있었다. 하물며 현대와 같이 사회의 양상이 복잡하고 범죄 문제가 유례 없이 심각한 시대에, 덕치 하나만에 의지하여 질서와 안녕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법치를 배제하고 덕치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면, 위정자의 도덕성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공자의 정치 사상에는 현대 국가를 위해서는 소중한 가르침이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특히 국가 전체의 이익을 도외시하고 개인의 이익과 당리당략만을 위하여 권모술수에 골몰한 현대 한국 정치 풍토를 바라볼 때, 공자의 가르침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공자는 위정자의 언행이 백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함을 역설하였다. 위정자의 언행은 모방의 대상이 되므로 국민에 대한 솔선수범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고, “위정자가 바르지 않으면 비록 명령한다 하더라도 따르지 않는다”고 한 「자로」편의 말은, 공자가 위정자의 언행이 모방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 대목이다. 위정자가 바르게 한다고 국민이 모두 그를 본 받으리라는 보장은 없을 것이나, 위정자가 바르지 않을 경우에 국민이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일반적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위정자의 솔선수범이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위한 충분조건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그 필요조건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공자는 국가의 존립을 위해서 필요한 세 가지 조건으로서 식량과 병력과 국민의 신뢰를 꼽았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요,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식량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위정자의 덕이요, 식량의 확보를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경제정책이다. 공자가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된 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현실에 대한 관찰에 근거를 두었을 것이다.
오늘의 우리 한국의 현실도 민생과 경제의 문제가 심각하고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이 생기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민생과 경제의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고 정부도 그 나름의 대책을 세우고 있으나, 본래 그 문제 자체의 다난함으로 인하여 쾌청한 날을 보기 어렵다.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이미 만성화하여서 이에 대한 문제 의식조차 미약하다.
현대에 있어서도 정치인에게는 막강한 힘이 있는 까닭에 사람들은 그들 앞에서 자세를 낮춘다. 그러나 돌아서면 비난과 멸시로 정치인을 매도하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정치인들이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정치인들은 물론이요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정치인들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 결정적 관건이 되는 것이 그들의 유덕한 인품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상식이다. 그리고 위정자가 갖추어야 할 덕성을 가진 인품으로서 공자가 염두에 두었던 것이 다름 아닌 ‘군자’의 인품이었다.
공자의 말씀 가운데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로움에 밝다‘는 것이 있다. 정치가에게 이로움을 도외시하라면, 그것은 무리한 요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로움보다도 의로움을 더욱 소중히 여기기를 바라는 것은 반드시 무리한 요구가 아닐 것이다. 정치가라는 것이 나라의 살림을 맡은 공인임을 생각할 때, 그가 이로움보다도 의로움을 더욱 중요시하길 바라는 것은 국민으로서 당연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들의 생명과 재산을 군자 아닌 소인에게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정치인들 가운데 이로움보다도 의로움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군자형의 인물이 얼마나 될까 하고 알려진 이름들을 떠올릴 때, 소수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회의를 금치 못한다. 내가 이름을 알 정도의 정치가라면 애국심도 있을 것이고 의로움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을 현실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많은 경우에 애국심이나 의리가 아니라 이기심이다. 이기심에 압도당하는 까닭에 그들의 애국심이나 의리는 말의 단계에서만 나타나고 행동에까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행동이 언어를 따르지 못하는 것이다.
공자 말씀 가운데 “군자는 그의 말이 그의 행동보다 지나침을 부끄러이 여긴다”는 것이 있다. 그리고 “군자는 말은 더듬되 행동은 민첩하기를 바란다”는 말씀도 하였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정치가들은 대개 말을 매우 잘한다. 그러나 그 말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으니, 교언이 난무하고 식언이 다반사가 된다. 정치가들 가운데서 군자를 찾아보기 매우 어렵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다.
② 언변 좋고 권모술수에 능한 재주꾼들이 우리 나라의 정치계를 주도하게 된 오늘의 현실에 대해서는 주권을 가진 국민 모두가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 잔재주가 능한 후보자에게 투표함으로써 그들을 정계의 주역으로 부상하게 만든 것은 결국 주권을 행사한 국민 일반이었다. 의로움을 외면하고 이로움만 좇는 정치가들이 활개를 치게 된 현실에 대해서도 정치가 이외의 많은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 국가와 국민 전체로 돌아가야 할 이익을 횡령하거나 착복하는 일은 정치가가 아닌 사람들의 공범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국의 일반의 의식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은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서 해야 할 일이고, 또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유권자의 국민 수준이 향상되면 정치인들의 태도도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고, 군자형의 인품을 갖는 것이 정치인으로서 성공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서 인식될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공자는 본래 이상주의자였으며, 그의 이상주의와 우리들의 현실 사이에는 항상 먼 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의 이상주의가 우리에게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함에 있어서 귀중한 가르침으로서의 힘을 가졌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국정 최고의 책임자는 군자형의 인품이 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믿는다. 철두철미 완전한 군자에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그에 가까운 경지에 이른다면, 그 개인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 매우 다행한 일이 될 것이다. 다행이 정상의 자리에 앉은 사람이 군자와 같은 인품으로서 정치에 임한다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논어』「위정」편에 공자는 이런 말씀이 보인다. “덕으로써 정치를 하는 것은 북극성은 제자리에 있고 여러 별들이 이를 향하여 떠받드는 것과 같다.
