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 현재와 미래
■ 유림의 반성과 발전적 역할 ■
이 동 희
계명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1. 논의의 몇가지 전제
‘유교(유학)의 현대적 과제’를 논하려면 세가지 논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유교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둘째, 현대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셋째, ‘과제’는 미래를 전망하고 있으므로 그에 따른 현재의 유교의 현황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문제를 좀 더 부연하면 다음과 같다.
유교(유학이라 해도 좋다)는 어떤 종교인가, 또는 어떤 사상인가? 원래 유교는 중국의 농경사회에서 발달한 대가족제도의 윤리, 즉 ‘가족윤리’이다. 부자관계를 기본축으로 하는 핵가족과 그것을 기반으로 확대되는 가까운 혈연관계에서 친척, 일가, 동족집단 -이런 식으로 혈연의식을 중심으로 모인 혈연공동체, 즉 (대)가족의 윤리 체계이다. 그러므로 유교의 인간상은 이 가족 속에서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을까, 그것을 위해 나의 도덕적 의무는 무엇인가 하는 소위 도덕적 의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가정윤리의 핵심이 바로 ‘효제’(孝悌)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논어■ 첫권에서 “효제는 인을 행하는 그본이다.”라고 한 것이다.
넓은 대륙의 농경사회는 집단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서구의 해양 중심의 환경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조상을 중심으로 가족이 단결하여 노동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삶과 직결되었으므로 너무도 당연하다. 이러한 공동체를 단위로 하면서 그것을 통치하는 고대적 정치 행태가 ‘왕조체제’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민주주의 ‘국가’와는 다른 절대권력 체제, 권력세습 체제, 왕권 천명(天命)의 이념을 그 기본 성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넓은 의미의 국가 의 의미가 동일한 지배체제에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동일한 지역에 산다는 조건이라고 한다면 ‘왕조’ 역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라는 것은 또 자연발생적인 성격이 있다. 그러므로 이 국가에 대한 충성은 왕조체제에서는 왕에의 충성과 표리관계에 있게 된다. 그러므로 가족윤리 효제가 국가윤리로 그대로 확대되어 ‘충’(忠)이 되었다. 그러나 효와 충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즉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충돌이 개재되어 있다. 다만 전근대는 개인의식이 발달하지 않았으므로 충∙효가 일치라고 믿었을 뿐이다.
중국 한(漢) 나라 때 유교가 국가 통치 이데올로기가 됨으로써 왕권은 더욱 강화되고 유교의 충효 윤리는 ‘절대적 윤리’(절대론적 윤리설)가 되었다. 유교가 학교 교육의 기본, 즉 ‘관학’(官學)이 되었고, 뿐만 아니라 과거(시험)의 표준이 되었다. 이는 유교 (경전) 속의 충효의 윤리가 보편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유교 가르침의 최고의 스승인 공자는 ‘성인’(聖人)이 되어 ‘만세의 사표’로 신격화되었고, 유교 경전은 더욱 신성시되어 송대에는 ‘오경’(五經)이라는 성전(聖典; 바이블)이 되었다. 현실적으로는 정치적 지배자인 왕이 경배의 대상이 되었고, 종교적 신앙(절대론적 윤리이므로 종교에 버금간다)의 대상은 공자가 된 것이다. 왕은 왕왕이 공자를 스스로 숭배하는 의식을 지냄으로써 자기를 낮추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현실적으로 왕권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왕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즉 정교분리가 왕권에 의해 ‘정교일치’의 방향으로 갔다. 그 이후로 역사적 유교의 역할은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 하나는 왕조에의 봉사(御用)요, 다른 하나는 왕조에의 비판이다. 그러나 후자는 매우 제한되었다. 이는 절대 왕권 체제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유교의 모든 경전이 성립 당시부터 왕 개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도 한 몫을 하였다. 이러한 점들이 우리가 과거의 유교를 살피는 데 반드시 유의해야 할 점이다.
유교는 보편 사랑인 인을 말하였지만, 역사적으로 왕조체제에 어용되는 과정에서 신분사회를 정당화해 주었다. 유교의 예(禮)가 그것에 이용되었다. 유교는 원래 자연발생적으로 사람들 사이에는 귀천(貴賤)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규정하는 것이 ‘천리(天理)의 절문(節文)’인 예라고 보았다. 예는 구분하고 질서를 지우는 기능, 즉 인륜공동체를 유지하는 수단으로서 자연스럽고 필연적이라고 본 것이다. 이는 서양도 마찬가지며, 오늘날도 각국이 아직도 귀족사회를 가지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유교의 전통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고급문화로서 ‘양반문화’를 가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한편 유교의 사랑은 지나친 가족주의에 몰두해 있는 것이 문제이다. 묵자(墨子)의 겸애(兼愛)나 기독교의 박애(博愛) 처럼 보편 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혈연 사랑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정이지만, 바람직한 공동체는 역시 사랑의 초월이 있어야 가능하다.
둘째 현대라는 시대의 성격 문제이다. 현대는 ‘근대’의 연장이다. 그러므로 영어의 ‘modern'은 ‘근대’라고 새기기도 하고 ‘현대’라고 새기기도 한다. 이는 현대 문명은 근대 문명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또는 ‘현대의 후기’를 특별히 강조하여 ‘포스트 모던’(post-modern)이라고도 한다. 이것도 역시 근대의 연장, 현대의 연장으로서 오늘날 인류문명을 보고 있으므로 넓게 보면 ‘현대’와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근대 정신은 무엇이며 근대 문명의 특징은 무엇인가? 근대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의 미증유의 일대 사건으로 인류사에서 불의 사용, 농업혁명에 이어 세 번째 혁명적 변화를 초래한 시대이다. ‘과학혁명’을 계기로 시작된 근대사회는 생산방식에서 수공업에서 공장제 공업으로 전환되고(산업혁명), 이에 따라 사회조직, 법 체계,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체제 등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도 바뀌어 개인주의가 모든 삶의 기본이 되었고, 사회적으로는 민주시민 의식, 국제적으로는 국민의식(민족국가의식)이 형성되었다. 생활태도도 과학을 신뢰하는 합리적 정신이 숭상되었고, 개인과 개인의 관계도 법에 의한 계약, 산업사회 유지를 위한 각종 이익단체(제2차 집단)가 생겨나 이 관계가 사회생활의 주된 무대를 이루는 새로운 계약사회를 탄생시켰다. 따라서 윤리도 전통사회의 간단한 윤리원칙이나 규범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하여 다양한 이익집단의 조정은 물론 복잡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고도의 관리사회로 접어들었고, 따라서 윤리 문제도 개인 윤리 보다 여러 사회적 문제를 조정하고 해결하는 데 필요한 사회윤리가 발달하게 되었다. 이 근대 문명의 연장이 현대문명이며,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우리 삶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근현대 사회에서 전통윤리는 중요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삶의 방식과 사회조직이 달라졌으므로 현대생활에 맞지 않는 전통윤리가 많아지게 되었다. 물론 윤리의 원칙은 적용이 되지만, 구체적인 사회적 갈등에 있어서는 그 원칙이 아무런 해답을 제시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이 사회적 갈등이란 것이 이익다툼, 계급간의 갈등, 나아가 인권과 생존권 등에 이르면 더욱 심각해질 수 밖에 없다. 동양의 여러 유교 문화권의 나라들은 이러한 근대 시민사회의 ‘公共 윤리’를 생각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전통과 현대의 갈등은 그만큼 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동양 유교 문화권에서는 전근대의 유교와 같은 윤리를 현대와 연관시킬 때는 이 점을 먼저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세 번째 유교의 현재와 미래, 유교의 현대적 과제를 논하려면 역시 현재와 미래에 대한 문명사적 조망이 전제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두가지 관점에서 논해야 한다. 하나는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인류 문명사에 있어서 서구 현대 문명은 몇가지 극복해야 될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어떤 문명이든지 다 그렇다). 첫 번째 문제. 오늘날 산업화, 공업화를 주축으로 한 근대 산업사회 형성은 어떤 나라이든지 피할 수 없는 국제적 삶의 모델이 이미 되었다. 소련 연방 붕괴 이후 더욱 자본주의 체제가 보편화된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다국적 기업활동이 강화되면서 금융 자본의 세계화 추세가 가속되고 있다. 이는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이념적으로는 다원주의 가치체계가 이미 보편화된 것이다. 이러한 국제 경제환경에서는 한 국가의 생존이 매우 절박할 수 밖에 없다. 전통문화는 전승되는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고 우리 삶의 환경이다. 이것은 주로 유형문화재일 경우 더욱 보존의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의식의 경우, 잘못된 의식은 오늘날의 생존환경에서 우리들로 하여금 살아가기 어렵게 만든다.
그 다음 두 번째 문제. 서구에서 시작된 근대문명은 오늘날 현대문명에 와서는 근대 초기에서 예견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폐단을 낳고 있다. 가장 단적인 것이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이다. 하나 뿐인 지구 생태계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다. 이것은 물론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삼은 서양 근대 자연관에서 초래된 것이다. 이 외에도 현대문명은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다. 남북 문제(부국과 빈국의 격차 문제), 인구 문제, 핵 문제, 테러 문제, 마약 문제, 종교 분쟁, 전쟁과 인종 문제, 에이즈 질병 문제 등 국제적으로 해결해야 될 문제가 계속 대두되고 있다. 심지어 오늘날의 과학기술(내지 산업기술)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이 관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으며, 그로 인한 인간성 상실과 인간소외 문제는 심각한 지경에 와 있다.
이와 같은 문제는 어떤 문명이든지 안고 있는 문제이지만, 앞에서 언급한 환경오염, 생태문제는 전지구적인 문제로 인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그것은 잘못된 서양 근대 자연관에서 연유하므로 동양 전통 사상에서 볼 때 이 환경과 생태문제에 대해 동양 문명의 장점을 살려 동서 문명의 융합을 이루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오늘날 서구에서 탈근대(脫近代)를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탈근대는 동양의 전근대 사상과 근접되는 점이 많다. 그러나 동양의 그것을 그대로 가져온다고 하여 오늘날 후기 산업사회의 모든 문제와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성’을 좀 더 충실히 실현하면서 탈근대의 과제도 아울러 실현해야 될 이중의 짐을 지고 있다. 전통의 문제도 이러한 맥락에서 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2. 현재 한국사회 속의 유교
어느 나라든지 근대화에 따라 외형적 삶의 모습은 급변하지만 관습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사회에는 유교적 생활 관습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이것은 조선조라는 역사 속에서 형성된 한국적 문화풍토라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는 유교적 이념이 잘 실현된 것도 있고, 한국 풍토에 맞게 토착화된 것, 그러나 유교 이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문화도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 산업사회와 잘 맞지 않는 점도 있어 이러한 유교 관습은 오히려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현재 한국의 유교 상황은 종교학자, 사회학자, 철학자의 연구 결과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학술적인 연구는 아니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직접 체험한 바를 수필 형식으로 낸 출판물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부정적인 모습, 즉 문화비교적 관점에서 나온 비판을 일별할 필요도 있다.