군자에게 요구되는 덕성만 갖추면 최고위의 정치가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경제와 사회, 문화와 교육, 군사와 외교 등 여러 분야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식견이 없이는 국정 전체를 통괄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최고위의 정치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덕성이다. 한 사람이 여러 분야에 걸쳐서 높은 수준의 전문적 지식을 갖기는 어려운 일이므로, 최고위의 정치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을 적소에 배치하는 일이다.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으며, 인사를 적절하게 하기 위해서는 인물을 알아보는 밝은 눈과 파당을 초월하는 넓은 아량 그리고 사정에 흔들리지 않는 공정성 등의 덕성을 갖추어야 한다.
③ 공자의 정치 사상 가운데 정명론이 있었거니와 그의 정명론도 오늘의 우리 정치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명론의 핵심은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말과 “그 직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를 논하지 않는다”는 말 가운데 잘 나타나 있다. 쉽게 말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이름 또는 각자가 맡고 있는 자리에 적합하도록 처신해야 한다는 것이 정명론의 근본 정신이다. 각자의 이름에 적합하도록 처신할 때 이름이 바로 서고, 이름이 바로 설 때 정치도 바르게 된다는 것이 공자의 가르침이다.
우리 나라의 정치 현실을 바라보건대, 이름이 바로 서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치가의 이름이 바로 서자면 그 이름이 가리키는 직책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우리 나라의 정치가들 가운데는 책임지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도 한다. 비슷한 사태는 중앙부서와 지방 단체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나라 일에 관해서 잘못을 하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같은 불상사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므로 같은 잘못이 되풀이하여 일어난다.
모든 직책에는 업무 규정이 있고, 어떤 직책을 맡을 때는 그 업무 규정을 준수하겠다는 약속을 암묵리에 하고 들어간다. 업무에 관련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약속을 위반하는 것에 해당한다. 공인이 공식 석상에서 하는 말은 약속으로서의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직무에 관한 약속을 소홀히 여기는 한국의 공인들은 자신의 말속에 담긴 약속을 소홀히 여긴다. 자신의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다. 고인들이 자신의 말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는 까닭에 일반 국민들은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거짓말 또는 약속 불이행은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번져간다. 특히 거짓말 또는 약속 불이행이 상류 사회에서 일어났을 경우는 그로 인한 불신 풍조는 더욱 빨리 하류 사회로 번져 간다. 현재 우리 사회는 불신 풍조로 가득 차있다. 불신 풍조를 그대로 두고는 나라가 바로 서기 어렵다.
8. 현대 사회와 효
① 사라져 가는 효 사상을 오늘에 되살린다면, 건전한 가족 제도의 재건을 위해서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질서 회복을 위해서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농경 사회와 대가족 제도를 배경으로 삼고 구체화된 옛날의 효도 사상을 상황이 크게 달라진 현대 사회에 그대로 살릴 수는 없을 것이며, 그대로 살려서도 안 될 것이다. 예컨대, 『심청전』에 나타난 바와 같이 자녀의 지나친 희생을 요구하는 효도를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가르치고자 시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무릇 윤리의 본질은 자율에 있으므로, 효도의 윤리도 자율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늙은 세대의 요구를 떠나서, 젊은 세대 스스로 그 길이 옳다고 믿는 효도라야 실천 윤리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다. 다만 오늘의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할 때, 젊은 세대가 자발적으로 효소의 길을 터득하게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므로, 효 사상의 회생을 위한 기성 세대의 교육적 행위가 필수적이다. 효 사상 교육은 인성교육의 일환으로서 베풀어야 하며, 그 첫 번째 임무는 응당 부모의 몫이다.
효 사상 교육의 중요성을 느끼더라도 부모는 자식 앞에서 ‘효’를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앞에 놓고 ‘효도’를 운운하면, 자식은 그것을 자식에 대한 불평쯤으로 들을 것이며, 불평 섞인 잔소리를 하는 부모에 대해서 자식은 연민을 느낄지는 모르나 존경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자식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부모가 자식에 대한 인성교육에서 성공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공자 사상의 궁극 목표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의 경지에 접근하도록 인도함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인’으로 접근하는 첫걸음을 부모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함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판단하였다. ‘인’이란 결국 ‘사람에 대한 넓고 깊은 사랑’을 의미하므로, 어린이가 그 길로 들어서는 첫걸음은 부모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함이 마땅하다고 공자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은 ‘효’의 근본에 해당하며 ‘인’의 정신을 가르치면 ‘효’에 대한 가르침은 자연히 그 안에 포함되게 마련이다.