종교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다수가 자신의 종교 신앙과 관계 없이 일상적인 의식과 행위에 있어서는 유교적 생활관습에 많이 젖어 있다고 한다. 1995년 통계청의 조사(<`95주택인구총조사보고서>)에 의하면 불교 약 23%, 개신교 및 천주교 약 27%, 유교 0.4%, 기타 0.9%의 분포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이제는 거의 일반화된 공론이다. 이는 종교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기준으로 낸 통계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속감 보다 종교적인 행위양식이나 삶의 현장에서 비롯되는 특정한 관념을 기준으로 조사하면 통계수치가 달라진다. 역시 한국갤럽에서 1984년과 1989년, 그리고 1998년 세 차례에 걸쳐 펴낸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 중 1984년의 경우 ‘자기확인’ 방법에 의한 유교인은 0.5% 뿐이었으나, 成員等級조사에 의하면 조사대상 전체의 91.7 %가 유교의 기본등급 성원이고, 그 중에 불교인의 100 %, 천주교인의 90 %, 개신교인의 76.4 %가 유교의 기본등급 성원으로 나타나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성원등급조사란 생활상의 종교적 관행을 유형별로 나눈 것이다. 1989년도의 통계를 보면 불교인 72%, 개신교 63%, 천주교 61%, 무종교 70%가 유교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1998년에 낸 자료에 의하면 약간 변화가 있어서 한국인 가운데 실천적 유교인은 91%, 실천적 불교인은 49%, 실천적 기독교인은 36%로 나타났다. 이런 통계가 나온 것은 유교나 무속은 제도종교에의 귀속감 보다 가치관이나 생활관습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통계에서 유교가 조금 줄어들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는 조사 방법, 즉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앞에서 말한 1998년 한국갤럽 조사는 유교가 91%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이것을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종교성향이 유교와 제도종교는 겹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현재 한국 사회에서 유교는 종교 아닌 종교로서 즉 생활윤리로서 제도종교와 공존하면서 기초적인 의식과 생활관습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유교가 가정윤리, 현세적 삶의 지표가 아직도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기층문화로서의 무속신앙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무속신앙은 불교와 공존하는 비율이 클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독교인이라도 유교적 의식과 관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학자는 산업화에 따른 사회변동에 대해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특히 한국과 같이 산업화로 인한 급격한 사회변동과 의식 변화는 좋은 연구대상이 된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유교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참고가 된다. 그들의 연구 중 두가지가 참고가 된다. 차인석은 한국의 문화적 상황을 진단하기를 한국의 자본주의의 원동력은 서구 처럼 건전한 청교도 윤리가 아니고, ‘쾌락적 이기주의’라 단정하고, 그 토양은 ‘무속적 기복신앙’이라고 분석하였다. 이는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산업화 내지 공업화는 했을 뿐 정신은 건전한 자본주의 윤리 내지 근대적 합리주의 정신은 성숙되지 못하였다고 본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앞에서 말한 바 근현대의 ‘이성주의’ 사고방식을 지양하고 새로운 문명의 형식을 위해 탈근대적 사고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리하여 탈근대성은 동양의 전근대의 세계관이나 사고방식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보고 있다.
한편 철학자, 사회윤리학자의 의견을 한번 들어보자. 신옥희는 매우 강한 어조로 조선조 유교의 병폐를 지적하였다. 물론 유교의 본질적 이념만 가지고 보면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자취와 본질은 실제로 분명히 구분되지 않고 서로 섞인다고 보아야 한다. 역사적 흔적은 이미지를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음 네가지를 특성이면서 한계로 지적하였다.
첫째, 유교는 비교적 합리주의적인 종교(사상)이나, 그 합리성이 도덕적, 정치적 영역에 한정되어 이성의 사고 활동이 윤리적 실천 활동에 봉사하는 수단으로서만 의의를 가지고 있었다. 유교가 동양 종교들 중에서 가장 역사 의식이 투철하고 변화와 발전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우주관, 역사관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윤리에 대한 이성의 종속적 관계 때문에 주자학 이후 근세 유교에서는 특히 자기 초월을 하지 못하고 교조주의에 빠지는 한계를 노정하게 된 것이다.
둘째, 유교의 세계관은 자연법칙과 도덕법칙을 동일시하는 자연법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범신론적이고 유기체주의적이나,부정에 의한 자기 반성의 결핍으로 인간 주체의식이 미약하다. 이러한 세계관에 바탕을 둔 유교 윤리는 현세주의 경향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세계관에서는 서구적인 인간 주체 의식은 유교의 현세주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훨씬 미약하게 된다.
셋째, 유교 윤리는 본체론적이어서 인간을 매우 도덕적으로 보지만, 그 때문에 현실적 인간의 모습을 놓치고, 공동체와의 조화를 강조하지만, 자율성이 저해된다. 유교윤리에서는 인간의 본성은 네가지 덕이 선험적으로 갖추어져 있어 착하고(선하고), 또 따라야 할 규범도 이미 주어져 있다고 봄으로써 유교의 윤리에서는 개체의 특수성이 사상되어 있다. 따라서 유교의 본체론적 인성론은 인간의 자연적 성향, 즉 감정, 욕망에 대해서 매우 억압적이다. 지나친 도덕적 억압은 오히려 현실적 인간 존재를 놓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이중인격에 빠지거나, 체면을 차리다가 허례허식에 빠지거나, 또는 심리적 갈등을 겪기도 한다. 유교는 이러한 현실적 인간의 갈등을 해결할 방법에 대해서는 대안을 별로 가지고 있지 않다.
넷째, 유교의 정치이념은 가족주의적이어서 인륜 공동체를 지향하지만, 통치의 무규범성이 나타날 수 있다. 사회의 구성단위가 가족인 유교의 공동체에 있어서는 정치 역시 가족질서의 연장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법률적, 제도적 장치가 소홀하고, 또 제도나 법의 운영에 있어서도 경직성, 보수성을 띌 수 있다. 그럴 경우 가장 도덕적인 유교 정권이 가장 부패한 체제가 될 수 있을 만큼 무규범성과 준법정신의 결여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면서 신옥희는 유교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유교는 동아시아의 오래된 종교, 도덕형이상학으로서 오늘날도 그곳에서 사상적 영감이나 생활의 지혜를 이끌어 낼 만한 고유의 세계관(자연관 또는 우주관)과 그것과 연관된 비교적 합리적인 도덕이론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김태길은 전통윤리와 서구의 시민윤리를 비교하여 앞으로의 한국에서의 바람직한 윤리는 시민윤리라고 전제하고, 이 시민윤리와 반대되는 요소가 전통윤리에는 많다고 지적하였다. 수직적 윤리, 가부장적 윤리, 남녀차별 윤리, 보편적 윤리가 아닌 자기와의 친소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관계 중심의 윤리, 합리적 이성 보다 인간의 情에 의지하는 혈연 중심의 윤리 등 전근대의 부적합한 윤리 특성을 거론하였다. 근대 이후 새로운 사회는 개인주의 사회, 사회계약적 사회, 민주 시민사회가 되었으므로 자연히 혈연중심의 과거 전근대의 개인 중심의 윤리덕목으로는 적응하지 못할 것이 많은 것이다. 그러면서 사회윤리학자는 서구 현대 시민윤리는 지나친 개인주의나 이성중심의 매마른 윤리이므로 동양의 원론적인 개인 덕목 중심의 윤리이지만 따뜻한 인간의 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이 동양 윤리와 상호 융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도 역시 근대정신의 추구와 탈근대(탈현대)의 지향이라는 이중적 과제가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윤리적 상황, 특히 사회적 병폐에 대해 말한다면 여기에도 역시 전통과 현대의 갈등이 나타난다. 현재 사회적 병폐는 전근대의 사고방식과 관습에 의한 것인데, 주로 유교윤리와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문화는 오랜 역사성과 풍토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문화 전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세계화시대의 생존이라는 현대와 미래의 요구에 얼마나 적합한 것인가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이때 전통윤리에는 오늘날 부적합한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외국인의 눈에 비친 것은 다소 표층적이고 일면적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이 많다. 근자 가장 여론을 들끓게 했던 것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다. 표현이 너무 극단적으로 간 책이라 예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 문화와 우리 문화를 비교하면서 쉽게 쓴 책이 김용운의 ■무너지는 한국, 추락하는 한국인■이다. 그외 ■관료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로 선다■, ■한국 엘리트들은 왜 교도소 담장 위를 걷나?■, ■아! 대한민국: 병든 조국에게 던지는 젊은 지식인의 통렬한 자아 비판서■ 등이 있다. ■아! 대한민국■은 기자의 눈으로 본 우리나라 현재의 사회제도와 우리의 삶의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선진 외국의 예와 비교하여 논하고 있는 책인데, 저자의 취향에 따라 특히 여성차별과 장애인 차별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외의 책은 제목만 보면 그 내용을 곧 알수 있는 책들이다.
이밖에 외국인이 쓴 책은 ■맞아죽을 각오로 쓴 한국, 한국인 비판■, ■한국인이여 상놈이 되라■등을 들 수 있다. ■맞아죽을...■은 저자가 오래동안 한국에 살면서 체험한 한국인의 고쳐야 할 점을 적어놓은 것이고, ■한국인이여...■는 교포 3세 중국인인데, 한국인이 중국 보다 잘 살지만 인간적인 면에서 실망스럽다는 점을 들어 그 원인을 ‘양반의식’에서 들고 있다. 그 제목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인다. 즉 진정한 양반의 휴머니즘 정신은 어디로 가고 자본주의 시대에서 양반문화의 나쁜 점, 졸부 근성, 권위의식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한 민족의 사회적 성격은 단점과 장점이 섞여 있다. 그러므로 일면으로만 볼 수 없다. 양반의식, 즉 선비의식이라는 것도 양면이 공존하고 있다. 양반문화의 장점은 역시 높은 윤리의식과 문화의식이다. 단점은 권위의식, 양민 착취 행태, 권력지향성, 허례허식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책 ■한국 엘리트들은....■의 책명이 말해주는 바와 같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양반의식이 잘 살려지지 못하고, 결국 범죄의 늪으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 도덕성만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제도, 정치문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물론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전통과 현대의 문제에서 유교윤리 내지 유교적 생활 관습이 현재의 한국인의 생활과 문화에 미치는 영향이 심대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유교의 현대적 과제는 우선 유교문화가 남긴 영향 중 부정적인 면을 과감히 청산하는 일이 급선무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는 문명사적 관점에서 동양의 전통문화 중 우리가 가꾸고 보존해야 할 것은 그 의미를 명확히 하여 현대 시민윤리 속에서도 병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전통 전부를 부정하는 일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병을 고치기 위해 원기를 손상시켜 생명을 끊는 것과 같으므로 그 정도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유교문화의 장점으로 무엇을 살려야 할 것인가?
3. 유교의 과제와 유교인의 역할
유교인의 과제를 말할 때 과연 누구를 유교인이라 보는가 하는 문제가 우선 해결되어야 한다. 앞의 종교통계에서 본 바와 같이 넓게 보면 전국민이 다 유교인인 셈이다. 물론 좁게 보면 유교인은 종교통계에서 본 바와 같이 0.4% (18만 명, 혹은 0.6% 27만명) 정도가 된다. 주로 성균관과 지방 향교에 관여하는 분들, 여기에 문중회를 운영하는 양반후예들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무종교 중에도 유교적 사고와 행위(예를 들면 제사, 성묘, 문중회 참석 등)를 하는 사람들이 다수 있다고 보면 위 숫자 보다 다소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유교를 자각하고 유교적 종교의례를 하고 유교적 이념을 갖고 생활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기성 종교집단과 달리 유교는 생활윤리, 인륜관계의 가르침이므로 ‘가족윤리’ 외에 특이한 성격을 지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약하면 유교윤리의 현대적 역기능은 주로 이 가족윤리가 왜곡된 ‘가족이기주의’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현재 한국인의 생활 태도에서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유교윤리나 관습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다시 말하여 혈연의식이 필요 이상으로 확대되어 사회윤리를 해칠 정도로 가족이기주의가 팽배한다고 할 때, 이는 소수의 유교인만의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의식을 가진 국민 전체의 문제, 즉 현재 한국인의 사회윤리 문제가 된다. 그러나 필자는 극소수라도 유교인으로 자처하는 사람(유교기관의 지도자들, 혹은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자 등)이 혹 있다면 역시 그들이 다른 종교 교역자 처럼 의식적으로 유교윤리 및 문화를 현대와 연관시켜 갱신해 주기를 바란다.
이러한 유교혁신의 문제는 거슬러 올라가면 성호(星湖) 이익(李瀷),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등 실학자들에서부터 시작하여 한말의 백암(白岩) 박은식(朴殷植),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같은 훌륭한 유학자들에 의해서도 일찍이 제기되었다. 그때 보다 국가 생존의 어려움이 더 심하고, 과학의 발달 등 시대상황이 더욱 급변한 이때에 있어서 유교지도자들의 각성과 노력이 배가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몇가지 유교와 유교인이 하여야 할 과제를 언급해 본다.
첫째, 유교의 인은 보편사랑이지만, 역사적으로 가족이기주의, 혈연주의에 묶여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였다. 묵자의 겸애, 기독교의 박애 처럼 사랑의 초월도 효와 함께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임금의 인(仁)의 사랑이 ‘애민’(愛民) 사상으로 발전해가듯 민주시민은 누구나 남을 먼저 생각하고,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공복’(公僕) 정신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둘째, 세계화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기후와 풍토적 조건, 남북분단의 상황 등을 삶의 전제 조건으로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장례문화(묘지제도) 등도 유교인이 앞장서서 개선해야 할 것이다.
셋째,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국가이나 그동안 유교 문화에 짓눌려 해외로 뻗아나가는 기상이 부족하였다. 서양문화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 중요원인이 서양의 해양문화에 있었다는 것,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한 것도 이 해양성을 잘 살렸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장보고의 해양활동 정신 등을 선양해야 한다.