② 우리가 ‘효’라는 말을 사용하든 안 하든 간에, 효 사상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하는 우리들의 목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 나라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의 은덕에 감사하는 태도를 갖게 한다. ㉯ 우리 나라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이웃을 사랑하고 기성 세대를 존경하도록 유도한다. ㉰ 우리 나라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널리 사랑하고 널리 감사하는 생활 태도를 갖게 한다. 이 세 가지 목표를 차례로 달성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이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교육자의 임무를 지게 되는 기성 세대가 말보다는 실천으로써 인생의 선배다움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자녀들을 대하는 부모들의 태도에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는 대다수의 부모들이 자녀의 인성교육을 등한시하였다. 대다수의 부모들은 어린 자녀를 잘 먹이고 잘 입히는 일에 정성을 쏟았고, 좀 자라면 공부 잘해서 명문 대학에 들어가도록 닦달과 뒷바라지하는 일에 열중하였다. 부모들의 이러한 태도는 자녀들로 하여금 은혜를 모르는 자기중심적 성격 자로 성장하도록 함에 크게 작용하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과보호 속에 자란 사람은 삶에서 만나는 어려움과 고마움을 모르기 쉬우며, 남과의 경쟁에서 이길 것만을 목표로 삼고 자란 사람은 ‘나’만을 아는 이기주위자가 되기 쉽다. 결국 이제까지 우리는 부모로부터 받는 사랑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이를 감사히 여기며 보답할 생각은 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무수히 길러냈다 하여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유교의 효 사상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셈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감사하는 태도부터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도 실천으로 가르치는 편이 빠르다.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는 감사하게 생각해야 마땅한 일들이 전후와 좌우에 무수히 널려 있다. 매일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것부터가 지극히 고마운 일이다. 대자연에 감사할 일이고 농부들에게도 감사할 일이다. 우리는 항상 공기와 물의 혜택을 받고 있으며, 과학과 기술의 혜택을 받고 있다. 너무나 익숙해서 고마움을 잊고 있을 뿐이다.
미래의 강복을 비는 기도보다는 과거와 현재의 은덕에 감사하는 기도가 자녀들을 위한 교육에 도움이 클 것이다. 젊은 부모가 그들의 부모인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하여 보여 주는 감사의 언행은 어린 자녀들에게 효도를 가르치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자연에 감사하고 물자를 아끼는 부모들의 일상 생활도 자녀들의 교육을 위하여 도움이 될 것이다. 감사의 감정은 곧 사랑의 감정으로 이어진다.
‘효’의 근본은 사랑이라고 하였다. 효 사상의 교육을 위해서는 넓은 의미의 ‘사랑하는 마음’을 젊은이들에게 길러 주는 것이 긴요하다. 유아기의 어린이들은 엄마와 아빠를 대상으로 삼고 넓은 의미의 사랑을 경험하기 시작하거니와, 이렇게 시작된 사랑의 마음을 키워 가도록 하라는 것이 공자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오늘의 부모들은 어린 자녀를 과보호함으로써 모처럼 싹트기 시작한 사랑의 마음을 말라죽게 하는 경우가 있다. 과보호는 어린이를 자기 중심적 성격자로 성장하도록 함으로써 그의 자아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부모를 대상으로 삼고 싹트기 시작한 사랑으로 마음을 키운다 함은, 사랑의 대상을 ‘나’와 엄마 아빠 밖으로 넓힌다는 뜻이다. 그 확장의 가장 적합한 첫 번째 대상은 형제 또는 자매다. 그러기에 공자와 그 제자들은 효와 아울러 제, 즉 우애를 강조하였다. 그런데 현대의 젊은 부모는 아들이나 딸 하나만을 낳고 단산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동기간의 우애를 모르고 자라는 어린이들도 있다. 형제나 자매가 없는 어린이들을 위해서는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발견하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조부모가 그 자리를 메울 수도 있고, 이웃집 또래나 어린이 놀이방의 친구가 자리를 메울 수도 있을 것이다.
③ 우리가 사라져 가는 효 사상을 오늘에 되살리는 문제를 거론하는 근본 동기는 오늘의 철저한 개인주의 사회가 인간의 바람직한 참모습이 아니라는 통찰에서 출발하고 있다. 헤르만 헤세(H. Hesse, 1877～1962)가 그의 시 ‘안개 속에서’를 통하여 말했듯이, 현대인 모두가 외톨이로 살고 있다. 모두가 ‘나’는 ‘나’고 ‘너’는 ‘너’다. 아무도 옆 사람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마치 누에고치 속의 번데기가 각자의 성 속에 갇혀서 서로 덜어져 살 듯이, 현대의 인간은 모두가 각각 ‘나’라는 껍질 속에 틀어박혀서 고독한 자유를 감당 못 하며 차가운 삶을 영위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결코 인간의 인간다운 모습이 아니며 보기 좋은 모습은 더욱 아니다.