넷째, 유교인은 이제 중국문화에 대해 사대주의적 발상을 버리고 현재의 우리의 산업기술 등 경제선진국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이 위에서 민족문화를 주체적으로 창조적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오늘날 중국이 유교와 공자를 높인다 해도 우리가 거기에 편승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그들의 목적이 따로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조선조 유교문화의 전통이 있으므로 이것으로 충분하다. 앞으로 문화적 사대 문제는 한-미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은 유교인이 앞장 서서 신라의 화랑 정신, 김유신의 애국심, 신라인의 국토방위 의식 등을 국가의 발전과 번영이라는 관점에서 강조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오늘날 민주시민사회는 시민의 각성과 자발적 참여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부가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다. 우리나라와 같이 전국민이 혈연집단으로 얽혀 한 집 건너 사돈의 팔촌이 되는 사회구조에서는 사회정의 실현이 매우 어렵다. 이 난관을 극복하려면 유교인도 적극적으로 ‘시민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유교는 어용화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어 권력 앞에 매우 나약하고 의타적이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귀족 유교였던 유교가 이제는 민중이나 시민의 수준으로 내려가서 그들과 같이 호흡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섯째, 유교인은 유교다운 교리와 이념이 무엇인지 그것을 확실히 하여 그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유교의 핵심으로 가장 많이 드는 것이 효도와 우애[孝悌]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박애’의 사회윤리와 결합하지 않으면 생명이 길 수 없다. 즉 이것을 통하여 건전한 가정 지키기 운동, 결손 가정의 아이들에 대한 보호, 불평등 대우를 받아 온 여성에 대한 배려, 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 등으로 사랑이 확대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좋은 전통 중에 또 청백리 정신이 있다. 이것은 오늘날 군림하는 공무원의 태도가 아니라 공복의 대민 서비스 정신이나, 뇌물을 받지 않는 청백리 정신으로 발휘되어야 한다. 국가 제도도 공무원의 처우를 현실화하여 분위기를 조성해야 함은 물론이다.
요약하면 유교의 정체성은 보편사랑으로서의 인의 발휘, 건전한 가정 만들기(조상숭배 포함), 청백리 정신의 애민사상 실천, 그리고 양반문화와 같은 높은 문화의식의 발휘, 실학자들이 보여준 (민족)주체의식의 고취 등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미래 세계화 시대에 있어서 민족의 생존이라는 관점을 결코 도외시하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유교인은 한편으로는 근대 합리주의 정신과도 통하는 ■대학■(大學)에서 말한 ‘격물치지’(格物致知) 정신을 잘 발휘하여 누구 못지 않는 넓은 지식과 안목을 가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유교의 인의 사랑의 정신과 유교문화권의 높은 도덕적 문화 의식을 가지고 세계화 속의 민족 주체성 확립, 세계문화 속의 민족문화의 창조라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4. 시급하고 구체적인 과제
첫째, 오늘날 유교 담지자의 문제. 각종 통계에서 보듯이 유교인으로 자처할 만한 종교적 행위를 하는 유교인은 얼마 되지 않으나, 다른 종교인도 한국인으로서의 유교적인 종교행위(생활윤리)를 일부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앞의 통계를 통하여 알았다. 이것은 오늘날 유교를 종교로 보느냐, 또 유교 종교의 주체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의 해답이 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유교의 발전 방향과도 연관된다. 결국 유교는 국민 전체가 유교인이 될 수도 있고, 극소수의 유교기관 주변의 인사(유림이라 해두자)가 주체가 될 수도 있으며, 아니면 유교 경전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유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온 국민이 유교인이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의 강한 배타성으로 보아 하나의 통계상, 이론상 그렇다는 데 불과하다. 통계는 허점이 있으므로 위의 통계를 우리는 잘 해석해야 한다. 이러한 것은 모두 유교의 정체성(Idetity) 문제와 관련된다.
또 유교인은 예배 장소가 따로 없고, 가족의 모임과 조상 숭배의 행사가 행해지는 가정이 일종의 교회인 셈인데(가정을 확대하면 국가가 된다), 이 윤리는 다른 문화권에도 있는 보편적인 것이어서 유교만의 특징으로 보기도 어렵다. 또 도시화, 개인화, 여성의 사회진출로 인하여 가족 형태가 변하고 있어 유교의 이러한 특성이 없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유림 이외에 일반인에서 유교인을 찾는다면 오히려 무종교인(약 40%, 불교 포함하면 70%) 중 사회적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생각하고 있는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그들이라 할 수 있고, 이들을 재가유교인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원래 유교는 귀족문화로서 교양주의, 문화주의를 중요 특징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이 자기확인을 그렇게 할 것인지는 미지수이고, 그렇게 만드는 것이 성공할지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음에 이야기할 성리학이■이것은 유교의 교리이기도 하고 유교의 신학적 전개이기도 한 것으로■일종의 ‘이성종교’(형이상학적 神觀)의 성격을 가진 종교체계이기 때문에 단순한 믿음 이상의 고도의 지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유림에게 주어진 하나의 어려운 과제이다.
둘째, 성리학이 지성인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 문제. 한국의 지성인들에게 고급문화로서 성리학의 우주 종교적 감정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가능하다. 기성종교와는 달리 우주론적 형이상학의 배경을 가진 우주론이 중요한 교리가 된다. 아인슈타인의 ‘우주종교적 감정’(cosmic religious feeling)이나, 화이트헤드(A.N.Whitehead)의 과정사상에서 말하는 신의 양극성(dipolarity)의 의미(초월성-내재성), 이를 응용한 기독교의 과정신학(process theology) 등이 그러한 것이다. 불교의 교리 중 화엄사상이나 연기론, 유식학 등도 이러한 종류에 들어간다. 이것은 기성종교의 도그마를 해체한 일종의 이성종교로서 재가활동의 종교, 내면 성찰의 종교가 될 수 있다(그러므로 과정신학은 불교와의 대화를 인정하고 있다). 성리학의 태극론, 음양오행에 의한 만물 생성의 설명, 인간의 우주에 있어서의 위치, 만물일체의 인의 체득, 거경궁리의 수행법, 초월성과 현실성의 조화의 체험(極高明-道中庸) 등은 우주종교론의 중요한 교리가 될 수 있다.
화이트헤드의 과정사상이 인간-만물 일체의 유기체적 설명에 치우친 데 대하여 성리학은 그 위에서 다시 인간의 ‘도덕적 사명’을 말한 것에서 특징이 있고, 불교 유식론과 연기론 및 화엄학은 존재분석이 뛰어나지만 지나치게 인간 바깥의 물질계를 사상하고 유심(唯心)으로 회귀해 버리는 것에 비해 성리학은 현실성과 초월성을 동시 추구하는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고도의 종교적 통찰과 철학적 논리, 그리고 윤리적 이성을 필요로 하므로 유교 자각인이라고 해서 다 이 경지에 오를 수는 없다. 그러나 유교(성리학)는 이들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이것은 유교를 부활시키는 매우 중요한 작업으로서 ‘우주종교화 운동’(Reconstruction of Confucianism as Cosmological Religion)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중국 근대의 선각자들■소위 현대 신유가■이 서구 문화에 대응하여 내놓은 중국 사상의 재해석(현대적 해석; 동서사상 비교) 작업과 같은 것이다.
셋째, 제사의 간소화 문제. 가정윤리로서 명절에 모여 조상을 숭배하고 성묘나 제사의식을 행하는 다수의 일반 유교인에게 유교는 무엇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가? 하나의 생활관습으로서 시대의 변화 물결에 따라 자율적으로 의례가 간소화되겠지만, 유림들이 지침을 제시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유교의 예는 관혼상제가 대표적인데, 장례와 결혼은 이미 현대화(?)하여 유교가 간섭할 것도 없게 되었다. 관례와 제사만 남았는데, 관례는 지방자치단체나 학교의 협조 아래 시범을 보이는 것도 일종의 유교전도 사업으로 괜찮을 것 같다. 제사는 현재 거의 각 가정이나 문중에 맡겨져 있는데, 여성들의 손이 부족하여 옛날 처럼 할 수가 없는 것이 큰 문제이다. 제사음식 배달이라는 기업에 의뢰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젊은 사람들도 기꺼이 참여할 수 있고, 여성들의 가사 부담도 줄여주고, 특히 핵가족이나 단독세대에서도 손쉽게 숭배의례가 되도록 간편한 제사식단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불교인은 일본인 처럼 거실에 불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거나 절에 의뢰한다고 하는데 참고해도 될 것이다.
원래 제사는 옛날 양반집에서 종과 식모 등 보조 인력이 많을 때 하던 일로서 손이 많이 가는 일이어서 오늘날 핵 가족에서는 손이 부족해서 사실 어렵다. 원래 제사 의미를 살펴보면, 가족이 모이면 결국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데, 이것을 먼저 조상에게 올리는 것이 제사의 취지이다. 물론 산 사람 식사와 제사 음식은 차이가 있고, 오늘날 반조리 식품도 많고 외식도 있어서 여성이 제사 음식 자체를 상대적으로 번거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이 모여 음식을 만드는 것 자체가 결국 후손인 산 사람이 즐기기 위한 것이고 자손의 화합도 보여주는 의미가 있는 것인데, 이 점을 여성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만큼 근대 도시의 생활 패턴이 바뀌었고, 또 여성의 의식이 변했기 때문에 간소화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넷째, 묘지 문제. 유교는 대가족 종교이며, 국가 종교이기도 하다. 치국이 유교의 종교적 행위이다. 교권과 왕권이 일치한 이후로 유교는 그렇게 지내 왔다. 이런 역사가 아니더라도 유교는 현실 종교로서 국가 생존과 발전을 종교 행위의 목표로 삼아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 관점에서 유교는 장묘제도의 개선에 앞장서야 하고, 최근의 ‘수목장’(樹木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신도시 건설에 반드시 납골당(국립장묘공원)을 짓도록 유림이 정부에 건의해야 한다(자립형 사립 고등학교와 노인병원이 함께 들어서면 더욱 좋다). 이 문제는 국가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이 문제 뿐만 아니라 국가가 제도적으로 앞장서서 해결할 문제가 많다). 유교는 종교행위가 국가단위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유교 종교의 큰 특징인데, 이 점을 유교인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즉 유교의 확산은 유교 이념이 정치화, 정책화를 통하여 나타나야 유교가 살아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사회윤리, 그에 기반을 둔 사회적 활동, 그리고 오늘날 포스트모던 시대는 더욱 고도의 정책적(정치적) 관리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한국형 유교경전 편찬 문제. 오늘날 동양고전에 대한 번역본이 많이 나와서 단지 유교만을 취사선택하기가 어색한 점도 있으나, 유교의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유교의 경전(성리학 저술 포함)에서 중화주의를 배제한 보편성 있는 내용을 한국에서 편찬하여 유교를 종교로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에게 낭독용으로 제공하는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한글 유교 바이블의 성격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최근 자국문화 대외 선전을 위하여 공자 재발견을 외치고 유장(儒藏)을 편찬한다고 하지만, 한국의 대다수 보통 사람들에게 한문투로 무엇을 읽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필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종교는 자연발생적이어야 하므로 이러한 인위적 노력이 성공할지는 미지수이다. 혹 창의적인 노력이 있다 하더라도 옛것은 진부한 것이 많으므로 내용 검토가 면밀히 이루어져야 한다.