인간은 아득한 옛날부터 집단을 이루고 살아왔다. 집단에는 자연히 통솔자 보호자의 구실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성원들에 대한 지배자로서 군림하였다. 지배자 또는 지배계층이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유린하는 사례가 많았으니, 그 폐단이 자못 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지배자 또는 지배계층이 개인을 억압할 때는 으레히 집단 우위의 원칙을 앞세웠다. 그러므로 저 지나친 억압에 대한 반발은 자연히 개인주의의 철학을 낳게 하였고, 개인주의 논리를 철저하게 밀고 나감으로써 우리가 얻은 것이 헤세가 노래한 바와 같은 고독한 인간상이다.
‘개인주의’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수 있으며, 개인주의자들 가운데도 외롭지 않게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개인주의 시대의 모습은 헤세의 관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오늘날 인간 사회의 모습을 비추어 볼 때, 사람과 사람의 유대가 몹시 미약하다는 인상을 크게 받는다. 대체로 개개인의 자아의 폭이 매우 협소하므로 ‘나’와 ‘너’가 중복되는 부분의 폭도 따라서 좁은 편이다. 이를테면 이 시대의 개인주의는 소인들의 개인주의다.
필자는 개인주의를 버리고 집단주의로 돌아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소아적 개인주의를 대아적 개인주의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차분히 생각해 보고자 할 따름이다. 만약 공자가 말한 군자처럼 대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하나의 사회를 구성한다면, 비록 그들이 개인주의의 길을 택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사회는 결코 삭막하거나 냉랭하지 않을 것이다.
9. 결론
① ‘효’는 인으로 접근하는 첫걸음으로서의 중요한 의의를 가졌다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상식적으로 말하는 효자 또는 효녀를 군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나라에서는 매년 효행을 표창하는 문화 행사를 보거니와, 이 행사에서 대상을 받은 사람들도 군자와는 대체로 거리가 멀다는 인상이 깊다. 아무리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라도 그의 효심이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만 발휘된다면, 그는 아직 군자의 대열에서는 거리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 먼 곳에까지 미칠 때 비로소 ‘인’의 길로 깊이 진입하게 되는 동시에 ‘군자’의 인품으로 접근하게 된다.
단란한 가족은 인정이 풍부한 인간 사회를 위한 기본 공동체이다. 가족윤리가 무너지면 사회 전체의 윤리가 위협을 받는다. 우리가 ‘효’의 덕목을 중요시하는 까닭도 그것이 가족 윤리의 핵심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이다. 담나 가족제도 내지 가족 윤리의 강조가 가족적 이기주의를 조장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되므로, 우리는 ‘효’가 좁은 의미의 ‘효’에 그치지 않고 더욱 넓은 인간 세계로 뻗어 나가는 ‘인’의 경지로 이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② 공자의 효 사상은 단순히 자식으로 하여금 부모를 위하도록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군자를 닮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여기서 말하는 ‘훌륭한 사람’의 첫째 요건은 ‘사랑의 정’이요, 그 둘째 요건은 ‘열린 마음’이다. ‘사랑의 정’이란 친화의 심성을 말함이요, ‘열린 마음’이란 자아의 폭이 넓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저 하나만을 아는 소인은 효도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다는 주장도 여기에 포함된다. 친화의 정이 두터우면 우선 제 부모와 제 동기를 아끼게 될 것이며, 마음이 열려 있어서 자아의 폭이 넓으면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 먼 곳의 사람들까지도 아끼게 될 것이다.
효 사상과 가족의 화목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가족적 이기주의의 폐단이다. 가족적 이기주의는 우리 나라 전통 사회의 나쁜 유산으로서 아직도 남아 있거니와, 가족제도의 중요성과 ‘효’사상의 고취가 저 나쁜 유산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불러와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효’를 말하면서 ‘인’과 ‘군자’도 함께 이야기하는 까닭이 바로 이 점에 있다.
‘인’과 ‘효’ 그리고 ‘군자’와 ‘덕치’등의 개념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자의 사상에는 주정주의의 색채가 농후하다. 주정주의의 색채가 강한 그의 사상만으로 현대의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유교 사상을 현대에 적합하도록 다시 해석하고 보완하는 일은 앞으로의 과제로서 남아있다. 이 재해석과 보완의 과정에서 유교의 주정주의와 서구의 주지주의를 접목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진지하게 제기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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