여섯째, 예절교육 문제. 유교가 젊은이와 보통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앞의 관례(혹은 전통혼례)와 더불어 유교식 ‘전통예절’이 있다. 물론 이는 한국의 전통과 관련된 예절이므로 ‘유교예절’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는 전통문화의 전달이므로 각종 세시풍속과 더불어 한국인의 정체성 교육에도 유효하다. 국제화 시대에 문화의 특수성 보호라는 면에서도 의의가 있다. 그런데 각종 유형의 문화유산은 산업디자인에도 유효하게 활용되므로 관심을 많이 가지나 무형의 전통예절은 그렇지 못하다. 그것은 유교적 예절이 다 시대에 맞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절히 변용하는 것도 필요하고, 세계화 시대에 세계 각 문화권의 예절(그 배경의 도덕감정이나 미적 감각 등도 같이)과 함께 가르칠 필요가 있다. 전래의 한문 예절 교과서를 활용한 인성교육도 저학년에서는 괜찮을 것이다. 기업체에서 신입사원 채용시 한자실력을 본다 하고, 한자검정고사도 있고, 중국이라는 한자 문화권도 있어서 학생들이 관심이 많다. 다만 그 내용이 문제인데, 현대와 약간 맞지 않더라도 학생들이 학교에서 현대 학문을 많이 익히므로 비판력이 있어 외골수로 빠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소년기의 선입관은 평생 영향을 미치므로 신중히 내용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현재 유교 제도권에서는 성균관을 비롯, 각 향교에서 이를 행하고 있고, 공적 지원도 받고 있는데, 이것은 유교의 대민사업으로서 의의가 있다. 즉 ‘윤리교육’을 통한 유교의 종교활동인 셈이다. 이를 통하여 청소년의 심성을 도야하는 ‘인성교육’(인격교육)의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여기에 장소 문제가 중요한데, 요즈음 깨끗한 ‘유림회관’이 들어서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유교를 상징할 수 있는 건축 양식을 접목시키면 더 좋을 것이다. 교회나 성당은 누구나 경건성을 느낄 수 있도록 아름다운 건축물인데, 유교의 기존 문화재 건물은 그렇지 못하다. 획기적 개선이 필요하다. 종교는 장소가 매우 중요하다. 유교의 속성상 이 ‘윤리교육’ 분야가 그래도 제일 적합할 것 같다. 유도회의 사업도 여기에 열정을 쏟고 있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문제는 현대문명의 대중사회, 상업사회가 윤리를 계속 무력화시키고 있는 점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교식 ‘도덕 재무장 운동’(MRA; Moral Rearmament Movement)이라고 할 수 있다.
일곱째, 인권과 여성의 문제. 수녀로서 종교학적으로 유교를 연구하고 있는 김승혜(서강대 종교학과)는 유교의 과제로 ‘유교와 생태문제’, ‘유교와 인권’, ‘유교와 여성’, ‘유교와 타종교의 대화’ 등 4개의 과제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교의 주체는 누구인지’ 계속 묻고 있다. 그는 유교의 담지자는 애매하다고 하면서, 유림은 현대화되어 있지 않고, 유교경전 공부하는 학자는 실천력과 현실적 접합력이 떨어지고, 전통적인 유교 관습을 이어가는 사람은 종교성이 희박하다고 말하였다. 생태문제는 성리학의 유기체적 자연관이 기여할 점이 없잖아 있다. 인권과 여성 문제(Feminism)는 유교가 양보하고 반성하면서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할 것이다. 타 종교와의 대화는 오히려 배타성이 강한 기독교에 해당되는 말이고, 한국의 경우 기독교의 일정한 역할과 기여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종교 상황에서 큰 싸움이 없는 것은 불교의 범신론적 유화성, 유교의 생활윤리로서의 현세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과거 예적 질서관과 신분제도 때문에 유교는 법률적, 사회적 의미(철학적 의미가 아니다)의 인권에 대해 할 말이 없다. 또한 여성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적 성 평등에 대해 유교는 과거에 생각해 본 적이 없다(다른 종교나 문화권■기독교, 이슬람교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여성인력 활용과 국가산업발전,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위기 등은 유교가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다.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구체적 대안이 없다는 것이고, 다만 원칙과 방향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여덟째, 마지막으로 유교의 재정 문제. 기독교 경우 세계적인 큰 규모의 교회에 한국 교회가 5개나 들어 있다고 한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같은 곳의 주일 예배시 들어오는 헌금은 수천만원이 되고, 대단위의 주일 예배 광경은 외국인의 관광상품이 되기도 한다. 한국 기독교는 미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 근대 한국의 개화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범신론적 종교의식이나 유기체적 자연관에 유신론적 신관이 크게 보완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지나친 물량주의에 靈性이 떨어지고, 유교적 관행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유교적 연고주의에 의해 교회 활동을 하려는 것이 문제이다. 또 지금은 과학의 시대이고 종교의 시대가 아닌데도 기성 종교의 도그마에 지나치게 빠져 이성과 현실성을 잃어버리는 대중이 많다는 것이 문제이다. 언젠가 국제질서가 변하여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쇠퇴하고 대중에게 믿을 곳이 없다고 가정하면 전통의 유교를 되살려 미래에 보완하는 방법도 생각해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재정이 확보되어야 한다. 유교의 하부 구조는 향교도 있지만, 각 문중과 서원이 또한 있다. 문중 재산을 개인이 관리하지 못하게 하고 유교종단(성균관)에서 중앙 관리해야 효과가 있다.
근래 어느 문중에서는 문중 재산에 대한 국가 보상비를 받아 남자 구성원들에게 나누어 주다가 여성(딸) 구성원들에게 소송 당한 이상한 일이 벌어진 일이 있는데, 속 사정은 잘 알 수 없지만, 유교가 이래서는 아무런 발전이 없다. 유교가 가족이기주의의 원흉으로 지탄 받고 있는데, 만일 유교 사업이 가족, 문중 위주로 이루어진다면 유교의 초월성은 그만큼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있어야 하고, 양심적인 위원회가 있어야 한다. 과거 유교와 문중의 역사는 자율성을 잃고 부패와 무능의 역사였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과연 이 재정 사업이 가능할까? 이것이 안되면 유교는 자립할 수 없다. 유학대학 졸업생은 물론 최근의 유학대학원 및 유학 관련 사회교육 수료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들이 혹 유교에 종교적 신심이 있다면 새로운 유교부흥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기독교의 ‘종교개혁’ 처럼. 다만 조건은 반드시 '종교적 초월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이동희 교수의
‘유교의 현재와 미래’를 읽고
정 규 훈
총신대 사회교육원 교수
이동희 교수의
‘유교의 현재와 미래’를 읽고
■ 유림의 반성과 발전적 역할 ■
정 규 훈
총신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
“유교의 현대적 과제”는 지극히 어려운 테마이다. 병의 정확한 진단이 적절한 치료의 기초가 되듯이, 유교의 미래적 처방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에서 유교는 이제껏 무엇이었나?” 하는 진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동양윤리와 유교철학에 정통한 이동희교수님(이하 필자)의 글을 이해하기에 급급한 수준인 본인(이하 평자)에게 논평은 애초부터 무리이므로 그저 소감 정도를 정리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필자의 지적대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다수가 자신의 종교 신앙과 관계 없이 일상적인 의식과 행위에 있어서는 유교적 생활관습에 많이 젖어 있다. 생활상의 종교적 관행을 유형별로 나눈 성원등급조사에 의하면, 한국인 가운데 실천적 유교인은 91%, 실천적 불교인은 49%, 실천적 기독교인은 36%로 나타난 것이 방증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유교는 종교 아닌 종교로서, 즉 생활윤리로서 제도종교와 공존하면서 기초적인 의식과 생활관습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유교와 유교인의 정체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하는 대목이다.
또한 현재 사회적 병폐는 전근대의 사고방식과 관습에 의한 것인데, 주로 유교윤리와 관계가 깊은 것으로 보고, 권위의식, 양민 착취 행태, 권력지향성, 허례허식 등을 필자는 예거한다. 나아가 유교윤리의 현대적 역기능은 주로 이 가족윤리가 왜곡된 ‘가족이기주의’에서 연유한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소수의 유교인만의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의식을 가진 국민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고 있다. 필자는 극소수라도 유교인으로 자처하는 사람이 있다면 역시 그들이 다른 종교 교역자처럼 의식적으로 유교윤리 및 문화를 현대와 연관시켜 갱신해 주기를 부탁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시급하고 구체적인 과제’로 8가지를 제시하면서 혹 성대 유학대학 출신 중에 유교에 종교적 신심이 있다면 유교부흥을 도모하는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하였다.
병의 처방을 역추적해서 진단의 근거를 파악하듯이, 평자는 필자가 제시한 결론적 대안을 되짚어 보면서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필자가 정리한 유교와 유교인의 과제를 평자는 유교의 보편이념화(仁), 제도화, 세계화, 민족화, 민주화, 정체성화로 다시 요약해 보았다. 그리고 시급한 여덟 가지 과제는 누가(유교 담지자의 문제), 무엇을(성리학의 종교적 의미),어떻게(제사문제, 묘지제도, 경전편찬, 예절교육, 인권과 여성, 재정운용)로 재분류할 수 있겠다. 이같이 필자의 빈틈없는 논리전개에도 불구하고 평자의 이해부족으로 야기된 사족을 덧불일까 한다.
먼저 유교담지자의 문제이다. 필자는 유림 이외에도 유교적인 생활윤리의 소유자와 교양주의적인 무종교인들을 재가유교인으로서의 잠재력으로 파악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유교의 특징인 성리학이 이성종교로서 성장발전할 수 있다는 가정이 깔려있다. 하지만 귀족주의적 지향의 사회에서 뿌리내린 특권층의 논리가 현대처럼 비규범적이고 상황윤리적인 천박한 문화 풍토에 얼마만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는 유교가 민주화, 대중화의 길로 가는데 적지 않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성리학의 우주종교적 지향이 한국지성인에게 현실성과 초월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슈를 제공할 수 있다는 분석은 탁견이다. 특히 한국인처럼 정신적, 종교적 성향이 강한 민족도 세계에 드물 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에서 일고 있는 정신산업의 열풍을 보더라도 성리학의 확장팩은 주목할 만하다. 다만 성리학의 패러다임이 지극히 종교적임에도 불구하고 타종교의 종교성향에 코드를 맞추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와 같은 성리학 연구자들의 후속 작업을 기대하고 싶다.
다음으로 상례,제례의 문제이다. 우리가 이념과 제도를 논할 때, 가치관(이념)에 따라 형식(제도)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현대유교의 상황은 확고한 이념이 실종되면서 형식의 표면적인 부분만 논의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호주제 폐지’라는 제도가 등장하면서 가족의 전통적 개념이 혁명적으로 재구성되고 있다던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의 변화가 사회의 원초적 기반을 뒤흔들고 있다는 것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2고 2저’(고령화,고이혼,저출산,저결혼:평자의 규정) 사회에로의 급격한 선회는 정책입안자들에게 심각한 화두를 제공하고 있다. 필자의 말대로 대가족 종교인 유교가 가족의 기본단위마저 해체시키고 있는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제사의 간소화, 납골묘, 수목장이 (획기적인 제안이기는 하지만) 가지는 설득력의 한계를 간과할 수 없다. 가계 계승사상과 조상숭배의식에 근거한 대가족제도는 극단적 개인주의와 자기중심주의를 담지한 핵가족제도로 바뀌고 있다. 오륜의 관계윤리는 개인의 행복추구로 대치되고 있다. 필자의 인용대로 포스트모던 사회가 고도의 정책적 관리사회가 되고 있다는 것을 역으로 생각해 보면, 가족이 담당해 왔던 많은 부분이 국가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노인부양문제처럼....
필자는 예절교육을 통한 ‘유교식 도덕재무장운동’을 주창하고 있다. 공교육이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마당에 인성교육이라고 학교에서 맡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자조섞인 말을 흔히 듣는다. 어찌 보면 유교가 뜸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요즘 유행하는 블루오션전략이랄 수 있다. 더구나 한자, 중국어 붐을 타고 쉬운 유교경전이 상승기류를 탈 수 있는 호기이다. 그러나 성균관대학이나 유교의 이름으로 이런 교육시장을 공략하는 브랜드가 있는가? 평자의 기억으로는 ‘성균관서당’이라는 명칭을 이미 발빠른 업자가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끝으로 재정문제를 거론하면서 “기독교가 지나친 물량주의에 영성이 떨어지고, 유교적 관행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문제를 지적하였다. 기독교 내에서 유교의 긍정적인 역할을 부각시키는건지, 긍정적인 역할을 지적하려는건지 다소 혼돈을 주고 있다. 급성장을 거듭한 기독교가 유교를 포함한 타종교와의 습합을 통해 토착화를 이룰 때라는 각주의 지적으로 볼 때는 유교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문중재산을 유교종단이 관리해야 효과가 있다는 제안은 개인재산을 영향력 없는 종단이 어떻게 맡을 수 있는가 하고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소송으로 유산을 되찾는 어처구니없는 풍토에서 유교가 존경받는 사회이념으로, 유교인이 사회윤리를 선도하는 세력으로 부각되는 것은 일장춘몽인가?
서두에 밝힌대로 필자의 학식의 깊이에 다가가기에 평자의 식견은 너무도 미천하다. 아무쪼록 필자의 고언이 유교계에 미쳐서 좋은 결실로 발전하기를 바라면서 논평을 가름하고자 한다.
|
현재위치 : 
308_학술자료집_이동희_교수.hwp
